차부제 [한] 次副祭 [관련] 차부제품

7품 중 차부제품에 이른 사람을 이르는 말. ⇒ 차부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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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표 [한] 徵表 [라] omen [그] semeion [히] otot

어떤 생각을 전달하거나 사물에 대한 견해를 밝힐 때 기호나 상징을 사용한다. 이러한 사상전달의 수단을 징표, 혹은 표징이라고 한다. 그런데 성사적 의미로 징표라고 할 때는 하느님이 이스라엘 역사, 나아가 인류의 역사를 통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자신의 의도를 전달하는 수단이다. 하느님은 징표를 통해 인간이 행해야 할 바를 일깨워 주고, 당신 구원업적의 초월적 위대성을 드러내며, 그 힘과 사랑을 계시한다. 구약성서에서 하느님의 최대 징표는 모세와 여호수아를 통해 이룩한 기적(출애 3:20, 11:9, 15:11, 34:10, 여호 3:5, 판관 6:13, 시편 77, 예레 21:2)들이었다. 이것들은 하느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의 노예상태에서 해방시키고,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겠다는 것을 그들에게 납득시켰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감으로써 하느님의 구세사업(救世事業)은 완료된 것이 아니었다. 왕조시대 이후부터 지배계급에 의한 불의와 착취 아래 신음하는 가난하고 억눌린 자들을 구원하기 위해 하느님은 많은 예언자들을 통해 당신의 징표를 드러내 보이고, 이를 기반으로 하여 메시아사상이 형성되었다.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악의 세력이 지배하는 현세의 질서를 파괴하고 하느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메시아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표징으로써 강하게 부각된다. 예수의 죽음은 인간에 의한 인간의 지배체제를 종식시키기 위하여, 부패하고 타락한 시대현실에 대한 준엄한 고발과 비판이며, 인류해방의 대열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치열한 투쟁을 촉구하라는 징표이기도 하다. 구약시대의 징표가 대체로 기적과 연결된 계약의 성격을 띠고 있는데 비해, 신약시대의 징표는 하느님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인간들이 행해야 할 바를 일깨워 주고 있다. 하느님은 시대에 따라 그 시대에 맞는 징표를 드러내 보인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하느님이 드러내는 시대의 징표를 파악하고, 그것에 포함된 하느님의 구세사업에 동참함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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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서 [한] 集會書 [라] Liber Ecclesiasticus [영] Book of Ecclesiasticus

이 책은 번역자에게나 독자들에게 적지 않은 문제점을 제기한다. 이 책이 지혜문학(智慧文學) 속에 내포된다면 문학유형은 이 책에 복잡한 외형을 가져다 준 오랜 기간의 변화에 기인한다. 이 책의 전수(傳受)는 상당히 극적이다. 팔레스티나 유다인 정경(正經)으로부터 거부된 이 책은 외경(外經) 내지는 제2정경(第二正經)에서 그 자리를 잡고 있으며 히브리어 원(原) 텍스트는 분실되었다가 나중에 일부가 발견되었지만 수세기 동안 얽히고설킨 복잡한 역사를 지니고 있는 번역을 통해서만 알려져 왔다.

1. 명칭 : 이 책은 예언서들을 제외하고 볼 때 구약성서 중에서 구체적인 양태로 저자의 이름을 밝히고 있는 유일한 책이다. 이 책의 저자는 끝말에서 ‘엘르아잘의 아들, 사라의 아들 예수’라고 하는 고유한 이름으로 자신을 지칭한다(50:27). 가장 중요한 그리스어 수사본(手寫本)들은 집회서를 ‘시라의 아들 예수의 지혜’라고 명명한다. 그런데 히브리 텍스트는 ‘시라의 아들, 엘르아잘의 아들, 예수의 아들 시몬’이라고 칭함으로써 그리스어와 경미한 다양성의 모습을 보여 준다. 그러나 본문비판은 ‘시몬’이라는 언급이 정통적이 되지 못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라틴어 명칭인 Ecclesiasticus는 성 치프리아노 시대 이후에 나타나는데 이것은 새 입교자들의 교육을 위해서 교회가 이 책에 부여하고 있는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 같다. 이 책이 예비자들을 교육하기 위해 사용되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비록 유다인 정경에서 제외되었을지라도 이 책은 교회에서 읽혀질 수 있는 교회론적인 것이다.

