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원요리 [한] 發愿要理

서원(誓願)에 관한 저자미상의 한문교리서. 1871년 중국에서 간행되었고 일명 ≪성원문답≫(聖愿問答)으로도 불린다. 서원에 관한 총 28개 조목의 문답이 상 · 하 편(編)에 나뉘어 수록되어 있다. 상편의 제목은 ‘총론성원’(總論聖原)으로 서원의 일반적인 의미 · 종류 · 기간 등을 설명하고 있는 12개의 문답이 수록되어 있고, 하편의 제목은 ‘논정결지원’(論貞潔之愿)으로, 수도서원 중 동정서원(童貞誓願)에 관해 그 의미 · 종류, 동정서원을 파하는 죄(罪), 서원서(誓願書)의 규식 등을 설명하고 있는 16개의 문답이 수록되어 있다. 우리나라에는 간행 직후 전해져 한글로 번역 필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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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냐노 [원] Valignano, Alessandro

Valignano, Alessandro(1539~1606). 이탈리아 출신의 예수회 선교사. 예수회 고아(Goa) 관구장. 프란치스코 사레리오 이후 동양 선교에 있어 가장 큰 공적을 남긴 인물. 중국명 범예안(范禮安), 자는 입산(立山). 이탈리아 중부 아브루치(Abruzzi) 치에티(Chieti)에서 태어났다. 1557년 파두아(Padua)대학에서 법률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1566년 예수회에 입회, 로마의 예수회 신학교에서 5년 동안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고 1570년 3월 25일 사제서품을 받았다. 이듬해 예수회 지원자들을 가르치던 중 지원자인 리치(M. Ricci, 利瑪竇)를 만나게 되었고, 1572년부터 1년간 마체라타(Macerata)의 대학에서 강의하였다. 1573년 예수회 고아관구의 순찰사(巡察師)로 임명되어 이듬해 9월 인도의 고아에 도착, 인도의 방인사제 양성을 위한 신학교를 건립하고 인도 선교에 힘쓰는 한편 1577년 마카오에 건너가 리치와 루지에리(M. Ruggieri, 중국명 羅明堅)를 맞아들이고 이들로 하여금 본격적인 중국 선교를 시작하게 하였다. 1579년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방인사제 양성을 위한 신학교 건립을 추진하고 당시 규우슈우(九州)의 실권자들과 친분을 맺은 뒤 1582년 로마에 파견되는 일본 사절들과 함께 고아로 돌아왔고, 1584~1587년까지 예수회 고아 관구장으로 재직하면서 각 포교지에 학교, 병원 등을 설립하였다. 1590년 로마로 파견되었다가 귀국하는 일본사절들과 함께 마카오에 들러 인쇄기를 갖고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도요또미 히데요시(豊臣秀吉)를 접견, 천주교 금압정책의 철회를 요청했으나 도요또미 히데요시는 천주교인 다이묘오(大名)들이 자신의 정권에 위협을 준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 일본에는 천주교 탄압이 가중되었다. 그러나 이때 가지고 간 인쇄기로 인하여 일본에는 많은 그리스도교 서적이 출간되어 그리스도교 문화가 꽃피게 되었다. 그 후 1592년 고아로 돌아와 고아와 마카오를 중심으로 동양 전역의 선교에 힘썼고, 1598년, 1603년 재차 일본에 건너가 도꾸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를 만나 천주교 금압정책의 철회를 요청했으나 거절당하고 마카오로 돌아와 선교하던 중 1606년 1월 20일 사망하였다. 저서로 ≪Catechismus christianae fidei≫(Olysophon,1586), ≪De Missione legatorum Japonensium Curiam. Dialogus≫(Macao 1590), ≪Literae de Statu Japoniae et Chinae ab anno 1580 ad ann. 1599≫, ≪Commentarii ad Japonios, et ad Caeteras Indiae nationes christianae Fidei mysteriis imbuendas≫ 등을 남겼다. 사후 그는 동양 선교의 기틀을 마련한 공적으로 ‘동양의 천사’란 칭호를 얻었다.

