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동정 순교자. 축일을 2월 5일. 시칠리아 섬의 카타니아(Catania) 출신. 데치우스 황제의 박해 때(249-251년) 순교. 전설에 의하면 박해자들은 아가다를 매음굴로 끌고 가 배교를 강요하였으며 이들이 양 가슴을 도려냈을 때 사도 베드로가 나타나 치료하였다 한다. 박해자들의 잔혹행위에 못 이겨 그 이튿날 감옥에서 선종. 공경의 파장(波長)은 곧 시칠리아섬 밖으로 확산, 5세기 이후 절정에 달하였다. 이름이 로마 미사경본에 기록되었고 고대 순교록에 행적이 올랐다. 유해는 콘스탄티노플로 이전된 듯하다. 로마시대에서 2개의 교회가 이 동정 순교자의 이름으로 봉헌되었다. 매장한 해에 폭발한 에트나 화산을 진정시킨 것이 이 순교자의 통공이었다고 전한다. 그래서 중세시대에 특히 남부 독일에서는 빵이나 초 · 과일 · 편지들을 아가다의 이름으로 축복하면 불에 의한 재난을 막을 수 있다고 믿었다. 카타니아의 수호자이며 주물공, 광부, 산악 안내인 및 간호원의 수호성녀이다.
아가페 [그] agape
초기 교회에서 사랑의 잔치를 일컫던 말이다. 고대 그리스어에서는 동사(agapao, 사랑하다)와 달리 전성명사(agape, 사랑)는 전혀 쓰이지 않았었는데, 당시 널리 쓰이던 이집트 방언에서 차용되어 ≪70인역 구약성서≫에서 최초로 ‘agape’를 사용하였다. 신약성서에서는 자애로운 사랑, 인간의 사랑, 인간의 형제애 등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초기 교인들은 반(半)전례적 성격을 가진 갖가지 형태의 형제애를 나누는 식사를 이렇게 불렀다.
고대 유대와 이방세계에서 그 비슷한 예가 있기는 하였으나 그리스도 교인들에 의한 이 사랑의 잔치는 인간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루가 14:12-14, 22:26-27)을 따라 형제적 사랑을 표현하고 기른다는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자선을 위한 아가페와 망자와 순교자를 기리기 위한 아가페에는 빈자(貧者)와 과부들이 초대되었다. 이것은 성찬식 자체는 아니지만 깊이 관련되어 있다. 그리스도가 그의 최후의 만찬에서 자신의 사랑을 완성시키는 잔치로서 성찬식을 만들었기 때문이다(요한 13:1). 아가페는 보편적 관습이나 일반적인 규칙에 의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사도시대 이후 지방교회에 다라 다양한 형태로 행해졌으며, 결국 조금 덜 인격적이기는 하였으나 좀 더 효과적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대체되었다.
아그노에타이파 [한] ~派 [영] Agnoetes
무지파(無知派)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람으로는 알렉산드리아의 부제 테미스티오스(Themistios)인데, 그들에 의하면 인간으로서 그리스도는 과거와 미래에 대해 무지하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교회는 아그노에타이파가 주장하는 단성론(單性論)이 이단임을 선언하고 그 주도적인 인물들을 배척하였다. 즉 그리스도의 인간성이 무지라는 주장은 네스토리우스주의자들의 주장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 교회의 입장이다.
아글리파이파 [한] ~派 [영] Aglipayan
20세기초 필리핀에서 발생한 이교(離敎). 1902년 필리핀 마닐라 출신 사제인 아글리파이는 미국이 필리핀을 점령한 기회를 이용하여 스페인에 의한 교회의 지배에 반대하여, 필리핀을 독립 가톨릭 교회라고 선언하면서 자신이 필리핀 가톨릭 교회의 교황임을 자처하였다. 1940년 그가 죽음을 맞을 때까지 100만여 명의 추종자를 확보하였으나, 그 후 교회와 화해하였고 이 운동도 쇠퇴하였다. 그러나 오늘날까지도 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현재 아글리파이파는 삼위일체론을 부정하는 유니테리언파와 미국의 감독교회와 제휴하고 있는 트리니테리언파 등 둘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