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렘 [원] Wilhelm, Nicolas Joseph Marie

Wilhelm, Nicolas Joseph Marie(1860-1938). 파리 외방전교회 출신, 조선교구 선교사. 한국명 홍석구(洪錫九). 1881년 파리 외방전교회에 들어가 1883년 2월 17일에 사제서품을 받고, 3월 28일 임지인 페낭(Penang)신학교로 떠났다. 이 때 페낭신학교에는 한국으로부터 21명의 신학생이 유학하고 있었으므로, 그는 향후 5년간 그들과 고락을 같이하면서 그들의 교육에 전념하였다. 1888년 조선교구로 배속되어 1889년 2월에 서울에 도착하자 곧 황해도 지방의 전교를 맡아, 매화동(玫花洞) 신천(信川)의 청계동(淸溪洞)에 성당을 건립하고 진남포(鎭南浦)에도 성당기지를 마련하는 등 교세확장에 노력하였다. 그의 이러한 노력으로 황해도지방은 교세가 갑자기 늘어나, 그 결과 자연토착민과의 마찰이 생기고, 더욱이 그의 곧고 과격한 성격은 관(官)과도 마찰을 일으켜 급기야는 ‘해서교안'(海西敎案)을 초래하는 비운을 겪어야 하였다.

한편 그는 항상 한민족의 편에서 한민족의 독립정신을 고취시켰는데, 그가 세례를 준 사람 중의 한 사람인 안중근(安重根)을 음양으로 도와주었고, 안중근이 조선침략의 원흉인 이또오(伊藤博文)를 만주 하얼빈 역에서 사살하고 체포되자, 그를 감옥으로 찾아가 격려하고 사형선고를 받은 후에는 다시 그를 찾아가 고해성사를 베풀어줌으로써 그로 하여금 신자로서의 마지막 길을 걷게 하는 등 여러 가지로 항일 민족운동을 도왔다. 그의 안중근 방문은 교구장인 뮈텔(Mutel, 閔德孝) 주교의 뜻을 거슬린 행동이었고, 그와 다른 신부들간의 불화로 마침내는 한국을 떠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1912년에 한국을 떠났다. 그러나 그는 계속 파리 외방전교회원으로 머무르면서 1938년 사망할 때까지 고향인 알사스에서 지냈다. 그는 1919년 베르사이유 조약이 조인될 당시 파리의 한국인 대표들과 함께 한국의 독립을 위해 노력하였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빌레르트 [원] Willaert, Adrian

Willaert, Adrian(1480?-1562). 플랑드르의 작곡가. 베네치아파의 창시자. 1527년 베네치아 성 마르코 대성당의 악장으로 임명되어 여생을 마치기까지 후일에 베네치아파 거장들이 된 많은 제자들을 지도하였다. 제자들 중에는 로레(C. de Rore, 1516∼1565), 비센티노(Nicola Vicentino, 1511∼1572), 잉제녜리(M.A. Ingegneri, 1545∼1592), 안드레아 가브리엘리(Andrea Gabrieli, 1510∼1586), 조반니 가브리엘리(Giovanni Gabrieli, 1557~1612) 등이 있었다. 그의 가장 획기적인 개혁은 2개의 오르간과 2개의 코러스의 구사라 하겠다. 성 마르코 대성당에는 제대(祭臺)의 좌우로 창대(唱臺)가 있고 각 창대에 오르간이 하나씩 놓여 있다. 그가 1550년 작곡한 는 양편에 있는 오르간 2개를 동시에 이용하고 역시 양편에 합창대를 배치하여 전체의 음향적 효과를 꾀한 작품이었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빈첸시오회 [독] Barmherzige Schwestern vom HL. Vincenz von Paul zu Paderborn