2. 저자 : 집회서 자체가 저자에 대한 정보를 자세하게 전하고 있다. 시라의 아들은 예루살렘의 귀족이며(50:27) 청년기부터 율법을 사랑하는데 깊이 빠져들은 율법학자로서 다른 사람들에게 이 율법과 자기가 묵상한 결과와 경험의 결과(32:15, 51:23)를 통교(通交)하고자 노력했던 자이다(24:34, 33:18). 그 자신이 정열을 다해 지혜를 찾으려고 애썼고(51:13-30) 대개는 공적인 임무수행시에 했던 외국여행(39:4)에서 얻은 것을 통해 지혜를 찾아낼 수 있었다(34:9-11). 여행이란 여러 번에 걸쳐 주님께서 그에게 허락하신 고난을 깨닫게 해주는 가치를 부여해 주었다(34:12, 51:1-7). 그러나 그는 현명하게 선택된 부인(36:21-27)과 그가 엄격하게 교육을 시키는 아이들(30:7-13, 42:5)에 둘러싸여 편안한 가운데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던 것 같다.

충고하는 말투를 보아 그는 예루살렘에서 높은 직무를 점유하고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33:19, 39:4). 성전, 사제, 의식에 대해(50:5-21) 그가 보여주고 있는 확실한 열정에도 불구하고 그가 사제였다는 것을 뒷받침해 주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3. 연대와 집회서의 역사 : 상당기간 동안 집회서의 그리스어 본문만이 알려져 왔다. 그러나 성 예로니모는 집회서의 그리스어 본문을 알고 있었으나 확실성이 결여되었다고 판단해 새로이 라틴어로 번역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본문 역사의 점증적인 단계는 다음과 같다. 시라의 아들은 기원전 2세기 초엽, 곧 180년경에 자기의 책을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히브리어로 저술하였다. 그리스어 번역자인 그의 손자는 유에르게테스 왕 38년에 번역작업을 착수했다고 집회서 서언에서 언급되고 있는데 유에르게테스 왕 38년이란 프톨로메 7세(기원전 170∼116)와 동일시되고 있다. 그러므로 번역은 132년 이후에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기원후 1세기말에 있었던 얌니아(Jamnia) 유다인 공의회에서 랍비들은 집회서를 정경에서 제외해 버렸고, 적은 숫자의 히브리 사본들이 유통되고 있었을 뿐이다. 이 히브리 사본으로부터 2세기에 한 신앙인에 의해 시리아어 번역본이 나타나게 되었다. 8세기에 집회서의 히브리 본문이 예리고 근처에 있는 한 동굴에서 발견되었다. 발견된 히브리 본문의 보존상태가 나빠 읽기 어렵게 되어 히브리 본문에서 부족한 몇몇 내용들은 시리아 번역본에서 재번역을 하였다.

