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황 [한] 池璜

지황(?∼1795). 순교자. 세례명 사바. 일명 지홍(池洪). 전의(典醫)의 후손(後孫). 입교시기는 확실치 않으나 정약종(丁若鍾), 홍낙민(洪樂敏), 최필공(崔必恭)등과 함께 교회 발전에 노력한 것으로 보아 조선 교회 초창기에 영세 입교한 것 같다.

그는 1793년 북경에 가서 40일간 체류하면서 신부영입을 위해 노력한 결과 주문모(周文謨) 신부를 모시고 무사히 입국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가 북경에서 머무르는 동안, 그는 모범적인 덕행가 겸손, 그리고 두터운 신심은 중국 신자들에게 큰 감명을 주기도 하였다.

1795년 6월 28일 주문모 신부를 영입하였다는 죄로 체포되어, 그날 밤으로 법정에 끌려 나가 팔와 다리를 뒤틀고 무릎을 으스러뜨리는 고문을 당했으나 이에 굴치 않고 용감하게 자기의 신앙을 고백하였다. 이에 그 날 밤으로 윤유일(尹有一)과 함께 옥안에서 장사(杖死), 순교하였다. 그의 아내 김염이(金廉伊, 안나)도 1801년 체포되어 진해(鎭海)로 유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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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서 [한] 智慧書 [라] Liber Sapientiae [영] Book of Wisdom

1. 명칭 : 성서의 그리스어 수사본들은 이 책에 ‘솔로몬의 지혜’라는 명칭을 부여하고 있다. 7-9장에서 유다인 전승이 가장 뛰어난 ‘현자’(賢者)로 일컫는, 솔로몬왕이 말하고 있는 점으로 보아 타당성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이 명칭 자체가 제기하는 저자에 관한 문제점이 모두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편집 자체도 상당히 후대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아, 위에서 언급한 명칭은 저자의 이름이 분명하게 명명되지 않은 무명저서에 상당한 권위를 부여하기 위해 쓴 문학적 기교 및 양식을 의미하는데 불과 한 것이다. 아가, 잠언, 솔로몬의 시편과 같은 상당수 저서들의 저자도 솔로몬으로 간주되어 왔었다.

불가타(Vulgata)는 지혜문학에 속한 책들 중에 이 지혜서에 견줄 만한 책이 없을 만큼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지적하기 위해 ‘Liber Sapientiae’(지혜서)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W.O.E. Oesterley가 지적했듯이, 초기교회에서는 제2경전에 속한 책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책 중의 하나로 간주되어 왔음이 확실하다.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정의된 이후 가톨릭 신앙의 관점에서 지혜서는 성서에 속하면서 정경(正經, Canon)에 속한다. 그러나 제2경전에 모든 거룩한 성격 부여를 거부하고 극히 약소한 권위만을 부여하고자 하는 경향을 띤 몇몇의 교회 환경권 안에서는 그렇지 못한다. 특히 개신교는 지혜서를 구약성서의 ‘외경’에 배열하고 있다.

신약성서의 몇몇 저자들, 특히 요한복음과 바울로 서간에서는 지혜서의 내용이 재현되고 있음을 찾아볼 수 있지만 지혜서를 성서로서 간주할 수 있도록 입증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사상과 교의의 영역에 있어, 신약성서의 저서들과 지혜서 사이에 많은 유사성이 있다는 사실이다. 지혜서는 구약성서 안에 뿌리를 내리고, 구약성서의 대 주제들을 끌어 나가고 있고 그 중 어떤 것들은 새로운 계시의 벽두에까지 이끌어가고 있어 날이 갈수록 교회에 의해 선택되었다. 교부들 역시 지혜서를 사용하였다. 사도들의 가르침(Didache), 로마의 글레멘스, 헤르마스의 목자, 타치아노, 이레네오, 로마의 히폴리토, 무라토리 정경은 지혜서를 정경으로 간주하고 있는 듯 여운을 남기고 있는데, 성 예로니모는 히브리어로 된 성서만을 정경으로 인정하면서 훗날 정경에서 제외해 버렸다.

