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페소군도공의회 [한] ∼群盜公議會 [영] Robber Council of Ephesus

449년 에페소에서 개최된 교회회의. 이 회의는 플라비아노(St. Flavianus)에 의해 단죄된 에우티케스(Eutyches)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폭력을 동원하여 회의를 개최하였기 때문에 군도공의회라 불리며, 플라비아노와 테오토레투스(Theodoretus)가 이 회의의 결정에 대해 로마에 상소하였고, 로마 교황청은 이 결정을 폐기하였고, 이 회의에 참석한 일부에 대해 파문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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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페소공의회 [한] ∼公議會 [라] Concilium Ephesinum [영] Council of Ephesus

Council of Ephesus(431년). 네스토리우스파와의 논쟁을 해결하기 위해 테오도시우스(Theodosius) 2세에 의해 소집된 제3차 공의회. 네스토리우스에 동조하는 안티오키아의 요한이 인솔하는 시리아의 주교들과 교황 성 첼레스티노(St. Celestinus) 1세의 대표들이 참석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에페소의 주교 멤논(Memnon)의 지지를 받는, 네스토리우스의 주된 적수인 알렉산드리아의 치릴로(Cyrilus)는 그들이 도착하는 것을 기다리지 않은 채 회의를 개막하여 버렸다. 거기서 네스토리우스는 그의 교구 콘스탄티노플에서 해임되었으며 그 자신은 파문당하였고 그의 교리는 단죄되었다. 또한 니체아 신경이 재확인되었다. 도착하여 그 사실을 들은 시리아의 주교들은 치릴로의 처사에 항의하는 테오도레트(Theodoret) 및 다수와 규합하여 그들에 대항하는 회의를 열고 거기서 치릴로와 멤논을 파문하였다. 에페소 공의회는 8개의 교회법을 제정하였는데, 첫 7개는 교리적 의문점들로부터 야기된 문제들을 다루었고, 나머지 하나는 치프로스(Cyprus)의 행정적 권리를 다루었다. 433년 요한과 치릴로는 마침내 화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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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크하르트 [원] Eckhart, Meister

Eckhart Meister(1260?∼1327). 독일의 신비사상가. 도미니코회 회원. 튀링겐지방의 고타(Gotha)에서 태어나, 에르푸르트, 쾰른에서 공부한 후 파리에 유학, 1302년 수사(修士)가 되었다. 귀국 후 수도원장으로 취임, 그 후에는 주로 라인강 상류지방에서 학식높은 설교자로서 명성을 떨쳤다. 그러나 만년(晩年)은 불우하여 종교재판에 회부되었으며(1326년), 교황에게 억울함을 상소했으나 미해결인 채로 죽었다. 그의 28종에 이르는 저서는 사후에 교황 요한 22세(재위 : 1316~1334)에 의해 이단으로 선고됨으로써 금서(禁書)로 낙인이 찍혔다(1329년). 그는 저명한 학자이기도 했으나 무엇보다도 신비사상가였으며, 이 신비사상가로서의 본질이 교회의 금기(禁忌)에 저촉되었던 것이다. 그의 교설은 토마스 아퀴나스류(流)의 사변적 색채로 덮여 있었는데, 그 본질은, 모든 것은 “영혼 속의 하느님의 말씀이 태어난다”라는 신비적인 마음의 체험일 따름이다. 그는 신학이나 교회의 권력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인간과 하느님과의 직접적인 접촉’을 주장하였다(내가 없으면 하느님도 없다). 이것은 독일 신비사상의 원천이 되어, 신도들의 살아 있는 신앙이 되었으며, 이런 의미에서 그는 종교개혁의 선구자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그는 새로운 독일어의 창조자이다. 독일어가 시(詩) 분야에서만 쓰이고 있던 13∼14세기에, 그는 독일어로 자신의 철학을 서술하였다. 그것은 독일 정신사의 새로운 혁명을 의미한다. 그는 독일어의 자유로운 비유에 의해서 새로운 정념과 정신의 세계를 개척한 것이다. 독일어 설교에서 찾아볼 수 있는 ‘심연’, ‘어둠’, ‘사막’, ‘영혼의 불꽃’ 등과 같은 대담한 표현이야말로 그의 신비사상의 핵심이 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영혼의 밑바닥에 숨겨진 ‘불꽃’은,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 하나요, 하느님과 함께 창조한다. 왜냐하면 이 불꽃은 하느님 ‘심연’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어둠’’, ‘사막’, ‘무’는 계시의 하느님의 배후에 숨은 개념으로서는 파악할 수도 없는 신성(神性)을 상징적으로 가리키고 있다. 영혼은 그리스도와의 합일(合一)을 즐길 뿐 아니라 신성과도 하나가 된다. 그리스도는 역사적인 존재라기보다는 오히려 하느님의 로고스이다(그노시스). 이 ‘사막’이요 ‘무’인 신성과의 합일을 지향하는 신비사상은 그리스도교적이라기보다는 신(新)플라톤적이라고 할 수 있다. 주요 저서로 ≪Die Gesamtausgabe der deutschen und lateinischen Werke, hrg. im Auftrag der deutschen Forschungsgemeinschaft≫(1936)가 있다.

