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문도 [원] Raymundus, de Penyafort

Raymundus, de Penyafort(1176?~1275). 성인. 축일 1월 7일. 스페인의 도미니코회 회원, 신학자. 바르셀로나부근의 빌제프란카데 페나데스에서 태어나 바르셀로나에서 세상을 떠났다. 바르셀로나의 대성당 부속 신학교를 마치고 모교에서 수사학 및 논리학을 강의, 그 후 볼로냐(Bologna)에서 8년간 수학, 1218년 법학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219년 바르셀로나 성당참사회원에 선출되었다. 그 무렵 성 놀라스코(Peter Nolasco)를 도와 무어인(人)에게 잡혀 있는 그리스도 교도 포로 송환을 위한 배상금 모금을 성공케 하였다. 이단심문을 위한 종교재판을 열렬히 지원하였고, 1229년에는 무어인에 대한 십자군 편성을 위해 진력하였다. 1230년 교황 그레고리오 9세에게 소환되어 교회법전을 편찬, ≪Decretalium Gregorii P. IX≫를 완성했는데, 이것은 ≪Corpus Juris Canonici≫의 제5권에 해당된다. 1235년 스페인 타라고나(Tarragona)의 수도원장에 임명되었으나 사양하고 이듬해 바르셀로나로 귀환하였다. 1238년부터 1240년까지 도미니코회 총장을 지냈다. 그의 유해는 바르셀로나의 성 카타리나 수도원에 매장, 1878년 성 바르셀로나 대성당 내의 성 요한 및 바울로 경당에 옮겨 안치되었다. 1601년 교황 글레멘스 8세에 의해 시성(諡聖)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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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우렌시오 [라] Laurentius

① 순교자(?~258). 성인. 로마의 부제, 축일 8월 10일. 로마의 7명의 부제 중 한 사람인데, 258년 발레리아누스(Valerianus) 황제 박해 때 교황 식스토(Sixtus)의 2세와 4인의 부제가 참수(斬首)당한지 4일 뒤 다른 4명의 성직자들과 함께 순교하였다. 순교 전, 로마시의 제독이 그에게 교회의 보화들을 양도하라고 명령하자 그는 가난한 자와 병자들을 제독 앞에 모아놓고 바로 이들이 교회의 보물이라고 말하였다고 전한다. 라우렌시오가 4일 뒤에 순교할 것이라고 예언한 식스토 2세의 유언이나 석쇠 위에서 화형당하면서 재판관에게 “다 구워졌으니 이제 뒤집어서 잡수시오”라는 농담을 보냈다는 그의 전설적인 수난사화들은 암브로시오(Ambrosius)나 프루덴시오(Prudentius), 아우구스티노(Augustinus) 등에게도 알려져 있기는 했으나 그에 대한 이야기라고 하기보다는 순교자의 전형적인 모습을 그리고 있다고 보겠다. 사실은 그도 역시 식스토 2세처럼 참수당하였을 것이라는 추측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4세기 초반에 이미 성인 축일표에 올랐으며, 로마시의 가장 유명한 순교자 중의 한 사람이 되었다. 그의 무덤 위에 세워진 ‘성벽 밖의 성 라우렌시오 바실리카’는 로마의 7개 주요 성당들 중의 하나로서 많은 순례자들이 찾는 곳이다.

② 브룬두시의~(L. de Brundusio, 1559~1619). 성인. 교회학자. 이탈리아 브룬두시 출신. 1575년 베니스관구 카푸친회에 가입, 어학적 재능을 개발한 파두아대학 시절을 거쳐 1582년 서품되었다. 그 뒤 북부 이탈리아와 남부 프랑스지역의 선교에서 성공을 거둔 것은 설교에서 유효적절하게 성경을 인용한데 있었으며, 그것들은 15권의 ≪Opera Omnia≫ 중 11권 안에 실려 있다. 또한 보헤미아, 오스트리아, 독일 등지에서 호전적인 프로테스탄트에 맞서 카푸친수도회를 건립하였으며(1599~1602년, 1606~1613년), 이외에 투스카니(Tuscany, 1590~1592년), 베네치아(Venice, 1594~1596년), 스위스(1598년), 그리고 리르구이아(Lirguia, 1613~1616년)의 관구장으로 활동하고, 1602년에는 카푸친참사회에서 수도회 총원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대부분의 선교지역을 도보로 섭렵하였으며, 엄격한 초기 카푸친의 규율을 사도활동의 필요성과 조화시키는데 전념하였다. 트리엔트 이후 가톨릭개혁에서의 그의 업적과 관련하여 교황 베네딕토 15세의 “비탄의 시기의 교회를 돕기 위해 신에 의해 들어 올려진 가장 뛰어난 인물 중에서 진정 탁월한 자”(Acta Apostolicae Sedis, Rome)라고 그를 평가하였다. 1881년 교황 레오 13세의 의해 시성되었으며 1959년 요한 23세에 의해 교회학자로 선포되었다. 축일은 7월 21일.

[참고문헌] A. Brennan, Life of St. Lawrence of Brindisi, Apostle Diplomat, New york 1911 / Capuchin Educational Conference 1960, St lawrence of Brindisi, Doctor of the Universal Church, Washington 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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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시느 [원] Racine, Jean Baptiste

Racine, Jean Baptiste(1633~1699). 프랑스의 비극작가. 깊은 종교적 도덕적 감수성을 가지고 예리한 심리적 해석으로써 인간의 감정과 격정(激情)을 그렸다. 코르네이유는 “확실히 파국(破局)으로 치닫는 행동이 그 인물의 성격에 의해서 뒷받침된다”고 평하였다. 그의 작품으로는 ≪아탈릭≫(Athalic), ≪에스텔≫(Esther), ≪미트리다트≫(Mithridate)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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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 카사스 [원] Las Casas, Bartolome de

Las Casas, Bartolome de(1474~1566). 스페인의 도미니코회 회원. 라틴아메리카의 인디언에 대한 위대한 보호자. 역사가. 세빌랴 태생. 법률을 공부한 후 콜룸부스(C. Columbus)의 1498년과 1502년의 항해에 그 비서로서 동행. 카리브해의 아이티섬에 식민자로 있을 때 인디언이 스페인인들로부터 잔혹하게 취급받고 있음을 알고, 인디언을 구하기 위해 스페인에 귀국, 신학공부를 한 후 사제가 되어 미 대륙에 도착하였다(1510년). 인디언의 노예적 취급의 완화를 위해 헌신하다가 스페인인으로부터 박해당하자 귀국(1515년), 인디언 문제에 대해 변호하였다. 후에 인디언 보호관에 임명되어 다시 미 대륙에 건너가, 선교사 이민의 지지를 받았으나, 베네수엘라에서의 인디언 식민계획은 인디언의 반란으로 실패하였다(1520~1521년). 산토 도밍고에서 도미니코회에 입회(1522년), 그 후 본국에 돌아가 인디언 보호법 통과를 위해 진력하였다. 그 후에 멕시코 치하파스의 주교로 있다가(1544~1547년), 스페인에 돌아가 발라덜리드(Valladolid)에 은퇴(1551년), 문서로써 인디언의 권리를 변호하였다. 그의 저서 ≪Brief Relation of the Destruction of the Indies≫(1552), ≪Historia General de las Indias≫는 귀중한 사료(史料)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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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살의 요한 [관련] 라살

⇒ 라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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