2. 저자 : 그리스어로 된 저서로서 알렉산드리아 유다이즘의 저서들과 유사성을 갖고 있다. 저자는 일종의 자발성을 갖고 두운법(頭韻法)과 모음 압두(押頭)와 수음 중첩법(數音重疊法)을 이용하고 있어, 본래 의미에서의 저자가 아닌 번역자라고 할 때, 위 사실의 설명은 불가능하다. 이 글 속에서 셈족어법이 발견된다면 그것은 70인역의 영향 때문이다. 저자의 이름은 분명히 밝혀지지 않으나 무명의 유다인이다. 저자를 예로니모는 유다인 필론(Philon)으로, 아오스딩은 시락(Sirach)의 아들로, 어떤 이는 사도 바울로의 동행인 아폴로스(Apollos)로 보는데 분명한 신분은 드러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집트를 주시하는데 대한 그의 강조는 알렉산드리아의 한 거주민으로, 나아가 이 도시 유다인 학교의 스승으로도 생각게 하는데, 분명한 것은 그리스문화를 잘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필론의 교의, 주석양식, 언어, 문체 등과는 너무 다르기 때문에 필론과는 동일시될 수 없다.

3. 연대 : 분명하지는 않으나 특별히 용어와 동등한 시민권에 대한 이집트인들의 당대 권리요구에 대한 암시(19:16)에서 연역해 낼 수 있는 다양한 표지들은 기원전 50년 이상 올라가거나, 아우구스투스(기원전 30년)에 의해 알렉산드리아가 점령된 이후 로마시기 안에서 더 내려가지 못하게 한다. 또 이 저서는 수년에 걸쳐 완성된 책으로 셋째 부분(11-19장)은 알렉산드리아의 필론이 전해 주는(기원전 20년) 모세의 삶과 상당량의 비교를 제시하고 있다. 만일 이들이 같은 Midrash를 사용했다고 하더라도 이 두 저자는 시간 속에서 그리 멀리 있었던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러므로 기원 전 초세기 중반에 쓰여졌다고 볼 수 있으며, 필론의 신약성서 저서들 이전에 쓰여진 것이 분명하지만 70인역 출간 이후에 쓰여졌다고 본다.

4. 저작 : 문체와 주제의 다양성이 독자들에게 쉽게 당혹감을 준다. 성서적 시의 모방이 11:4절부터 점차 리듬 있는 산문 경향으로 나가는 종합문체로 대치된다. 6-10장은 지혜의 섭리적이고 창조적인 역할에 대해 강조하고 있지만 그 후에는 언급되지 않고 있어 상당수의 학자들은 다수의 저자에 의해 완성된 작품이라고 생각해 왔었다. 그러나 지혜서 안에 나타나고 있는 용언(用言)이나 사상에 실제적인 동질성이 있다는 점에서 더욱 저자의 단일성을 수호하고 있다. 또한 지혜서 전체는 동일한 문화와 문학적 개성을 엿보게 한다. 각 부분에 문체의 상이성은 단번에 쓰여진 책이 아니라는 사실과, 저자에게 영감(靈感)을 준 문학적 원천의 영향에 의해서 설명될 수 있다.

1-5장은 원칙적으로 예언자들에게 근거를 두고 있어 문체가 히브리적 성격을 띠고, 6-9장은 잠언서와 함께 그리스 철학의 단편들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서 성서적 문체의 성격이 희박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10-19장은 이스라엘 역사가 정경적(正經的) 원천에서 이미 상당한 거리감을 두고 있는 것으로, 구약성서의 역사와는 매우 상이한 문체로 되어 있다.

지배적으로 나타나는 2개의 양식 ① 대조 내지는 비교 : 의인(義人)들의 불사불멸의 운명은 불충한 자들의 결실 없는 삶에 상치된다. 충성스런 자들의 지상에서의 업적이 헛수고같이 보이는 모습은 불충한 자들에게 있어 풍성한 것같이 보이는 것과 반대되며 나아가 이스라엘 백성의 운명은 이집트인들의 운명과 반대된다.