4. 저작과 내용분류 : 집회서가 얽히고설킨 문학유형 때문에도 규칙적이거나 논리적인 도식 위에 설정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럼에도 집회서는 두 개의 부분으로 나뉘어 질 수 있으니, 금언집(金言集 2:1-42:14), 하느님께 대한 찬양과 선조들에 대한 칭송(42:15-50:29)이다. 주제들은 명약관화한 순서 없이 서로 연결이 되어 있으며 주제들 중에 어떤 것들은 그 내용의 뚜렷한 진전이 나타나지 않으면서도 두 세 번 반복되어 취급되고 있다. 제자들에게 주로 가르침의 필요성에 따라 자료들이 상호 첨가되기도 했으나 이와 같이 분명한 도식이 결여되어 있음에도 이 책을 다섯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각 부분은 동일한 양태로 구성되어 있다. 즉 지혜(1:1-30, 24:1-34, 32:14-33:19), 하느님 창조주(16:24-18:14, 42:15-43:33)를 찬양하는 교의적(敎義的) 서언이 나오고 뒤이어 구체적인 순서는 없으나 실천적인 가르침이 나온다. 다섯 개의 서언을 비교해 보면 유사한 구조가 현존함을 알 수 있다. 즉 각 서언은 하느님 또는 신적 지혜와 함께 시작하고 인간에게 전달된 지혜에 대한 사상에로 이끈다. 나아가 한 서언이 다른 서언을 계발시켜 주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첫째 서언에서 지혜는 육(肉)을 지닌 모든 인간에게 주어졌다(1:10 · 25). 둘째 서언은 창조주 하느님께 관계되는 교의를 제시한다(16:24). 셋째 서언에서 지혜는 그 자신이 이스라엘, 시온에 통교한다(24장). 넷째 서언은 모세의 율법과 그것을 지켜야 한다는 확신을 강조한다(32:14). 다섯째 서언에서는 창조주와 그분의 업적에 대한 찬양이 이스라엘 선조들의 찬양을 소개한다(42:15). 달리 표현하자면 이 책은 공번된 전망에서 시작되면서 갈수록 이 지상에서 신적 지혜의 참된 수혜자로 간주되는 선택된 백성에 자기의 관심을 총 집중시킨다.

시라의 아들은 그가 특별히 모세오경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사고의 진전은 세상 창조와 더불어 시작되어 12성조(聖祖)들과 함께 끝을 맺는, 다시 말해 점차적으로 다른 모든 종족을 제거해 버린 후 이스라엘의 12지파와 함께 끝을 맺는 창세기의 사고 진전과 유사하다(창세 49:28).

<내용 분류>

서문

지혜의 본성과 지혜에서 얻는 수혜(1:1-16:23).

1. 서언 1:1-30

2. Meshalim 2:1-16:23

하느님과 창조, 인간과 윤리도(16:24-23:27).

1. 서언 16:24-18:14

2. Meshalim 18:15-23:27

가정과 사회 안에서의 지혜(24:1-32:13)

1. 서언 24:1-34

2. Meshalim 25:1-32:13

덕 있는 삶(32:14-42:14)

1. 서언 32:14-33:19

2. Meshalim 33:20-42:14

현현(顯現)된 신적 지혜(42:15-50:29)

1. 자연 속에서 하느님 영광에 대한 찬미가, 42:15-43:33

2. 역사 안에서 이스라엘 선조들에 대한 찬송, 44:1-50:29

부록

은총 행위의 기도 51:1-12

결론시(詩) 51:13-30

5. 원천과 문학유형 : 시라의 아들은 현자(賢者)들 중의 마지막 현자처럼 보여진다(33:16). 그는 자기를 선행했던 현자들의 가르침을 묵상하는 예언자들에게서 자기의 덕을 찾는다(39:1). 구약성서를 인용하는 것들이 집회서에 아주 드물게 나타나는 반면 잠언서 뿐 아니라 예언서, 시편들에게 찾아볼 수 있는 어렴풋한 내용들이 상당수 발견된다. 그는 선집문체(選集文體)라 불리는 것을 실천한다. 성서에서 영양을 공급받아 끊임없이 그것을 묵상하는 점에 있어서 그는 스토이즘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34:11). 궁극적으로 그는 창고에서 새 것과 헌 것을 갈라 꺼내는(마태 13:52) 어느 정도 복음서의 율사처럼 자신을 내세운다. 그는 마지막 현자일 뿐만 아니라 지혜와 동일시되는(6:27) 율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출중한 ‘책의 인간’(32:15)이라는 점에서 율사들 중의 첫 번째 율사이다.

