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1년 신유(辛酉)박해로 체포되어 경상도 흥해(興海)에서 유배생활 중 사망한 최해두(崔海斗)의 참회록. 자신의 배교(背敎)를 뉘우치고 통회하는 내용에 천주십계 중 6계까지의 해설이 첨가되어 있다.
자존유 [한] 自存有 [라] Ens a se [영] substantial being
스콜라철학에서 사용하기 시작한 ‘Ens a se’의 번역어로서 한국 천주교용어의 하나가 된 것. 원인과 시종(始終)이 없이 자립적으로 존재하는 유(有, sein)를 지칭하는데, 이는 곧 ‘천주’를 말한다. 철학적으로 말할 경우, 존재는 기본적인 분류로 두 가지 영역을 생각해 볼 수 있다. ① 존재는 현실체(現實體)이다. 이 반대는 비현실(非現實)이요,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내부모순을 담고 있는 것이다. ‘Desein’(實存)과 ‘Sosein’(斯存) 과의 구별이다. ② 라틴어 ‘ens’는 모든 실재성(實在性)을 표시하는 보통 말인데, 이는 인간의 지성에 인식되는 여러 가지의 실재성에 따라서 분류된다. 이리 하여 ‘ens a se’는 ‘자존’(自存) 즉 자기에 의한 존재자, 자기의 존재의 원인 = 하느님이다. ‘ens ab alio’는 ‘타자(他者)에 의한 존재’ 즉 다른 원인으로부터 만들어진 것 = 피조물이다. ‘ens in se’는 ‘자기내유’(自己內有)이고, ‘ens per se’(자기 자신에 의한 존재) 즉 본성(本性)에 의한 존재, 또는 한정되지 않는 존재라 하더라도, 모두 함께 실체(實體, substance)이다. ‘Ens entis’는 ‘존재의 존재’ 곧 그 자체로 실재할 수가 없고, 실체 속에서만이 실재할 수 있는 것, 따라서 ‘우유’(偶有, accident)이다.
‘자존유’란, 다른 어떤 것으로부터도 존재를 의존 받지 않으며, 다른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않는다는 하느님의 속성인 ‘자존성’(自存性, aseity)에 의한 존재자를 의미한다. 피조물은 다른 것에 의존하고, 궁극적으로는 하느님으로부터의 결과로서 존재하며, 따라서 ‘타자로부터’(ab alio) 이지만, 하느님은 ‘자기 스스로부터’(a se) 존재하며, 완전히 자족(自足)하는 존재라는 말이다.
[참고문헌] P. Simon, Sein und Wirklichkeit, Munchen 1933 / J.B. Lotz, Sein und Wert I, Paderborn 1938 / A. Guggenberger, Der Menschengeist und das Sein, 1942 / J. Maritain, A Preface to Metaphysics; Seven Lectures on Being, New York 1945 / E.H. Gilson, Being and Some Philosophers ed. 2, Toronto 1952 / B. Montagnes, La Doctrine de l’analogie de l’etre d’apres saint Thomas d’Aquin, Louvain 1963 / John A. Hardon, S.J., Modern Catholic Dictionary, New York 1980.
자이레 [원] Zaire
아프리카대륙 중앙의 약간 남쪽에 있는 나라. 정식 명칭은 자이레 공화국이다. 면적 234만 5,409㎢에 인구는 2,809만명(1982년 추계)이다. 주민은 반투어족, 수단계, 햄계, 피그미계로 분류할 수 있고 그 밖에 백인도 약 5만명이 살고 있다.
1878년 벨기에 국왕 레오폴드 1세는 그 전해에 콩고강[지금의 자이레강] 유역을 탐험하고 돌아온 스탠리를 초빙, 그에게 명하여 콩고강 유역이 기지를 설치하도록 한 다음 ‘국제콩고협회’를 조직하여 이곳을 통치하였다. 그 뒤 벨기에령 콩고(1908년), 독립운동 등을 거쳐 1960년에 독립하고, 1965년 모부투가 쿠데타에 성공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가톨릭 신자는 1,312만명에 1,021개의 본당이 있다(1982년 현재).