② 사상의 점진적인 진보 : 저자는 점증적인 양식으로 전개해 나간다. 예를 들어 죽음에 대한 주제는 앞부분에서 다루어지고 있는데(1:11-13:16), 이것은 뒤이어 본문 속에서 다시 취해지거나 계발되고 있다(2:20 · 24, 3:2-3, 4:7-14). 저자는 육체적 죽음을, 때로는 영성적 죽음을, 또는 두 가지 모두의 죽음을 상기시키기 위해 주제의 풍부함을 구사하고 있다.

5. 구조와 내용 : 3부분으로 대분될 수 있는데 각각 부분은 상이한 관심사와 입장을 반영하고 있다.

① 하느님에 의한 인간 운명(1-5장) : 의인의 박해하는 악인들과 의인과의 대조 – 유다인들의 신앙을 견고케 하기 위한 목적으로 의인들이 참아 이겨내야 할 시련들은 천상에서의 영광을 준비한다. 저자는 영원히 죽지 않을 정의를 실천하도록 그들을 격려한다. 약한 자식을 둔 사람보다 석녀(石女)가 낫다는 내용을 통해 악인들의 운명을 예고(3:13-4:16)하고, 의인들은 영원히 살 것이며 하느님께서 심판 날에 지켜주실 것이다(5:15-23).

② 지혜서에 대한 칭송(6:1-11:3) : 솔로몬의 입을 통해 행해지나 왕이 누구인지 정확하게 명명되지 않고 있다. 지혜서는 실제적으로 고유한 이름을 피하고 있다(예외 : 다섯 도시 : 10:6, 홍해 10:18, 19:7). 솔로몬은 모든 왕들이 이스라엘 지혜의 교의에 눈을 뜨도록 초대하고 있으며 널리 알려지고 실천되어야 할 신비로운 실재처럼 소개한다(6:12-21). 뒤이어 지혜의 본성과 기원을 예고한다(6:22-25). 인간 조건을 지닌 솔로몬은 지혜를 얻기 위해 기도했고, 그의 청이 들어져 지혜는 그에게 모든 영화를 가져다준다(7:1-14). 솔로몬은 모든 앎의 원천이신 하느님께 간청한 뒤 지혜의 소유물과 본성에 대해 점진적으로 묘사한다(7:22-8:1). 이 지혜와의 내적 친교는 하느님의 선물로서만 주어진다(8:17-21). 솔로몬은 왕으로서 자신의 직무 안에 지혜가 동참하고 신적인 뜻이 인도케 해달라고 기도한다(9:1-12). 지혜만이 이 뜻을 알기에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9:13-18). 세상 기원부터 이집트 탈출까지의 에피소드들을 통해 지혜는 역사의 지배자처럼 자신을 계시한다(10:1-11:3).

