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를 각오하여라.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주어지는 표징들에 앞서 박해를 당할 것을 예고 하십니다. “너희를 회당과 감옥에 넘기고, 내 이름 때문에 너희를 임금들과 총독들 앞으로 끌고 갈 것이다.”(루카21,12) 사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렇게 회당과 감옥으로 끌려가 박해를 당했습니다. 사도행전을 통해서 사도들이 얼마나 많은 고통을 당했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오로 사도는 서른아홉 대 매를 다섯 차례나 맞았고, 죽을 뻔 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유다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을 박해하고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처음부터 그들이 당해야 할 것을 알고 계셨으며 그것을 하느님의 구원 계획안에 두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박해의 순간이 “증언할 기회”(루카21,13)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사도들은 그렇게 했습니다. 사도들을 박해자들 앞에서 예수님에 관하여 증언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처형되셨다가 부활하셨다는 것.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시라는 것을 증언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욕을 당하게 된 것을 특권으로 생각하고 기뻐했습니다(사도행전5,41 참조).
우리의 순교자들도 그렇게 하셨습니다. 순교자들은 체포되어 관장의 심문대나 고문대 앞에서도 포교활동을 하였습니다. 관장 앞에서 신앙을 변론하거나 교리 해설을 통하여 오히려 천주교의 옳음을 전하였고, 많은 비유들을 곁들인 교리 해설은 관장들을 놀라게 하였습니다. 관장들은 천주교 신자들에게 말 잘 하는 귀신이 붙었다고 했다고 합니다.
또한 부녀자들의 당당한 증언은 말할 것도 없으려니와 어린 아이에서부터 시작하여 80세 노인들조차도 논리정연하고 알맞은 비유로 그들의 심문대 위에서 포교를 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신자들이 거의 스스로 공부하고 익힌 내용들이라는 것입니다. 당시에 전문적인 교리신학원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서양 신부님들의 서툰 우리말로 놀라운 신앙적 지식을 간직했다고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서적이나 신앙인들의 구전을 통해 해박한 지식을 익혔던 것입니다. 공동체가 공동체에게 교리를 전해주고, 글을 모르는 사람들도 입에서 입을 통해 해박한 지식을 갖게 된 것입니다.
제자들은 박해 때에 마음에 깊이 새기게 될 한 가지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법정에서 어떻게 항변할까에 대해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법정에 섰을 대에 그리스도를 배반하지 않도록 미리 항변의 말을 준비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그들에게 언변과 지혜를 주실 것임을 이렇게 약속해 주십니다.
“14 그러나 너희는 명심하여, 변론할 말을 미리부터 준비하지 마라. 15 어떠한 적대자도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언변과 지혜를 내가 너희에게 주겠다.”(루카21,14-15)
예수님께서는 박해자들 앞에서 제자들이 믿음을 고백하고 주님을 증언할 수 있도록 언변과 지혜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고, 그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을해박해(1815년)때의 김시우(알렉스)라는 순교자는 반신불구로 매우 가난하여 이곳저곳으로 돌아다니면서 교우들의 애긍시사를 받아 생명을 유지하였습니다. 그는 글을 좀 알았으므로 서책을 왼손으로 베껴 교우들을 가르쳤고 외교인들까지도 입교시켰습니다. 그러던 중 포졸들이 부활 축일에 노래산(老萊山) 교우들을 체포할 때, 알렉스는 자신이 제외되는 것을 보고 울면서 교우들과 함께 체포되기를 애원하였으며, 마침내는 체포되었습니다. 알렉스는 관장 앞에서 옛 중국 고사들을 들어 교리를 대단히 유창하게 변론했기 때문에, 창피를 당한 감사는 그의 턱을 부수어 말을 못하게 하였으며, 더욱 심한 고문을 가하게 하였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박해를 각오하라고 말씀하시면서 “16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친구들까지도 너희를 넘겨 더러는 죽이기까지 할 것이다.”(루카21,16)라고 말씀하십니다. 친척과 친지들이 제자들을 박해자들에게 넘기는 일이 일어났고, 지금도 신앙 때문에 가정 안에서, 공동체 안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있습니다.
오늘날 부모가 자식을 죽이는 경우는 신앙적인 교육을 안 시키는 데서오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자녀가 학교 공부를 한다고 하면 성당에 가지 않더라도 부모는 자녀를 나무라지 않습니다. 권하지도 않습니다. 성당에 가라고 말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침묵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성장한 자녀들은 시간이 있어도 성당에 다니지 않습니다. 그리고 나이든 부모들은 “우리 자녀들이 성당에 안 다녀서 큰일입니다.”하고 걱정을 합니다. 자녀들이 하느님을 알지 못하게 만들면, 자녀들이 영원한 생명에서 멀어진다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자녀를 박해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예수님 때문에 미움을 당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사랑 때문에 열정적으로 봉사를 하면 열정이 없는 사람들은 그것을 싫어합니다. “당신 같은 사람 때문에 부담스러워서 성당에 못 나오겠다고…,”자신은 따라 할 생각은 안 하고, 그를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루카21,17)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옳은 일을 하는 사람들의 행동 안에서 그들의 잘못된 행동이 들어나기에 사람들은 신앙인들을 미워합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미움을 당했고, 박해를 당했고, 목숨까지도 잃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영원한 것을 얻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약속해 주십니다.
“18 그러나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루카21,18)
사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때문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세상에서 우리 인간들의 눈에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 눈에는 그들이 목숨을 잃고 멸망한 것처럼 보이지만 하느님의 눈에는 그 무엇보다도 아름답게 하느님 나라를 향에 달려오는 사람들로 보일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박해받는 교회를 지켜보시며 당신의 손을 그 위에 뻗으십니다.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는 얼마만큼 예수님께서 우리를 생각해 주시는지 알 수 있는 말씀입니다.
하느님께는 모든 이가 살아 있습니다. 영혼이 죽지 않기에 죽음은 죽음이 아닙니다. 인생은 기껏해야 70년 근력이 좋아야 80년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지금 겪는 어려움을 아주 작은 순간으로 보시고, 그 작은 순간에도 당신을 위해서 모든 것을 내 놓는 신앙인들 때문에 행복해 하십니다. 그리고 당신의 축복을 준비하십니다. 결국 나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에게는 신앙 때문에 겪는 어려움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서 끝까지 노력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분명히 좋은 결과를 이루게 해 주실 것입니다. 믿고 그분께 의지합시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루카21,19)고 말씀하십니다. 참고 견딘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먼 미래보다 지금 앞에 당면한 문제들이 나를 힘들게 만듭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참으로 많은 어려움이 밀려옵니다. 신자들과의 갈등, 그리고 가족들과의 갈등… 그런 갈등 속에서 가끔은 이런 분심도 듭니다. “내가 이러면서까지 신앙생활을 해야 하나…좀 쉬었다가 성당 다니면 안 될까?”
이런 마음이 들었던 나에게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루카21,19)고 말씀을 하십니다. 이 말씀을 굳게 믿고 참고 견디며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 봅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