집회서 서문은 책 전체를 ‘지혜와 윤리적 형성에 바쳐진 글’처럼 지칭한다. 그러므로 거기서 지혜유형의 전통적 문학형태를 찾아 볼 수 있다. 집회서의 근간은 Mashal로서 되어 있다. 이 Mashal은 간단한 격언이나 고유한 의미에서의 금언(4:20-31, 9:10-18)에서부터 잠언서 1:9이나 25:27과 같은 양태로 되어간 진전에까지 이를 수 있다. 일련의 금언들은 ‘하느님께 대한 경외함’(1:11-30)이라는 동일한 표현의 반복으로서 연결되어 있다. 열거적인 Mashal은 점증적인 순서로써 표명된다(25:7-11). 집회서 안에서 격려는 지배적이며, 옛날 금언들에 나타나는 정감이 흐른다. 그는 일종의 무인칭적(無人稱的)인 어조와 대조를 이루는(잠언 10-22장) 지혜서 시편들의 어조 위에(참조 시편 34, 37) 표명하기를 좋아한다(24:28-32, 33:16-18, 39:12-14, 51:13-20).

집회서 안에는 상당수의 완전한 찬미가와 찬미가적 동기 그리고 은총의 행위에 대한 찬송이 나타난다(16:18-19, 39:12-16, 42:15-43, 50:21-24), 또한 비통함을 글로 쓰기도 한다(22:25-23:6). 이 단편은 시편 속에 내포되어 있는 문학유형의 후대 변화를 해주기 때문에 아주 흥미롭다. 간략이 말하자면 저자는 그의 모든 문학적 관점을 가지고 성서를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6. 교의(敎義) : 집회서의 교의는 모두 전통적인 것이다. 집회서가 제시하는 지혜는 주님께로부터 오는 지혜이다. 이 지혜는 젊은이들을 형성시키고 그것을 받는 모든 이들의 행복을 기약해 준다. 저자는 보상을 믿고 있다. 그는 전수받은 교회에 만족하기에 그가 만나게 되는 구체적인 난제(難題)들이 그를 흐트리지 않는다. 그러기에 이 책은 이런 점에서 어떤 변화도 보여 주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새로운 영역에로 나아간다면 그것은 지혜를 율법에 동일시 할 때이다(24:23-24). 그리고 그는 이스라엘 역사를 위한 자기의 관심사를 표명하는 데서 자기의 선구자들과 구분된다. 그에게 관심을 갖게 하는 것은 역사 그 자체가 아니다. 그가 자기 백성의 성성(聖性)에 대해 언급하면 그것을 본보기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고 그들 안에서 성성의 길로 지혜에 의해 인도되는 자들, 곧 지혜를 사랑하는 자들의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다. 위인들의 이러한 열거 속에 사제직은 특별하게 확실시되고 있다. 아론과 비느하스는 영예의 자리를 차지하고 저자와 동시대인인 대사제 시몬에 대한 긴 칭송에서 이 부분이 완성된다(45장).

시라의 아들은 관리인이다. 그러나 그의 책은 새로운 사상을 자기의 책속에 삽입했어야만 할 본질적인 첨가의 전수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사상이란 하늘나라의 삶이 그 목적이다. 삽입된 내용 중 대부분은 사후(死後)의 보상에 대한 새로운 교의를 염두에 두면서 원초적 본문을 완성시키는 데 있다. 삽입된 부분들이 더욱 강조하고 있는 점은 각자가 마지막으로 하느님 앞에서 심판받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이 날이 악인들에게는 진노와 복수의 날로서 영원한 처벌을 받을 것이고, 정의로운 자들은 다가올 세계 속에서 받을 끝없는 보상의 시작일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전도서와 욥기에서 제기된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집회서는 긴 본문 속에서 직접적으로 지혜 경향에 대한 마지막 대작을 준비했다고 볼 수 있다. (安秉鐵)

[참고문헌] Ancien Testament, TOB, 1977 / The Interpretater’s Dictionary of the Bible, Abiugdon Press / H. Cazelles, Introduction critique l’Ancien Testament, Desclec et Cie, Paris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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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합주의 [한] 集合主義 [영] collectivism [독] Kollektivismus

인간은 국가, 회사, 학교, 가족 등 한 개 이상의 집단에 속하여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데, 집합주의는 이러한 집단 안에서 개인의 생존을 지속시키려고 하는 주의이다. 집합주의는 ‘집단주의’(集團主義)라고도 번역된다. 집단이라는 것을 개인이 모여서 이룬 통일체라고 할 때, 사회는 자체 보존책을 강구하여, 개인에게 적응과 사회적인 기능 수행, 또는 희생까지를 요구하게 되며, 가치 있는 것을 모색하거나 그 의지를 개인에게 강요할 수도 있게 된다.