1633년 프랑스의 파리에서 뱅상 드 폴(Vincent de Paul) 신부와 그의 협조자 루이즈 드 마빌락(Luise de Mavillac)에 의해 창설되었다. 윤공희 주교의 초청으로 1964년 서독 파더본(Paderborn) 모원에서 수녀들이 한국을 답사한 후 1965년 1월 3명(M. Thelresia Henkemeyer, M. Adelheid Hinse, M. Ysentrud Noring)의 수녀가 내한하여, 수원(水原) 지동을 중심으로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1967년 6월에는 수원 지동 93번지에 성 빈센트병원을 개원하여 활동하고 있으며 1969년에는 수련원을 설치하여 1971년 국내에서 첫서원을 실시하였다. 가난해서 의료 혜택을 받고 있지 못한 이들을 위한 사회사업과 양로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본 수녀회는 1983년말 현재 아델하이드(Adelheid) 원장 수녀를 비롯한 102명의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빈첸시오의 애덕자매회 [영] Daughters of Charity of St. Vincent Paul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고무되어 가난한 사람들 안에서 그리스도를 보고 하느님께 봉사하기 위하여 1633년 프랑스 파리에서 성 빈첸시오와 그 협력자 성 루이즈 드 마빌락(St. Luise de Mavillac)에 의해 창립되었다. 1933년 일본관구가 설정된 후 이경재(李庚宰) 신부의 요청으로 1978년 일본인 수녀 2명(Jeanne Kinashi, Constance Aummel)이 처음 내한하였다. 나환자들의 간호와 봉사를 목적으로 내한한 수녀들은 안양에 정착하여 라자로 마을에서의 봉사와 정착촌 이동진료 등의 활동을 하고 있는데 곧 군포(軍浦)에 수련원과 함께 본당을 건립함으로써 본당과 교육복지사업 등에서도 활동할 수 있도록 준비중이다. 1983년말 현재 카스퍼(Baptista Casper) 원장수녀 외에 미국인 수녀 2명, 일본인 수녀 3명이 활동하고 있으며, 3명의 지원자 중 2명이 일본에서 수련 중이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빈첸시오 페레리오 [라] Vincentius Ferrerius

Vincentius Ferrerius(1350-1419). 성인. 축일은 4월 5일. 스페인의 도미니코회 수사. ‘최후심판의 천사’라 불리던 설교자. 발렌시아에서 태어나 프랑스 브르타뉴지방의 반에서 별세하였다. 1367년 발렌시아의 도미니코회 수도원에 들어가, 2년간 타라고나에서 수학한 뒤 레리다 대학에서 논리학을 가르쳤다. 1373년부터 바르셀로나의 도미니코회 성서학원에서 신학을 연구, 그 후 프랑스의 툴루즈(Toulouse) 대학에서 신학공부를 정식으로 마치고(1379년), 그해 바르셀로나에서 추기경 페드로 데 루나(Pedro de Luna, 후의 대립 교황 베네딕토 13세)에 의해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 후 소수도원장으로 있다가 1384년부터 발렌시아의 대성당 학교에서 신학을 가르쳤다.

1394년 아비뇽의 대립교황 글레멘스 7세가 죽고 페드로 데 루나가 그 후계교황이 되어 베네딕토 13세를 칭하게 되었다. 빈첸시오는 베네딕토 13세의 부름을 받고 아비뇽에 가서 그 고해신부가 되었다. 1399년 아비뇽을 떠나 설교자로서 20년간 스페인, 남부 프랑스, 이탈리아의 롬바르디아 지방, 스위스, 북부 프랑스, 로우 컨트리즈(Low Countries)[현재의 네덜란드 · 벨기에 · 룩셈부르크를 포함하는 저지대] 등을 순례하며 전도하여 많은 추종자를 얻었다. 이때 많은 이적을 행했다고 전해진다. 만년에는 교황청의 분립(分立)을 종결시키기 위한 운동에 공헌하였다. 1455년 교황 갈리스도(Calixtus) 3세에 의해 시성(諡聖)되었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