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보나롤라 [원] Savonarola, Girolamo

Savonarola, Girolamo(1452-1498). 이탈리아의 교회개혁자. 페라라 태생. 1475년 볼로냐의 도미니코회 수도원에 들어갔고, 뒤에 피렌체의 성 마르코 수도원으로 옮겼다가(1482년), 다시 로렌초 데 메디치 수도원으로 옮겼으나(1489년), 다시 성 마르코 수도원으로 돌아와서 그 원장이 되었다(1491년). 그는 르네상스가 조정시킨 도시의 종교적 도덕적 부패를 날카롭게 비판, 도시의 멸망을 경고하였다. 또한 자기는 하느님이 임명하신 예언자라는 자각을 지녔으며, 그의 피렌체 멸망에 관한 예언이 프랑스의 샤를르 8세의 피렌체 진군으로써 적중되자, 그에 대한 신망이 높아졌다. 이때 메디치가(家)는 도시에서 추방되었지만, 그의 희망에 따라 도시는 공략을 받지 않았다. 그의 지도로 신정정치(神政政治)가 시행되고, 교회는 회중으로 가득 찼으며 저속한 오락은 폐지되었다. 그의 영향력은 약 7년간 계속되었지만, 그의 정치 이상이 높을수록 실행 불가능한 일도 있어서, 피렌체로의 복귀를 노리는 메디치가와 그 도당으로부터 공격당하게 되었고, 또한 그의 주장에 따라 전개되었던 과격한 종교운동에 대한 시민의 반대도 격화되었다.

그는 더 나아가 교회의 혁신을 주장하고, 이것을 이탈리아 전체에 미치게 하기 위해 부패의 근거지인 로마에 대한 공격을 시작했으나, 결과적으로 교황 알렉산데르 6세로부터 파문 선고를 당하였다(1497년). 이때는 시회(市會)로부터 지지를 받았지만, 얼마 뒤 프란치스코회 수사와의 불에 의한 시련 대결을 계기로 그의 신망은 상실, 그와 두 종자(從者)는 투옥, 사회의 재판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1498년). 그에게서 교리상의 개혁은 찾아볼 수 없었지만, 그는 교황 무류설을 부정하고 일반 교회회의의 권위를 강력히 주장한 바 있었으므로, 종교개혁의 선구자였다고 볼 수 있다. 주요저서로 설교집 ≪F. Cognasso-R. Paimarocchi≫(3권, 1930-1935)가 있다.

[참고문헌] J. Schnitzer, Quellenund Forschungen zur Geschichte Savonarolas, ⅴ. 4, 1902-1910 / R. Rudolfi, Vita di Girolamo Savonarola, ⅴ. 2, 1952 / M. Ferrara, Savonarola,ⅴ. 2, 1952.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사변신학 [한] 思辨神學 [영] speculative theology [관련] 신학

사변적(思辨的) 신학의 뜻. ‘사변적'(speculative)이란 ‘실용적'(practical)에 대비되는 용어로서 이론 자체를 위한 이론, 진리를 위한 진리탐구를 말하고, 이에 대하여 ‘실용적’이란 발견된 진리를 기초로 하여 다른 무엇을 하거나 또는 만들거나 하는 것을 말한다. 성 아우구스티노에 의하면 ‘사변적’이란 말은 ‘거울’을 뜻하는 speculo에서 기원한 것이라고 한다.

하느님에 대한 지식을 사변적 또는 실용적 지식으로 때로는 구별하기도 하지만, 이건 다만 하나의 유추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느님에 대한 지식을 인간의 인식양태(認識樣態)에서 구별한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엄밀한 의미에서는 신학은 사변적인 동시에 실용적인 학문이라 할 것이다. (⇒) 신학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사벨리우스주의 [한] ~主義 [라] Sabellianismus [영] Sabellianism [관련] 삼위일체논쟁 성부수난설

삼위일체론의 이단, 즉 사벨리우스(Sabellius)가 주장한 이단적 이론. 215년경 그는 그리스도 양태론(樣態論, modalism)을 주장하였지만 당시의 교황 성 갈리스도 1세(재위 : 217-222)로부터 배척당하였다. 그 뒤 수십 년이 지난 다음 사벨리우스의 양식설(樣式說)은, 로마의 신학자 노바시아노(Novatianus)의 저서 ≪삼위일체론≫(De Trinitate)에 의해서 종국적인 배척을 받았다. 사벨리우스주의는 서방에서는 성부수난설(聖父受難說, Patripassianism)로 지칭되었으며, 삼위일체에 있어서의 위격의 존재를 부인하는 결과 예수의 신성을 부인하고 수난당한 분도 예수 자신이 아니라 성부 자신이라는 설에 이르렀었다. (⇒) 삼위일체논쟁, 성부수난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사베리오 [라] Xaverius, Franciscus [영] Francis Xavier [스] Francisco Javier

Francis Xavier(1506∼1552). 성인. 축일은 12월 3일 스페인의 예수회 회원. 인도에 예수회 포교(布敎)의 기초를 구축하고, 최초로 그리스도교를 일본(日本)에 전교했기 때문에 인도 및 일본의 사도(使徒)라고 불린다. 1619년 복자(福者)에, 1622년 성인 위에 오르고, 1748년 ‘희망봉으로부터 인도, 중국, 일본에 이르는 여러 나라의 수호성인.’ 1927년 가톨릭 포교의 수호성인으로 숭앙되었으며, 가톨릭 교회에서 가장 존경받는 성인의 한사람이다.

