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체 [한] 領聖體 [라] communio [영] holy communion [독] Kommunion [관련] 성체성사

미사 중 성찬식에서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는 것을 말한다. 신자들은 영성체를 통하여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게 되고 신자 상호 간에도 일치를 이루게 된다. 영성체의 방법으로는 ① 성체(聖體)만 영(領)하는 것, ② 성체를 성혈(聖血)로 축성된 포도주에 적셔서 영하는 것, ③ 성체를 영하고 성혈로 축성된 포도주를 한 모금 마시는 것, ④ 성혈만 영하는 것 등의 4가지 방법이 있다. 로마 전례에 있어서 사제는 성체와 성혈을 모두 영하고(양형영성체) 신자들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성체만 영한다. 그러나 어느 한 가지 형상으로 영성체를 하든지 온전한 그리스도를 받아 모신다는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의 원칙대로 성체만 영해도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는 것이다. 신자들은 영성체에 앞서 성체를 흠숭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영혼과 육신의 준비를 하게 된다.

우선 성체를 영하기 위해선 성세성사를 받은 자로서 은총의 상태에 있어야 하므로 만약 대죄(大罪)를 지었다면 고해성사(告解聖事)를 받아 은총의 지위를 회복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성체를 모독하는 죄를 범하게 된다(1고린 11:27-29). 또한 육신의 준비로, 한 시간 전부터 약과 물을 제외한 음식물을 먹지 않는 공심재(空心齋)를 지켜야 한다. 신자들은 성체를 영함으로써 영혼의 성장을 가져오고, 그리스도와의 일치 및 신자들간의 일치를 이루어 그리스도를 닮고자 하는 열망이 생겨나 어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 자신을 봉헌하고 헌신케 된다. 모든 신자는 이성(理性)이 갖추어진 자라면 교회의 규정에 따라 적어도 1년에 한 번 부활절에 영성체를 해야 한다(새 교회법 920조). 새 교회법 제917조에 의하면 이미 영성체한 자가 같은 날 다시 영성체하려면 자신이 참여하는 미사 중에서만 가능하다. 교회는 신자들의 신앙생활을 위하여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주일마다 혹은 매일 영성체할 것을 권장한다. (⇒) 성체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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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신학 [한] 靈性神學 [라] thelolgia spiritualis [영] spiritual theology

영성 생활의 성격과 본질을 규명하고 완덕(完德)에 이르는 길에 대한 이론과 방법을 연구하는 학문. 이는 본시 독립된 학문이 아니었으나 17∼18세기에 와서 신학의 각 분과가 독립될 때 영성신학도 독립하게 되었다. 그러나 영성신학이 영성생활을 다룰 때에는 은총론의 기초 위에서 다루게 되므로 교의신학과 밀접한 관계를 갖게 되고 영성생활의 원리와 방법을 탐구할 때에는 윤리신학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 영성신학의 원천은 성서, 전승, 교회의 가르침, 교부와 신학자들의 가르침 등이며 그 목적은 완덕을 얻는 방법을 가르치는 데에 있으므로 실천적인 학문이다. 이 신학은 연역적 · 귀납적 방법을 병용한다. 완덕의 본질이나 요건 등을 계시진리에서 연역해야 하고 연역한 일반 진리를 구체적인 상황에 적용하는 데 있어서 일찍이 완덕에 도달한 적이 있는 성인들의 사적(史蹟)을 귀납해야 하기 때문이다.

영성신학이 다루는 그리스도교적 영성생활이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계시와 구원사업의 신비적 차원을 받아들이고 실현하는 그리스도 교인의 존재와 삶을 의미한다. 이는 성령의 도움으로 그리스도 교인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부께 도달하려는 빠스카적 삶인 것이다. 이 삶은 세 단계를 거치면서 발전해 간다는 것이 전통적인 견해이다. 그리스도교 교인이 죄에서 정화(淨化)되어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심신을 강화하는 정화, 그 다음으로 그리스도 교인이 ‘그리스도를 입어’ 그리스도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조명(照明), 마지막으로 언제 어디서나 하느님을 찾고 그분의 현존을 생생하게 의식하며 행복을 느끼는 일치(一致)의 단계가 그것이다. 이들 단계에는 수덕과 신비의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수덕적인 요소란 은총의 도움으로 완덕에 나아가는 모든 노력 가운데 특히 죄악을 멀리하고 덕행을 실천하는 것을 가리키고, 신비적인 요소는 성령의 작용에 힘입어 하느님과의 일치를 이룸으로써 하느님의 내밀한 지식에 접하는 영신생활의 깊이이다. 이들 양 요소는 하나의 영성신학에 대한 두 관점이었다. 신비생활은 수덕생활의 발전 결과 자연히 도달하는 단계로 여겼던 것이다. 그러나 스카라멜리(G.B. Scarameli, 1687∼1752)가 영성신학을 수덕신학과 신비신학으로 나누자 이 구별을 따르는 학자들이 많았다. 이에 따르면 수덕 신학의 대상이 영성생활 가운데 그리스도 교인의 일상적인 측면인 데 대하여 신비신학은 직관 · 계시 · 신비적인 일치 등 특수은총을 연구한다. 그러나 오늘날 통설의 입장은 신비신학과 수덕신학이라는 말 대신에 영성신학이라고 표현하는 전통적인 가르침으로 복귀하는 경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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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한] 靈性 [라] spiritualitas [영] spirituality

그리스도교에서는 섞인 것이 조금도 없는 순전한 비물질성(非物質性)을 영성이라고 부른다. 본질적으로 적어도 본질 및 활동에 있어서 물질에 의존하지 않는 정신적인 것의 속성을 지칭하는 말이다. 일반적으로는 신령스럽게 총명한 품성(品性)이나 성질, 또는 천부(天賦)의 총명을 영성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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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복경 [한] 榮福經 [라] doxologia major [관련] 대영광송

⇒ 대영광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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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복 [한] 永福

천주교 용어로서 한국이나 일본에서 오래전부터 쓰여 왔으나 오늘날에는 잘 쓰이지 않는 말이다. ‘영복’이란 본래 ‘영원한 복락(福樂)’의 약어(略語)로서 만들어진 말인데, 뜻은 천당에서 받는 영원한 복락을 가리킨다. 이 말의 반대말에 해당하는 것은 ‘영벌’(永罰, damnation) 즉 ‘영원한 벌’이다.

‘영복’을 받는 사람은 의인(義人), 또는 죄를 짓지 않고 애덕(愛德)의 생활을 하다가 숨진 사람으로서, 이들은 그리스도의 판결로 영원한 생명의 나라 즉 천국에 들어가서 비로소 이 영원한 복락을 누릴수 있다. 하느님에게서의 축복을 받은 사람만이 즐길 수 있는 끝이 없는 행복의 상태를 말한다. 이 표현은 영원히 행복이 계속된다는 것만이 아니라, 생명의 충만도 의미한다. 이러한 생명의 충만을 신자는 이미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생명에 참가함으로써 가지고 있다. ≪한불자전≫(韓佛字典)의 풀이에 따르면, ‘영복’은 ① 천구의 성인들의 영화와 행복, 또는 영광스러운 행복, ② 영원한 행복(bonheur eterenel)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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