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졸한 행동들
알면서도 행하는 잘못들이 있습니다. 상대방을 인정하지 못하면 결국 옹졸한 모습으로 대처할 수밖에 없고, 그와 함께 할 수 없으며, 받아들일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남이 나보다 잘한다면 인정하면 됩니다. 그리고 그를 따르면 됩니다. 그렇게 할 때 나도 변화되고 그도 변화가 됩니다. 내가 겸손하게 나를 인정하고 상대방을 존중한다면, 상대방도 나를 통해서 겸손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상대방의 장점을 인정하고, 배우려고 합니다. 그러나 능력이 없는 이들은 결코 다른 이들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칭찬하지 않습니다. 배우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존중하지도 않습니다. 마치 예수님을 조롱하는 옹졸한 백성의 지도자들처럼 말입니다.
공동체에서 봉사자들도 옹졸해 질 때가 있습니다. 열심히 봉사하는 형제자매들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이런 저런 이유를 댑니다. 그리고 자신이 봉사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그 열심한 봉사자의 잘못 때문이라고 핑계를 댑니다. 한 번은 한 형제가 봉사를 그만두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왜 그러시냐고 물었더니 신앙생활을 하면 기뻐야 하는데 함께 봉사하는 사람 때문에 마음이 불편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형제님! 저는 형제님이 꼭 필요합니다. 그리고 저 형제님도 우리 본당에 꼭 필요합니다.”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형제를 불편하게 하는 이들은 옆에서 함께 봉사하는 이들이었습니다. 끊임없이 불평불만을 쏟아내고, 둘 사이를 왔다갔다 하면서 얘기를 전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조용히 불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일 저 두 분이 그만 두시면 형제님들이 하세요.” 그러자 그들은 “저는 못해요.”라며 펄쩍 뛰었습니다. “못 할거면서 왜 잘 하는 사람을 분심 들게 만들어서 주저앉히려고 합니까? 당신들은 안 할 것이면서 왜 상대방들을 마음 아프게 합니까?”
누군가가 잘 하고 있다면 그를 칭찬해주면 됩니다. 질투에 눈이 멀면 그 사람의 그림자까지 미워지게 됩니다. 결국 옹졸한 마음은 자신도 망치고 공동체도 망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님을 참된 왕으로 모시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왕으로서 섬겨야 하고, 왕이신 예수님의 말씀에 따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통치방식에 맞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랑과 자비와 용서를 통해서 당신 백성을 통치하십니다. 그렇다면 왕이신 예수님을 따라 나 또한 사랑과 자비와 용서를 베풀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부족한 나를 통해서 당신 나라를 통치하실 수 있도록 예수님의 훌륭한 신하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그러나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면, 옹졸한 삶을 이어간다면 멸망을 향해 힘차게 나아간다는 것을 꼭 기억합시다. 그러므로 내 입에서 칭찬이 나올 수 있도록, 긍정의 언어가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해 봅시다. “역시! 잘 하십니다. 함께 해 드릴께요. 제가 도와 드리겠습니다. 제가 뭘 해드릴까요?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