자유주의 [한] 自由主義 [영] liberalism [독] Liberalismus
근대 초기에 절대주의적인 권위에 대항해 시민층에서 형성된 유력한 사상으로서, 개인의 사유(思惟)와 활동에 대하여 최대한의 자유를 주고 간섭을 없애게 하려는 사상이나 주장을 말한다. 개성의 자유로운 전개를 숭상하는 ‘자유주의’는 사회적 정치적으로는 개인의 자유권을 옹호 · 신장하고,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와 이윤추구를 보증하는 입헌정치(立憲政治) 사상으로 표현되었다.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 적인 시장경제와 자유무역을 부르짖는 주장을 말하며, ‘자유방임주의’의 이론으로 나타났다. 문화 및 정신생활에 있어서는 종교 및 도덕으로부터의 사회생활의 완전 독립성을 요망하며, 따라서 공적인 생활의 완전한 ‘세속화’(世俗化)를 바라는 입장에 선다. 즉 모든 종파를 참이요, 선(善)으로 보는 무조건적인 종교적 중립성 또는 관용주의의 입장을 취하기 때문에, 자유주의는 교회와 국가와의 분리를 요구하고 무조건적인 신교(信敎)의 자유 및 예배의 자유를 주장한다.
근대 자본주의의 발전과 함께 일어난 자유주의는 그 주요한 특질이, 인간을 ‘무제한의 욕구자’로 보고, 이 욕구의 극대화를 위한 추구를 시인하는 인간관, 윤리관이라고 지적할 수 있다. 고전적인 자유주의의 이론은, 17세기부터 19세기초기의 영국에서 로크(John Locke, 1632~1704)에게서 벤담(Jeremy Bentham, 1784~1832)으로 전개되어 나갔으며, 19세기 중반 밀(J.S. Mill, 1806~1873)에 의해서 인간관, 윤리관의 측면에서 일정한 수정을 받았다. 오늘날의 자유주의는 ‘신(新)자유주의’(neo-liberalism)라고 호칭되며, 이는 자유주의의 결함을 시정하여 현대에 살려 나가자고 하는, 모든 국가 개입에 반대하는 이론적인 무기가 되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적인 국가관에서나 가톨릭의 입장은, 국가는 본질적으로 사회적인 배려의 의무를 지고 있으며, ‘분배(分配)의 정의(正義)’를 엄중한 의무로서 짊어지고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적인 사회정책은 개인의 독립성과 자기 책임을 강조하고 자유로운 조직에 있어서의 여러 신분(身分)의 자구(自救)와 자치(自治)에 근거하게 하고 있다.
가톨릭 교회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은 오직 자유로써만 선을 지향할 수 있다. 현대인은 이 자유를 높이 평가하고 열심히 추구한다. 자신을 즐겁게 하는 일이면 방종까지도 자유라고 옹호한다. 그러나 참된 자유는 인간 안에 새겨진 하느님의 모상을 말해 주는 표지다. 그러나 가톨릭 교회는 순전한 개인주의적 윤리관을 배격한다. 각 사람이 자신의 능력과 타인의 필요를 따라 공동선에 기여하고 사적·공적 제도를 촉진하고 원조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자유주의는 개인주의와 혼돈되어서는 안 된다.
[참고문헌] H.J. Laski, The Rise of European Liberalism, 1936 / L.T. Hobhouse, Liberalism, 1946 / J.S. Mill, on Liberty, 1859 / 사목헌장 제1부.
자유의지 [한] 自由意志 [라] liberum arbitrium [영] free will
인간은 내적인 강제나 외적 강제에 의해서 어떤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판단에 따라 행동한다. 이것은 인간이 자유의지를 가졌기 때문이다. 자유의지는 어떤 행위를 할 것인가, 하지 않을 것인가를 결정하며,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도 결정하는 인간만의 독특한 정신적인 기능이다. 결정론(determinism)에서는 인간이 자유의지를 가졌다는 사실을 부정하지만,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없다면 책임이나 의무도 있을 수 없으며, 죄나 벌도 상정할 수 없다. 서양의 윤리적인 전통, 도덕적인 기초에는 인간의 자유의지가 전제되어 있다. 자유의지를 가진 윤리적인 인간의 사고는 육체적 정신적인 병과 범죄로부터 인간을 건전하게 회복시키며, 이로써 사회의 질서는 유지된다. 인간의 자유의지는 방종과는 엄격하게 구별되며, 자극에 따라 반응하는 비이성적인 존재의 행동과도 구별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