[참고문헌] J. Bernhart, Berhardinische und Eckhartische Mystik, 1912 / Ph. Strauch, Eckhart-Probleme, 1912 / F. Weinhandl, Eckhart im Quellpunkt seiner Lehre, 1926 / F. Meerpohl, Eckharts Lehre vom Seelenfunklein, 1926 / R. Backofen, Meister Eckhart,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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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콰도르 [원] Ecuador

남아메리카의 독립 공화국. 북으로 콜롬비아, 동과 남으로 페루와 경계를 접하고 있다. ‘에콰도르’란 나라 이름은 이 나라가 적도[equator]상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생겼다. 면적 28만 3,561㎢에 인구 약 895만명(1982년 추계)이다. 16세기 중반과 후반에 에콰도르의 선교사업에 종사한 단체는 프란치스코회, 메르세다리안회, 도미니코회 등이었다. 선교사들이 주로 남미 여러 나라에서 보는 것처럼 스페인 정복자들을 따라 들어와 선교사업을 전개하는 한편, 학교 등을 세워 원주민의 계몽사업에 종사한 점은 공통적인 현상이다.

1545년에 교황 바오로 3세는 에콰도르에 퀴토(Quito) 교구를 세우고, 프란치스코 피자로의 군종신부였던 아리아스(Garcia Dliaz Arias)를 첫 주교로 임명하였다. 1900년 이래 퀴토 주교좌는 비상한 주교들이 다스리는 바 되었다. 그 중의 한 사람이 수아레스(Federico Gonzalez Suarez, 1906∼1917)로써 에콰도르에서 가장 위대한 성직자의 서열에 낀다. 그는 특히 교회사 연구에 뛰어난 사람으로 그의 ≪에콰도르의 역사≫는 기념비적 대작이라 할 수 있다. 그밖에 1952년에 추기경이 된 토레(Carlos Maria de la Tore)는 가톨릭 국민학교, 가톨릭 사범학교, 퀴토 가톨릭대학 등을 설립하여 가톨릭 전파에 크게 공헌하였고, 많은 외국 선교사, 수녀들을 에콰도르에 불러들여 치료소 · 학교 · 병원 등을 경영하게 한 것도 그의 큰 공이라 하겠다. 1982년 현재 가톨릭 신자수는 823만 8,000명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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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카르트 [원] Eckardt, Andreas

Eckardt, Andreas(1884∼?). 독일성 오틸리엔 베네딕토회 선교사. 한국명은 옥낙안(玉樂安). 1909년 성 베네딕토회가 한국에 진출함에 따라 한국에 입국, 이 회에서 설립한 숭공(崇工)학교와 숭신(崇信)사범학교에서 미술을 강의했고, 1929년 이 회가 원산교구를 관할하게 되자 원산교구에서 사목하다가 1928년 독일로 귀국하였다. 저서로는 한국미술을 개설한 ≪조선미술사≫(朝鮮美術史)를 남겼다. 독일에서의 한국학의 개척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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