③ 출애급에 대한 묵상(11:4-19:22) : 가장 길고 먼저 것보다 더욱 내용이 뒤섞여 있으며 원칙적으로는 출애급의 재난 이야기로부터 이집트 사람들과 이스라엘 사람들의 운명을 비교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여기서 원천적인 문제는 원수들을 처벌하기 위해 하느님께서 사용하시는 도구가 이스라엘에는 호의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집트인들을 처벌한 물은 사막에서 이스라엘인들의 갈증을 해소해 준다(11:4-14). 나아가 사람들이 회개의 길로 들어서게 하기 위해 하느님께서는 알맞게 처벌하신다는 점을 지적하기 위해 자연숭배를 거스리는 논쟁을 예고한다(11:15-12:1). 이런 관점에서 가나안 사람들을 몰살하기 전에 끔찍한 야수의 역할이 주석된다(12:2-14). 하느님은 공정하게 심판하시기에 그의 중용[正義]은 이스라엘인들에게 규범으로 사용되어야 한다(12:15-22). 자연숭배 대항하는 의식은 아이러니컬한 성격을 띠고 계속 타나난다(12:23-27). 그러므로 저자는 우상숭배의 두 형태인 자연요소의 신화, 곧 자연숭배(13:1·9)와 인간 업적에 주어지는 의식, 곧 본래 의미에서의 우상숭배(13:10-14:11)를 구분한다. 나아가 우상숭배의 기원에 대한 내용이 전개되는데 그것은 삶의 완전한 타락을 창출한다(14:12-21). 이스라엘이 모든 위험과 우상숭배로부터 보호될 때 그 보호의 근원에 모든 저자들은 승복한다. 여기서 저자는 비교의 선을 다시 취하고 6개의 비교를 점차적으로 진전시키고 있다(16:1-14, 16:5-14, 16:15-29, 17:1-18:4, 18:5-25, 19:1-12). 이집트인들은 소돔의 거주민들보다 더욱 적대적으로 나타났기에 하느님께 처벌받는다(19:13-17). 저자는 다시 자연 요소의 이론과 비교하기 위해 출애급의 기적으로 돌아온다(19:18-21). 이 저서는 짧은 찬미가(doxologie)로 끝을 맺는다(19:22).

6. 지혜서와 헬레니즘(Hellenism) : 문체로 불 때 저자는 히브리적 특성에 고유한 병행법. 특히 반대명제에 충실하다. 그러나 저자는 그리스인들로부터 추리법의 기교를 배워 구약성서 정경에서는 전혀 찾을 볼 수 없는 단어를 335개나 사용하고 있다. 이 점은 70인역의 어법과 어느 정도 거리감을 두고 있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비록 저자가 그리스어 번역의 단어들을 사용할지라도 그 단어들 중 일련의 단어들에는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그리스 철학적 용어의 영향으로 이 기교적인 언어는 이스라엘인들의 종교적 사상 속에서 오래 전부터 받아들여져 오던 사상을 번역하는데 사용된다. ‘불멸’이라는 단어의 사용을 볼 때 에피쿠로스의 영향도 묵과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 철학에 있어 하느님의 고유한 본성은 고통에 대한 무감각이며 불멸성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또 저자는 천체학의 중요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점으로 보아 천체학과 친밀성을 갖고 있는 것 같으나, 기존 철학들과 완전 동화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점은 지혜서의 수취인들이 알렉산드리아에서 인생을 준비하는 유다인 학생 그룹으로 형성되어 있다고 하면 잘 이해된다. 저자는 그들에게 헬레니즘에 의해 완전 지배되어서는 안 되고 경시해서도 안 된다는 점을 보여주고자 한다.

7. 교의(敎義) : 지혜서의 하느님은 이스라엘 전승에서 나타나는 하느님으로 전지전능하신 창조주이시며 우주의 운명에 대한 최고 지배자이시다. 그러나 저자는 하느님의 속성을 지칭하는 몇몇 개의 액센트를 주고 있다.

첫째, 저자는 가장 강조하는 하느님의 속성을 지혜로, 잠언 8:1-9과 집회서 24장에 나타나는 지혜와 동일하다. 그러나 이 지혜서 속에서, 보다 더 높은 차원에서 전개되고 있다. 즉 지혜의 인격화가 나타난다. 이 지혜의 기원과 본성은 그리스 철학적 용어들로 묘사되고 있다. 지혜의 창조적 활동과 우주론적 역할(7:21, 8:5-6, 9:29), 하느님과의 내적 긴밀관계(8:3-4, 9:4), 전지전능성(7:23-24), 우주섭리(8:1), 이스라엘 역사 안에서의 자비로운 역할(1:6, 7:23), 인간에 대한 사랑(1:6·7·23) 등등. 저자는 당대의 그리스 세계를 식별하는 백과사전적 지식을 지혜에서 부여한다(7:16-21, 8:8).

