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권 [한] 俗權 [영] secular arm

교회법의 용어. 엄밀한 뜻에서는 교회의 재판권에 속하는 일에 개입하는 국가 또는 세속의 권력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속권에 의한 개입은 교회에서 요구하는 것이 아니고, 실제로는 교회의 독자적인 사항을 교회가 처리하는데 있어, 그 권리에 크게 간섭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중세에는 교회가 자청해서 속권의 도움을 청하는 일도 있었다. 이단(異端)이나 중대한 부도덕 행위를 처벌함에 있어서 교회에서 내리는 것보다 엄중한 벌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교회의 고위 성직자가 판단할 때에는 속권의 개입을 청하였다.

[참고문헌] John A. Hardon, S.J., Modern Catholic Dictionary, New York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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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량 [한] 贖良 [관련] 강생

일반적으로 몸값을 받고서 종을 풀어 주어 양민(良民)이 되게 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에서 그리스도교에서는 원조의 범죄로 인하여 죄악의 노예 신세가 된 인류를 구세주 그리스도가 구출(救出)한 사실을 의미한다. 흔히 마귀의 지배에서 인간을 속량하였다고 표현한다. 속량은 하느님의 아들인 성자가 강생한 목적이요 인류 구원의 내용이기도 하다. (⇒) 강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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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죄 [한] 贖罪 [라] expiatio [영] atonement

상대방에게 지은 죄를 씻고 상호간에 범죄 이전의 유대를 회복하는 일. 그리스도교에서는 하느님을 거슬린 인간의 죄를 구세주 그리스도가 대신 보속하고 인류를 하느님과 화해시킨 일을 지칭한다. 구약성서에서 속죄는 야훼께 죄를 지은 이스라엘 백성이 야훼와 친교를 회복하는 일이었으며, 야훼 편에서는 자비의 행위였고 이스라엘 백성 편에서는 야훼께서 지정한 특정 행위를 이행하는 일이었다. 야훼께서 지시한 속죄예식을 통하여 자신의 죄를 벗었던 예(레위 4:31-35, 6:17-23)에서 발전하여 속죄제물을 바침으로써 야훼의 분노를 풀어드린다는 속죄사상은 퇴조하고 ‘야훼의 고난받는 종’이 인간의 죄를 대신 보속해 준다는 예언을 믿기에 이르렀다(이사 52:13, 53:12). 야훼께서 인류의 죄를 그에게 지우셔서 “그 몸에 채찍을 맞으므로 우리는 성하게 해주었고, 그 몸에 상처를 입으므로 우리의 병을 고쳐 준 것이다”(이사 53:5). 신약성서에서 고난받는 종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죄에서 풀어주셨고”(로마 4:24), “우리를 당신과 화해하게 해주셨다”(2고린 6:18)고 한다. 이 속죄는 하느님이 베푸신 자비이며 진실한 대사제(히브 2:17),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십자가의 피로 인한 결과이다(로마 5:9, 에페 2:13-16). 바울로의 속죄개념은 속죄의 근본을 이루는 의화(義化)관념과 관련되어 있다.

속죄를 그리스도의 구속사업과 관련지어 죄에 대한 보속이라고 본 관점은 이레네오, 암브로시오, 베드로 다미아노 등 그리스도교인 저술가의 저서에서 나타난다. 캔터베리의 성 안셀모는 ≪왜 하느님이 사람이 되셨는가≫(Cur Deus homo)에서 속죄를 강생과 구속의 설명 기초로 삼았다. 트리엔트 공의회는 주님의 속죄를 설명하면서, 죄의 보속에 있어서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은 인간의 협력이 요구됨을 환기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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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경윤 [한] 孫敬允

孫敬允(1760~1802). 순교자. 세례명은 제르바시오. 정조실록(正祖實錄)에는 이름이 경윤(景允)으로 나온다. 1790년 최필공(崔必恭)에게 문교(問敎)하였고, 안국동에서 약방을 경영하며 교우들을 모아 축일(祝日)을 지내고 예비교우들을 가르쳤다. 1801년 신유(辛酉)박해가 일어나자 경기도 양근(楊根), 양지(陽智) 등지로 피신해 다녔으나 가족이 자기 대신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포청에 스스로 나와, 1802년 1월 29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7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되어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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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선지 [한] 孫~

孫~(1820~1866). 성인(聖人). 축일은 9월20일. 회장. 세례명 베드로. 일명 승운. 충청도 임천(林川)의 괴인돌이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입교한 후로 열심히 수계했고, 16세 때 샤스탕(Chastan, 鄭) 신부에 의해 회장으로 임명되어 순교할 때까지 회장의 직무를 충실히 수행하였다. 1866년 병인(丙寅)박해 때 전주지방의 교우촌인 대성동 신리골에 살며 자신의 집을 공소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이해 12월 5일 대성동을 습격한 포졸들에게 정문호 · 한원서 등과 함께 체포되었다. 전주감영에서의 신분 중 회장임이 탄로나 공소를 거쳐 간 서양신부와 교회서적의 출처를 알려는 관헌들에게 매우 가혹한 형벌과 고문을 당해야 했으나 끝까지 신앙을 잃지 않았고, 옥중에서도 회장의 직무를 다하여 함께 갇힌 교우들을 위로하고 근면하였다. 12월13일 전주 서문밖 숲정이에서 대성동과 성지동에서 체포된 5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1968년 10월 6일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복자위에 올랐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을 위해 방한(訪韓)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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