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성인의 날 대축일 [한] ∼聖人∼大祝日 [라] Sollemnitas Omnium Sanctorum [영] Soleminity of All

모든 성인들, 특히 교회력에 있어 축일이 지정되지 않은 성인들을 기념하기 위한 날로 11월 1일에 지낸다. 609년 교황 성 보니파시오(St. Bonifatius) 4세가 로마 판테온 신전을 교회에서 사용하기 위해 축성하고,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하면서 이 날을 제정하였다. 그러나 처음에는 5월 13일에 지켜졌는데 교황 성 그레고리오(St. Gregorius) 3세(재위 : 731-741)가 성 베드로 대성당 안의 한 부속성당을 특별히 모든 성인들을 위해 봉헌하면서 날짜가 변경되어 11월 1일로 바뀌었다. 이후 835년 교황 그레고리오(Gregorius) 4세(재위 : 827-844)에 의해 전 교회에 보급되었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모데르니즘 [라] Modernismus [영] modernism [독] Modernismus [프] modernisme

‘모데르니즘’ 즉 근대주의(近代主義)라고도 불리는 그리스도교 현대화 운동을 가리킨다. 본래는 18세기의 주관주의 철학과 신학을 모태로 하여, 가톨리시즘(Catholicism) 안에서 일어난 운동인데,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기에 걸쳐 로마 가톨릭 교회뿐만이 아니라, 영국 성공회 기타 미국 뉴잉글랜드 지역에 뻗어 나갔다. 이것은 가톨릭의 근본적인 개념은 계시, 신앙, 교리 등을 밑바닥에서부터 개정 및 개혁하려고 하는 운동이었다. 그래서 내용상 불가변한 근본 개념에 대하여 주관적 내재적인 의의로 고쳐서 해석해 보려는 움직임으로 압축되었으며, 근대의 자연과학의 성과를 인정하고, 또한 성서의 역사적 비평적인 연구방법을 도입하였으며, 근대철학의 영향에 동조하여 전통적인 교리를 근본적으로 재해석(再解釋)하고, 전면적인 개조를 하려는 데 목적이 있었다.

신학사적으로 볼 때, 칸트의 인식론의 영향을 받은 종교심리학자, 또는 야코비(Jacobi), 실라이에르마허(Schleiermacher) 등의 프로테스탄트 신학자는 ‘심정’(心情)을 종교적 사실의 파악기관으로 보았다. 이러한 종교철학적인 관념의 특징은, 참된 종교라는 것은 인간의 내심(內心) 생활에서 비롯되며, 그 밑바닥에서 영혼이 하느님으로부터 촉발(觸發)된다고 본다. 종교는 다만 인간에게 내재하는 힘인 것이며, 예를 들어 외부로부터의 계시나 교리선언에 의하며 전달되는 것이 아니다. 영혼의 밑바닥은 인간에게 있어 하느님의 내재 장소이며, 따라서 종교적인 체험에 있어 무한한 것이 유한한 것 속에 나타난다는 데 있다. 이러한 주장이 가톨릭 신학자나 신자들에게도 관심을 불러일으켜, 주로 프랑스에서 가장 활발하였다. ‘가톨릭 근대주의의 아버지’라고 지칭되는 르와지(A. Loisy)는, 역사적 비평적인 방법을 채용하여 성서의 비평적 연구를 시도하였고, 그의 저서는 모두 금서목록(禁書目錄)에 실리어 파문을 받았다 이밖에 프랑스 신학자 중에서 근대주의 운동에 가담한 르로이(Edouard Le Roy), 라베르토니에르(L. Laberthonniere), 블롱델(M. Blondel) 등이 그 대표적인 사람들이다. 영국에서는 티렐(M.G. Tyrrell), 특히 국경과 교파를 뛰어넘어 강력한 영향을 준 휘겔(B.F. von H gel)이 이름이 있고, 이탈리아에서는 무리(R. Murri), 바타이니(D. Battaini), 부오나이우티(E. Buonaiuti), 포가차로(A. Fogazzaro) 등이 주요한 지지자이며, 그 당시 독일에는 이렇다 할 대표적인 학자가 없었다.