궁극적으로 이 지혜는 모든 학문과 앎의 원천(7:16-21)으로, 관계되는 가르침은 신약성서가 은총에 대해 부여할 가르침에 대한 서곡처럼 형성된다. 지혜는 거룩한 자들의 마음속에 거주하고(1:4, 7:27) 하느님의 성령과 동격으로 놓여지고 있으며(1:4-7, 9:17) 하느님과의 우정을 기약하는 보물인 것이다(7:14 · 28). 하느님께서 지혜를 허락하시므로 그분께 청해야 한다(7:7 · 9). 인간이 모든 자질을 소유하고 있다하더라도 지혜를 소유치 않으면 하느님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니다(9:6). 지혜는 하느님의 율법을 준수케 하고, 완전한 불멸을 가져다준다(6:17-20, 8:17).

둘째, 의인들의 불멸 : 저자는 보상을 받지 못한 채 죽어 가는 의인의 문제에 봉착하여, 순결한 영혼들이 지상에서 박해받고 하느님 곁에서 완전한 평온을 누리며 심판 날에 보상받을 것이라고 가르치면서, 욥이 분개해서 던진 질문들에 응답을 해준다(2:22, 3:1-9, 4:7-14, 5:15-23). 저자에게 있어 의인들에 대한 미래 보상 사상은 ‘불사’, ‘불멸’이라는 단어로써 묘사되어 있는데 이는 전통적으로 그리스 용어들이다(1:15, 2:23, 3:4, 4:1, 6:18-19, 8:17, 15:3). 저자는 독자에게 의인들의 삶이 육체적 죽음과 함께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곁서 영원히 영광스럽게 지속된다는 것을 이해시키고자 한다. 저자에게 있어서 이 지상 삶에서 일어나는 것은 천상의 삶에 대한 준비이고, 의인의 고통은 그를 깨끗하게 하기 위함이며 더 큰 보상을 얻게 하려는 것임이 분명하게 나타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뜻을 이행하고 그 사랑 안에서 사는 것으로서 이것이야말로 영원한 생명에로 나가는 길이다.

결론적으로 지혜서는 이스라엘의 정통적 종교에 대한 충실성과 그것을 현실화하려는 항구적인 근심, 걱정으로 이채를 띠고 있는 유다인 저서이다. 이런 점에서 지혜서에 나타난 교의 중 몇몇 개가 신약성서 안에서 발견되고(로마 1:20-23, 골로 1:12, 15:17, 히브 1:2-3). 교부들에 의해 폭넓게 인용되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安秉鐵)

[참고문헌] Ancien Testament, TOB, 1977 / The Interpreter’s Dictionary of the Bible, Abiugdon Press / C. Larcher, Etudes sur le livre de la Sagese, Paris Gabolda 1969 / H. Cazelles, Introduction critique a l’Ancien Testament, Desclee et Cie, Paris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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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향 [한] 指向 [라] intentio [영] intention

지성(知性)에 의하여 바람직하고 달성 가능한 목표로 제시된 어느 선(善)을 성취하고자 하는 의지의 행위. 이는 수단에 대한 고려없이 목적만을 추구하는 의지의 작용이 아니고 선에 이르는 목적뿐 아니라 그 수단까지도 의도하는 행위이다. 지향에는 현실적(actualis), 습성적(habitualis), 추정적(interpretativa), 잠재적(virtualis) 지향으로 구분된다. 현실적 지향은 개인이 어느 행위를 자유롭게 이행할 때 존재하는 것이며, 성사를 집전할 때와 같이 행위하고 있는 가운데 행위자에게 직접 영향을 미치지 않는 상태이며 그 행위는 먼 원인이 되고 있을 뿐인 것이다. 추상적 지향은 행위자가 특정 상황을 예측했더라면 당연히 가졌으리라고 인정되는 의지의 작용이다. 예컨대 구체적인 사정과 관련하여 어느 법 규정의 문리적 해석이 법 생활에 이익보다는 해를 끼칠 경우 입법자의 합리적 의향을 추정하여 그 법 규정을 엄격히 해석함으로써 그 주체적인 사정에 대한 적용을 배제하는 것과 같다. 잠재적 지향은 한 번 내린 의지의 결단이 행위가 진행 중에 있는 행위에 지속하여 영향을 미치기는 하나 행위자의 의식 속에 뚜렷이 나타나 있지 않는 경우이다. 이러한 지향을 지니고 행위를 수행한 행위자는 자신의 행위에 대한 윤리적 책임을 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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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학순 [한] 池學淳

