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역 서학서(漢譯西學書). 프랑스 출신의 예수회 선교사 앙트르콜르(Entrecolles, 殷弘緖, 1664∼1741)의 저술로 1730년 북경(北京)에서 1권으로 간행되었다. 내용은 박해(迫害)와 순교(殉敎)의 의미, 박해와 순교를 대비하여 교우들이 취해야 할 태도 등이 4부로 나뉘어 서술되어 있다. 제1부 범언(泛言)편에서는 그리스도교의 상선벌악(賞善罰惡)의 도를 논하고, 제2부 정언(正言)편에서는 마태오복음 5장[산상수훈]을 인용하여 의(義)를 위해 박해를 받는 사람이 참된 복을 누리는 사람이라고 설명한 후, 제3편 직언(直言)편에서는 순교의 의미를 설명하고 이어서 몇몇 순교자들의 약전(略傳)을 소개한 다음, 제4부 인언(引言)편에서는 교우들이 박해를 당할 때 마땅히 가져야 할 신앙태도와 순교에 대한 각오 등을 언급하고 있다. 1873년과 1927년 중국 토산만(土山灣)에서 재판(再版)되었다.
연기조당 [한] 年期阻擋 [관련] 혼인장애
무효장애 중의 하나. 남자는 만 16세, 여자는 만 14세가 될 때까지 혼인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교회법적인 조건. 교회법이기 때문에 가톨릭 신자들만을 구속(拘束)할 수 있다. (⇒) 혼인장애
연길교구 [한] 延吉敎區
만주 봉천(奉天) 대교구에 속하는 교구의 하나. 교구 관할지역인 북간도(北間島) 지방은 원래 1920년 서울대목구에서 원산대목구가 분리되자 원산대목구에 속했었다. 간도는 지형상 한국의 함경도지방과 접경한 고원지대로, 산악이 드문 평야에 지질이 비옥하여 농사에 적당하였으므로, 일찍부터 국경지방의 많은 농민들이 이주하여 조선의 영토나 별로 다름이 없는 곳이었다.
이곳에 1895년에 김이기(金以器)라는 석학(碩學)이 이주하여, 많은 제자를 모아 진리를 탐구하던 중, 그 진리를 찾아 고국에 들어왔으나 회령(會零)에서 사학괴수로 몰려 죽음을 당하였고, 이에 수제자인 김영렬(金英烈)이 스승의 뜻을 이어 혼자 원산으로 나와, 원산본당의 브레(Bret, 白類斯) 신부를 찾아 갔다. 신부로부터 복음의 말을 들은 그는 천주교야말로 진리임을 깨닫고 세례를 받아, 간도교회의 첫 신자가 되었다. 간도로 돌아간 그는 김이기의 제자들에게 천주교의 진리를 설명하고, 15명의 제자들과 함께 다시 원산으로 나와, 교리를 배워 그 중 12명이 1897년에 세례를 받고 간도에 돌아가 전교에 힘쓰니, 후에 그들을 북관의 12종도라 일컫는다. 간도지방에 천주교가 급속히 전파되자, 원산본당의 브레 신부는 1898년부터 매년 간도지방을 순회하여 그들을 사목했고, 1909년에 이르러서는 용정(龍井)과 영암촌(英岩村)에 본당이 신설되어 퀴를리에(Curlier, 南良) 남 신부와 라리보(Larribeau, 元亨根) 신부가 각각 부임 하였다. 이어 팔도구(八道溝)에도 본당이 신설되고, 뮈텔(Mutel, 閔德孝) 주교가 순찰하는 등 간도지방의 교세는 날로 더해 갔다. 이에 1920년에 원산대목구가 서울대목구에서 분리되어, 1909년에 서울에 진출한 독일의 성 오틸리엔의 베네딕토회도 진출하여 더욱 발전을 보게 되었다. 7월 19일 연길지목구를 독립, 초대 지목(知牧)에 독일사람 브레허(Breher, 白) 신부가 취임하였다. 1937년 4월 13일 대목구로 승격되는 동시에 지목으로 있던 브레허 신부가 주교로 성성(成聖)되어 초대 대목(代牧)이 되었다. 그 동안 연길교구는 수도원의 건립과 교회 · 학교 · 병원 등을 증설하여 각종 문화사업과 자선사업을 폈고, 신자수가 날로 증가하여 앞날이 크게 촉망되었으나, 1945년 소련군의 진주로 교회와 수도원은 폐쇄되고, 성직자와 수도자들은 투옥되었거나 추방되었고, 대부분의 신자들은 이젠 중공(中共) 영토가 된 땅에서 목자 없이 남아있는 실정이다. 브레허 주교는 본국으로 송환되었으나 1950년 11월 2일 서거하고, 몇몇 성직자들이 왜관 수도원지구에서 포교에 종사하고 있다.
연길대목구는 1946년 4월 11일 중국에 교계제도가 설정됨에 따라 교구로 승격되어 봉천교구에 속하게 됨으로써 한국 교회 관할에서 제외되었다. 그러나 한국 교회에서는 브레허 주교의 사망 후, 비테를리(Bitterli, 李) 신부가 최근까지 교구장 서리로 연길 교구를 관리하였다.
[참고문헌] 교회와 역사, 合本 제2집, 한국교회사연구소, 1982 / 한국 천주교 주소록, 한국 천주교중앙협의회, 1982.
연길상시본당 [한] 延吉上市本堂
1931년 창설되어 1946년 폐쇄된 연길교구 소속본당. 주보는 한국 순교복자. 소재지는 만주 간도성 연길현 상시(間島省 延吉縣 上市). 1931년 연길교구의 주교좌 본당인 연길본당에서 분할, 창설되었다. 초대 주임으로 퀴겔겐(Kugelgen, 具) 신부가 부임, 이듬해 성당과 사제관을 건축하고 해성(海星)학교를 설립하는 한편, 올리베타노 베네딕토수녀회 분원을 설치하는 등 본당 발전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1939년 2대 주임으로 아펠만(Appelmann, 裵) 신부가 부임, 전임 퀴겔겐 신부의 사업을 계승하여 교세신장에 주력했으나 1946년 간도지역에 진출한 소련군에게 체포되고 아울러 성당을 비 롯한 모든 것을 몰수당함으로써 본당도 폐쇄되었다.
연길상시본당 내의 신심단체로는 탈시시오소년회, 데레사소녀회, 세실리아처녀회 등이 있었고 본당 운영의 사업체로 해성하고, 야학, 유치원 등이 있었다. 1936년의 교세는 교우수 997명, 공소 5개소 등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