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교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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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아우구스티노(354~430)의 유명한 저작으로서 초기 교희에서 이교에 대하여 가장 완전할 정도로 그리스도교를 변호한 책이다. 로마 제국이 잇따라 재난을 당한 것은 그리스도교 때문이라는 비난에 대하여 성 아우구스티노는 그것이 전혀 거짓이라고 반박하면서, 로마 와해(瓦解)의 근본적인 원인은 그리스도교 탓이 아니라 이교의 비도덕성 때문이라고 지적하였다. 427년에 발간된 이 저작의 주제는 아담의 타락 이후 인간은 스스로 조화와 일치를 이룰 수 없게 되었다는 데 있다. 즉 아담이 타락한 이래 인간은 어디에서나 분열되어 있으며, 자애(自愛)와 하느님의 모독으로 이루어진 악마의 국가(Civitas Diaboli)를 파괴하고, 스스로를 버림으로써 하느님의 나라(Civitas Dei)를 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영남지방 교회의 요람지. 신나무골은 l8l5년, 1827년, 1839년 박해를 피해 산골로 숨어든 경상도 교우들의 정착촌으로 최양업 신부, 다블뤼 주교, 리델 신부 등으로부터 복음을 받아 신앙을 굳건히 하였다. 1866년에는 경상도지방의 담당자로 지명된 로베르(Robert, 金保祿) 신부가 대구로 들어가지 못하고 대구에서 16km 정도 떨어진 이곳에서 체류했고, 대구지방의 전교는 1880년대 종교자유의 전망이 보이면서 이곳을 거점으로 하여 로베르 신부에 의해 이뤄졌다. 경북 칠곡군 지천면 연화동에 위치.
1948년 명동본당 산하로서 공소(公所)형식의 신당동 분당(分黨)으로 출발, 그 해의 12월 초대 본당주임 조인원(趙仁元, 빈첸시오) 신부가 부임하여 본당으로 창설되었고 귀속 재산 가옥(약 50평)을 사들여 성당으로 삼고, 1949년 5월 조 신부 집전으로 첫 미사를 봉헌하였다. 6.25전쟁 때인 1950년 11월 2대 주임으로 발령을 받은 신원식(申元植, 루가) 신부는 1951년 8월에야 피란지 경주(慶州)에서 상경, 부임하였다. 1954년 3대 본당주임 김창문(金昌文, 요셉) 신부가 부임, 1956년 7월 현 대지(326평)에 한국 최초의 현대식 블록조 성당(건평200평)이 낙성, 1960년에는 문화관 및 사무실 건물(150명)이 준공되었다. 한편 적극적인 전교활동의 결과 신자수가 급증됨에 따라 1958년 천호동(千戶洞)본당, 1962년에는 금호동(錦湖洞)본당을 각각 분리 독립시켰고, 1959년에는 팔당(八堂)에 본당묘소(약 8만 5,000평)를 마련하였다. 5대 양기섭(梁基涉, 베드로) 신부는 1971년 구 성당 자리에 새 성당(건평 114평)을 신축 준공시켰다. 8대 이계중(李啓重, 요한) 신부는 1977년에 부임 후 가난한 변두리지역 구파발본당의 건립지원금(4,000만원)을 모금해 보내주었고, 1980년 신학생 후원회 기금(2,000만원)을 조성하였다. 이 본당의 주보는 성녀소화 데레사, 신자수는 6,888명(1983년 현재), 현재 주임은 김득권(金得權, 굴리엘모) 신부이며, 샤르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의 전교수녀가 상주하여 봉사하고 있다.
믿음을 가진 덕이란 의미다. 신학적 의미에서의 신덕은 크게 두 가지로 불 수 있다. 하나는 하느님이 인간에게 거져 주신 은혜이며 능력으로서 인간은 이 은혜로 하느님을 믿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다른 한편 하느님의 은혜를 받은 인간이 하느님을 신봉(信奉)하는 태도를 말한다. 이때에는 하느님이 인간에게 계시(啓示)하여 주신 진리를 받아들여 믿고 그를 생활의 규범으로 가지는 것이다. 후자의 경우에는 신앙을 고백하고 선포하며 보호하고 더 깊이 깨닫기 위하여 노력하는 태도를 종합해서 말한다. 따라서 신덕에 위배되는 행위에는 배교, 불신, 이교, 열교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