지학순(1921∼1993). 초대 원주(原州) 교구장. 주교. 세례명 다니엘. 평남 중화군 중화면 청학리에서 출생. 1934년 중화본당 주임 콜먼(Joseph Coleman) 신부에게 영세, 입교하였다. 1935년 중화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이듬해 동성상업학교 을조(東星商業學校乙組)[소신학교]에 입학했으나 1940년 병으로 중퇴한 후 1943년 다시 함남 덕원(德源)신학교에 편입, 중등과 · 고등과 · 철학과를 거쳐 1948년 신학과에 진학하였다. 1949년 북한 공산정권에 의해 덕원신학교가 폐쇄되자 월남을 시도했다가 공산군에게 체포되어 6개월간의 옥고를 치른 후 이해 말 윤공희 대주교(당시 신학생)와 함께 월남에 성공, 성신대학(聖神大學)[현 가톨릭大學]에 편입했고 6.25 동란 중 국군에 지원입대하여 전투에 참가, 1952년 2월 횡성전투에서 부상당한 뒤 곧 제대하고 가톨릭대학에 복학, 1952년 12월 15일 사제로 서품되었다. 서품 후 거제도 포로수용소 군종신부, 1953년 청주 복문로본당 보좌신부를 지내고 1956년 로마 프로파간다대학에 유학, 동대학에서 교회법석사 · 교회법박사 학위를 차례로 취득하고 1959년 귀국했고, 귀국 후 청주교구장 비서, 1962년 부산 초장동본당 주임신부를 거쳐 1965년 원주교구의 창설과 함께 초대 교구장으로 임명되어 이해 6월 29일 주교로 성성(聖成)되었다.

교구장 부임 후 원주교구의 교세 신장과 발전에 주력, 많은 교육 · 사회복지기관을 설립하고 신협운동을 주도하는 한편 1970년대 초반부터 한국의 사회정의 · 인권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 국제사면위원회 한국위원회 위원장, 정의평화위원회 총재, 한국노동교육협의회 회장, 한국 교회사회선교협의회 회장을 역임했고 이러한 사회정의 · 인권 · 노동문제에 대한 강경한 발언과 투철한 실천으로 인해 1974년 내란선동과 긴급조치 1.4호 위반으로 체포되어 징역 15년 자격정지 15년을 선고받았으나 이듬해 구속집행정지로 석방되었으며 이 사건으로 인해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결성되기도 하였다.

현재 원주교구장으로서 원주교구의 사목과 행정을 총괄하고 있고 그밖에 주교회의 사회주교위원회 위원, 주교회의 인성회 담당주교, 평신도사도직 전국 단체, 한국 가톨릭 나사업가연합회 담당주교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저서로는 <내가 겪은 공산주의>(경향잡지, 제62권 제1호 1970. 1월호∼제64권 제3호 1972년 3월호), ≪정의가 강물처럼≫(형성사, 1983) 등이 있다.

[참고 : 지학순 주교는 1993년 3월 12일 성모병원에서 선종하여, 제천 배론 성지 성직자 묘지에 안장되었다. 현재 원주교구 제2대 교구장은 1993년 착좌한 김지석 야고보 주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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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성당 [한] 地下聖堂 [라] Crypta [영] Crypt

원래는 지하의 통로 밀실(密室) 등을 의미했으나 로마 박해시대에 이르러 무엇보다도 묘지의 일부를 가리키고, 대개는 카타콤바의 통로가 이렇게 불렸고, 묘지 자체도 그렇게 불렀다. 오늘날에 와서는 종교의식이 거행되는 교회의 큰 지하성당을 가리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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