인간의 자기 인식은 동족 자체를 통하여 또는 협동적인 인격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개인의 의식이나 행동은, 그 집단이 갖고 있는, 일정한 규범이나 이상에 구속받고 양식화(樣式化)되어, 어떤 집단적인 통일적인 특성을 나타내게 된다. 집합주의는 원시부족과 고대의 제국(帝國)에 있어서 기본적인 형태가 되었다. 성서에는 원시적인 집합주의에 관한 시사가 여러 군데 나타나 있는데, 이 집합주의에 대한 항거는 특히 서방세계의 경우, 두 가지 관점에서 비롯되었다. 하나는 히브리 예언자적인 관점이고, 다른 하나는 소크라테스적인 관점이다. 위 두 가지 관점은 모두 그 바탕에 사회의 요청을 초월하는 개인적인 자유와 책임성을 특징으로 삼았다. 집합주의가 개인주의보다 우세한 위치를 차지했던 예는 로마제국과 중세기의 봉건제도에서 찾아보게 되지만, 근대사는 개인주의와 집합주의 쌍방에 다 함께 강점을 두어, 개인주의가 전통과 공동체에 뿌리박은 데서 인간을 해방한다 해서 세 가지의 중요한 새로운 형태의 집합주의를 가져왔다. 즉 ① 민족주의, ② 공산주의, ③ 나치즘 등이다.

근대적인 집합주의의 어떤 것은 전체주의적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이 전체주의는 인간의 생활 속에다 전제정치를 확대하기 위하여 근대적 기술과 잔인성을 사용하는, 이른바 집합주의 즉 국가지상주의의 한 형태로 되었다. 그렇지만, 현대는 개인이나 사회나 그 건재성을 위하여는 집단적인 폭정으로부터의 자유를 요구하고 있다. 그리스도교의 공동체적인 인간론은 인격적 관계에서만 사람은 인간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하며, 개인은 집합주의, 혹은 개인주의 어느 한쪽 면에서만 이해되는 존재가 아니고, 쌍방에서 이해된 하나의 책임적인 자유 안에서 살아가는 존재임을 인정하고 있다.

[참고문헌] J. Maritain, The Person and the Common Good, tr. J.J. Fitzgerald, New York 1947 / J. Messner, Social Ethics, tr. J.J. Doherty, St. Louis 1949 / H. Arendt, The Origins of Totalitarianism, New York 1951 / New Catholic Encyclopedia, The catholic Univ. of America, Washington, D.C. 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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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설전진 [한] 集說詮眞

중국의 여러 사상을 해설 · 비판한 서적. 중국인 신부 황백록(黃伯祿, 1830∼1909)의 저술로 1879년 상해 자모당(慈母堂)에서 4책(冊)으로 초간되었고 1885년 중간되었다. 총 4책 367장(張)의 분량에 중국 유 · 불 · 선(儒 · 佛 · 仙)의 인물과 제(諸)사상 등이 모두 62개 조목에 걸쳐 해설 비판되어 있다. 본문에 앞서 ‘자서’(自序)와 ‘서’(序), 선유(先儒) 14명을 소개한 ‘선유성씨’(先儒姓氏), 본문에 인용된 232개의 서적을 열거한 ‘인용서목’(引用書目), 그리고 ‘범례’(凡例)와 62개 조목의 ‘목록’(目錄) 등이 차례로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본문은 62조목으로 되어 있는데 각 조목은 ‘인’(引)과 ‘변’(辨)으로 구성되어 있어, ‘인’에서는 해당조목에 대한 설명이, ‘변’에서는 해당 조목에 대한 비판이 서술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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