사베리오는 북 스페인의 독실한 가톨릭 신자들인 바스크족(族) 출신이다. 나바라(Navarra)주 팜플로나 부근의 하비에르성 성주 야수(Juan de Yasu)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1525년 성직자의 길을 택하고 파리대학에서 철학을 연구, 박사학위를 취득(1529년), 모교에서 철학을 강의하였다. 그 뒤1534년 8월 로욜라의 이냐시오(Ignatius de Loyola) 및 5명의 동료와 함께 파리 근교 몽마르트 언덕 위의 순교자 성당에서 예수회를 창립하였다. 포르투갈왕 조앙 3세의 요청에 따라 선교사로서 1541년 희망봉 이동(以東)의 모든 동양제국에 대한 교황특사 자격으로 포르투갈의 리스본을 출항, 1년 후인 1542년 포르투갈령 동인도 수도 고아(Goa)에 상륙, 1545년까지 동인도 포교에 종사하였다. 1545년 9월 말레이반도의 말래카(Malacca)에 상륙, 1546년1월 뉴기니아섬의 서쪽에 위치한 몰루카스제도(諸島)를 방문한 후 1547년 6월 말래카로 귀환, 그곳에서 일본인 야지로(弥次郞)를 만나, 고아로 데리고 가서 교리를 공부시키고 세례를 받게 하였다.

1549년 4월 일본에 대한 포교를 의해 야지로 등과 함께 고아를 출항, 8월에 야지로의 고향인 일본 규우슈(九州)의 가고시마(鹿兒島)에 상륙하였다. 가고시마를 위시하여 히라도(平戶), 야마구찌(山口), 교오또(東都), 붕고(豊後) 등지에 2년 3개월간 포교, 그의 일본에 대한 사랑과 포교방침은 그후 일본 교회성격에 큰 영향을 남겼다. 1551년 11월 일본을 출발, 말래카를 거쳐 이듬해 1월 고아에 도착, 중국 포교를 위해 4월에 고아를 출발, 광동항(廣東港) 밖의 상천도(上川島)에서 약속된 안내자를 기다리던 중 심한 열병에 걸려, 상천도 해안의 초막에서 사망하였다. 그가 평생에 영세를 준 사람은 3만여 명이었다고 하며, 그의 포교활동은 그리스도교 사상 최대의 것이었다.

해외에서의 그에 대한 경모의 사례를 들자면, 과테말라(1650년), 마닐라(1653년), 바이아(Bahia, 1686년), 바세인(Bassein, 1631년), 고아(1640년) 등에서는 각각 그를 수호성인으로 선정하였다. 특히 고아에서는 1624년 그의 유해를 신축된 예수성당에 옮겼다가, 1660년 특별경당을 건립하여 그 유해를 안치하였다. 1683년 이래로 고아의 각 지방관리들은 취임 시에 그 홀(笏)을 이 성인의 손에 놓았다가 그 손에서 다시 받아 쥐는 관습이 있다. 18세기 예수회 해산으로 중단되었던 이 성인의 유해 공람(供覽)이 1859년에 재개되었다(1878, 1890, 1910, 1922, 1931년). 프로테스탄트 및 영국 국교회에서도 그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고 있다.

[참고문헌] L.J.M. Cros, Saint Francois de Xavier, sa vie et ses lettres, Paris 1900 / E. Thibaut, Lettres de S. Francois Xavier, Bruxelles 1922 / G. Schurhammer, Der hl. Franz Xaver nach seinen Briefen, Dusseldorf, 1926 / G. Schurhammer, Die zeitgenossischen Quellen zur Geschichte Portugiesisch Asiens und seiner Nachbarlander(Ostafrika, Abessinien, Arabien, Persien, Vorder und Hinterindien, Malaiischer Archipel, Philippinen China und Japan) zur Zeit des hl. Franz Xaver, (1538-1552), 6080 Regesten und 30 Tafeln, Leipzig 1932.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사백주일 [한] 卸白主日 [라] Dominica in albis [영] Sunday of Quasimodo

부활주일 다음의 첫 일요일을 말한다. 옛날에는 이 주일을 사백주일 및 부활 제1주일이라고 불렀으나 지금은 부활 제2주일이라고 부르고 사백주일이란 표시는 없다. 고대 교회에서 부활주일에 세례받은 신자들이 그 영혼의 결백을 상징하는 흰 옷을 입었다가 이날 벗었던 관습에서 사백주일이란 말이 생겨났다. 연중주일 중 제일 으뜸인 부활주일은 1주일간 지내는 축제이므로 부활대축일은 사백주일로써 끝이 난다. 18세기 이래로 이 날은 많은 곳에서 첫영성체를 거행하는 공동축제의 날로 이용되었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