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바리사이와 사두가이들에게 경고하는 요한

바리사이와 사두가이들에게 경고하는 요한

세례를 받으러 오는 사람들 중에는 바리사이와 사두가이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세례를 받으러 오는 것을 보고 요한은 독사의 자식들아, 다가오는 진노를 피하라고 누가 너희에게 일러 주더냐? 8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마태3,7-8)고 경고합니다.

바리사이들은 백성의 지도자이지만 자신들만을 생각하고 백성들을 돌보지 않았습니다. 사두가이들은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들은 모두 위선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백성을 위해 있으면서도 백성을 돌보지 않고, 하느님 나라를 가르쳐야 함에도 불구하고 하느님 나라를 막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그들을 독사의 자식들아!”(마태3,7)라고 비난하는 것입니다.

독사는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독사의 자식들은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죽이는 일을 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백성의 지도자들이지만 백성을 사랑하지 않고, 돌보지 않고, 그들 위에 군림하고 단죄하는 것이 이들의 모습이었으니 결국 독사의 자식이라는 표현은 정확한 표현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세례를 받으러 오니 세례자 요한은 그들에게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마태3,8)고 강력하게 경고하고 꾸짖는 것입니다.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지 않은 형식적인 회개를 하느님께서는 원치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저는 냉담한지 10년이 됩니다. 또는 몇 년이 됩니다.~”라고 고백한다면 이제 제가 회개했으니 다시 예비자 교리반에 들어가서 다시 교리를 배우고, 저의 신앙을 굳게 하며, 성경 공부반이나 레지오에 들어가서 기쁘게 주님을 모실 준비를 하겠습니다.”라는 다짐이 있어야 합니다. 오랜 기간 냉담했어도 고백성사보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미사에 참례하고, 성체를 받아 모시게 되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 신앙이 저런 것은 아닐텐데…,”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변했다면 행동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마음이 변했다는 증거는 행동의 변화로 알게 됩니다. 행동이 변화되지 않으면, 마음은 변한 것이 아닙니다.

 

백성의 지도자들이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려면 그들은 먼저 자신들이 누구인지 알아야 합니다. 자신들에게 맡겨진 직무가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백성을 돌보고, 백성을 이끄는 역할이 부여되었다면 당연히 그 일을 성실하게 수행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백성들을 무시하고, 비하하였습니다. 더 나아가 구원에서 제외되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생각을 바꾸어야 하고, 행동을 바꾸어야 합니다. 그래야 독사의 자식들이 아니라 주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들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알아 뵙지 못했습니다. 회개는 말로만 해서는 안 됩니다. 회개는 생각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어야 합니다. 그래야 생활이 바뀌고 영생이 바뀌는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마음이 굳은 이들에게 “‘우리는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모시고 있다.’고 말할 생각일랑 하지 마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는데, 하느님께서는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녀들을 만드실 수 있다.”(마태3,9)고 경고하십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과 순종을 본받아야 하는데 그것이 없다면 결국 하느님 나라에는 못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마치 대통령의 아들이라 할지라도 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무리 유다인이라 할지라도 옳게 살지 못한다면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인정할 수 있고, 겸손해질 수 있습니다. 겸손하게 믿음을 고백하며 주님께로 나아가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상대방의 경고나 충고에 발끈하지 말고, 그의 말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나는 보지 못하지만 상대방은 나를 누구보다도 잘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백성의 지도자들은 행위는 엉망이었지만 착각하면서 살고 있었습니다. 자신들은 구원받는다고 생각했고, 자신들은 의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며, 자신들은 아브라함처럼 그렇게 하느님을 섬기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행동은 전혀 달랐습니다. 그렇게 살아서는 절대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으니 착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녀들을 만들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데, 여기서 말하는 돌들은 이방인들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자녀는 하느님의 자녀답게 살아야 합니다. 하느님의 자녀들은 당연히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믿음이 없다면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삶을 안 살고 있다는 것이고,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하느님의 자녀로서 살아가는 것이기에, 믿음을 가진 이들이 이방인이든, 유다인이든 간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며 살아간다면 그들은 모두 아브라함의 후손으로서의 삶(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고, 구원에로 향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이제 때가 가까이 오고 있음을 알립니다. “도끼가 이미 나무뿌리에 닿아 있다.”(마태3,10)는 것은 이미 심판이 아주 가까이 와 닿았다는 것입니다. 열매 맺지 못한 나무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심판의 기준은 좋은 열매를 맺는 나무인가?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인가?”입니다. 좋은 열매를 맺는 나무와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의 운명은 분명하게 정해져 있습니다.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모두 찍혀서 불 속에 던져진다.”(마태3,10)고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될 것입니다.

 

열매 맺지 못하는 나무를 베어서 불 속에 던져져야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주인의 마음을 외면했다는 것과,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망각했다는 것. 그리고 더 나아가서 다른 이들을 현혹하여 열매 맺지 못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또한 신앙생활을 하면서 좋은 열매를 맺는 신앙인이 어떤 모습인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성실하게 신앙생활을 하며, 겸손하게 살아가는 이, 형제자매들을 사랑하고 존경하며 존중해 주는 이, 자신의 삶으로 자신이 믿고 있는 바를 보여 주는 이,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에 기꺼이 손을 내 미는 이가 좋은 열매는 맺는 신앙인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그와 반대되는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 신앙인이라고 보기에는 이상한 사람들, 그들이 바로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어떤 열매를 맺는 나무인지를 늘 생각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또한 내가 주인이라면 열매 맺지 못하는 나무를 어떻게 할까를 생각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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