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5년 김대건(金大建) 신부가 제작한 한국지도. 1845년 1월 입국한 김대건 부제가 선교사들의 입국을 돕고 조선을 세계에 소개할 목적과 자신의 학문적 관심에서 제작하여, 1845년 5월 김대건이 상해(上海)로 향해한 후 조선의 교우들에 의해 보관되었다가 이듬해 선교사 파견을 요청하는 조선의 밀사편에 의주 변문(邊門)에서 메스트르(Maistre, 李) 신부와 최양업(崔良業, 토마스) 부제에게 전달되었고, 1847년 다시 상해 주재 프랑스 총영사 몽티니(Montigny)에 전달되었으며 1855년 몽티니의 프랑스 귀국 후 프랑스 왕립도서관에 맡겨지면서 프랑스 지리학회지(誌)에 소개되었는데, 1735년 당빌(D’Anville)의 <조선왕국도>(朝鮮王國圖), 1840년 시볼트(Siebold)의 <조선반도도>(朝鮮半島圖)에 이어 세 번째로 조선을 서구에 소개하는 지도가 되었다. 그 뒤 국내에도 전혀 소개되지 않다가 1979년 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 최석우(崔奭祐) 신부에 의해 발굴되어 국내 학계에 처음으로 소개되었고, 이어 한국교회사연구소에서 가로 48.5㎝ 세로 88㎝로 복원, <조선전도>라는 표제로 간행하였다.
<조선전도>제작에 사용된 원도(原圖)는 조선 초기 정상기(鄭尙驥)의 <동국지도>(東國地圖)나 정상기 식의 관제지도로 추정되며 <조선전도>의 특징은 선교사들의 입국과 포교를 염두에 두고 제작된 점으로 선교사들이 알아두어야 할 관부(官府)의 지명과 위치, 선교사들의 입국통로인 만주의 봉황성(鳳凰城)에서 의주 변문까지의 도로, 한강 하류를 포함한 서해안 일대의 해로(海路) 등이 상세히 표시되어 있고, 또 도법(圖法)은 비록 천문학적 원리에 의거하지 않았지만 지명이 조선식 발음의 한자(漢字)표기에 로마자의 표기가 첨가되어 있어 당빌의 <조선왕국도>가 중국식 발음으로, 시볼트의 <조선반도도>가 일본식 발음으로 표기되어 있는 것에 비해 일층 발전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김대건의 <조선전도>의 가장 큰 취약점은 미완성이라는 점으로, 많은 관부 · 산천 · 도로 · 해로 등이 누락되어 있는데, 이는 후에 많은 선교사들과 달레에 의해 보완되어 거의 완전한 <조선전도>가 제작되었다.
[참고문헌] 崔奭祐, 韓國天主敎會의 歷史, 韓國敎會史硏究所, 1982 / 교회와 역사, 제45호, 한국교회사연구소, 1979. 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