[참고문헌] Louis Pfister, Notices Biographiques et Bibliographiques, Chang-Hai 1932 / Brucker, La Compagnie de Jesus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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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렌타인축제일 [한] ~祝祭日 [영] Valentine’s Day

‘구애(求愛)의 날’이라고도 하는 이 날에는 여자가 남자에게 구혼(求婚)을 해도 괜찮다는 관습이 지켜져 내려온다. 보통 이 날은 성인 발렌티노(St. Valentinus)의 전설과 관련이 있다고 전해지지만 직접적인 관련은 없는 것으로 보이고, 오히려 이교도의 축제에서 유래되었으리라는 설이 일반적이다. 날짜는 2월 14일이며 독일에서는 운명의 날, 영국, 프랑스, 미국 등지에서는 구애의 날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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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두스파 [한] ~派 [영] Waldenses

13세기 프랑스에서 일어난 이단. 이단의 발단은 리용의 발두스(Petrus Waldus, ?~1217)에 의해 야기되었다. 발두스는 마태오 복음 10장 5절 이하를 읽으면서 청빈(淸貧)이 그리스도교의 이상(理想)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그는 청빈을 실천하기 위해 그의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지지자들과 함께 자신들을 ‘그리스도의 가난한 자들’(pauperes Christi) 혹은 ‘리용의 가난한 사람들’이라 부르기로 하였다. 리용의 주교는 평신도들에게 신앙문제를 언급할 자격이 없음을 상기시키고 그들의 설교를 금지시켰다. 이러한 조치에 대해 발두스는 교황에게 호소하였다. 교황 레오 3세는 그를 제3차 라테란 공의회에 출두시켜 그의 청빈생활을 치하하고 신앙문제를 언급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설교를 할 수 있도록 하였다. 리용의 주교는 발두스가 조건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또다시 설교를 금지시켰다. 발두스는 다시 교황에게 호소하였다. 이에 교황 루치오 3세는 1184년 그의 설교활동을 완전히 금하였고, 그간 과격했던 운동전체를 비난하였다. 그러자 발두스는 교황에게 반항하면서 스스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청빈생활을 하는 자만이 그리스도교를 설교할 자격이 있다고 하였다. 마침내 교황청은 그를 파문하였다. 이에 지하로 들어간 발두스는 이단적인 신조를 채택하고 교회를 적대시하였다. 1217년 발두스가 죽은 후 그의 제자들에 의해 계승된 그의 사상은 청빈과 더불어 교황권위의 부정, 연옥의 부정, 평신도에 의한 사죄(赦罪)의 인정, 죄에 빠진 사제가 거행한 미사의 성사성(聖事性) 부정 등으로 압축될 수 있다. 어쨌든 이들 사상은 이탈리아, 스페인, 스위스 등지로 확산되어 종교개혁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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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펠라지우스주의 [한] 半~主義 [영] semi-Pelagianism

하느님의 은혜와 인간의 자유의지 사이의 관계에 관한 몰리나(Molina, 1535~1600)의 학설로 몰리나주의라고도 한다. 스페인의 예수회 소속 신학자인 몰리나는 하느님의 은혜를 충족적(充足的) 은혜와 효과적(效果的) 은혜로 구분하였다. 그에 따르면 이 2개의 구분은 본질적 차이에 의한 구분이 아니라 인간의 자유의지에 따른 구분이다. 즉 하느님이 모든 인간에게 부여한 은혜는 충족적 은혜인데, 이를 받아들인 각 개인이 자유의지를 갖고 이 은혜가 구원을 위해 효과적으로 작용하도록 협력할 때 이 은혜는 효과적 은혜가 되는데 만약 인간의 자유의지가 은혜와의 협력을 거부한다면 하느님의 은혜는 계속 충족적 은혜로만 남아있을 따름이라는 것이다. 일부 비평가들은 이러한 학설이 펠라지우스의 주장과 유사하다 하여 이를 반(半)펠라지우스주의라 이름 붙였다. 이들 비평가들은 반펠라지우스주의가 인간의 자유의사를 높게 평가한 나머지 은혜의 우위성을 부정하고 있다 하여 몰리나주의에 빠져 있던 당시의 예수회원들을 비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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