이리하여 실라이에르마허 이래의 자유주의 신학의 흐름에 입각한 근대주의는, 변증법 신학으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오늘에 와서도 독일의 불트만(Rudolf Karl Bultmann, 1884-1976), 미국의 틸리히(Paul Tillich, 1886-1965)는 이 방향을 대표하고 있다. 근대주의에 대하여 교회당국의 태도는 준엄하여, 이미 제1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그 철학적 신학적인 기초는 물론, 교회론도 이 공의회 결의(De Ecclesia Christi)와 서로 맞지 않는 것으로 비판받고 있다. 레오 13세는, 처음에 우호적이었으나 만년에는 비판적으로 기울었고, 성 비오 10세는 처음부터 반대하여, 근대주의를 ‘모든 이단의 총화’라고 규탄하였고, ‘근대주의’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회칙 (1907. 9. 8.)과 교령(敎令) (1907. 7. 3.)에서 이단으로 단죄하였으며, 임의교령(任意敎令) (1910. 9. 1.)으로, 가톨릭 성직자 모두에게 ‘반(反) 근대주의 선서’를 하도록 명하였다. 이 선서는 1967년에 폐지되었다.

영국에 있어서의 근대주의는, 19세기의 광교회(廣敎會, Broad Church)주의 및 신학상의 자유주의를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로마 교회 안의 운동에서 받은 영향이 직접적 동인(動因)으로 작용하였다. 목표는 영국 국교회의 포용성의 강화와 교리 또는 전례의 근대화에 있었으나, 앵글로 가톨릭주의라든지, 근본주의(根本主義, fundamentalism)와 자연히 대립하게 되었다. 미국의 경우는 근본주의에 대립하는 입장으로서 이 근대주의가 이해되었고, 쌍방의 논쟁은 1920년경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는데, 근본주의가 남부 여러 주에서 성행한 것과 대조적으로, 근대주의는 뉴잉글랜드 지역, 특히 성공회를 배경으로 성하게 되었다.

[참고문헌] R. Marle, ed., Au coeur de la crise moderniste, Paris 1960 / P. Scoppola, Crisi modrensite e rinnovamento cattolico in Italia, Bologna 1961 / H. Daniel-Rops, L’Eglise des revolutions: Un Combat pour Dieu, Paris 1963.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모니카 [라] Monica

Monica(322-387). 성녀. 아우구스티노의 어머니. 축일은 5월 4일. 누미디아의 타가스테(Tagaste)에서 그리스도교인 가정에 태어났으나 이교도인 파트리치오(Patricius, 후에 개종, 371년 사망)와 결혼, 나비지오 · 페르페투아 · 아우구스티노 등 삼남매를 두었다. 아우구스티노의 고백록에는 어머니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모니카는 어머니다운 자부심을 지니고 아들을 교육시켰고, 마니교도 시절의 불화에도 불구하고 그를 따라 로마와 밀라노에 갔으며, 아들의 방탕을 관용하면서 좋은 혼담을 정하려 했으나 세례받고 독신생활을 했으므로 불필요하게 되었다. 오스티아(Ostia)에서 별세한 모니카의 유해는 프랑스 아라스 부근 아우구스티노 수도원에 옮겨졌고(1162년), 그 밖의 유물은 로마의 아우구스티노 성당으로 운반되었다(1430년). 최근 오스티아에서 이 여자의 묘비 조각이 발견되었다. 모니카는 가톨릭 여성단체의 수호성녀이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모나코 [원] Monaco

프랑스 남동부, 지중해에 면해 있는 나라. 정식 국명은 모나코 공국(公國)이다. 면적은 1.8㎢, 인구 약 3만 명(1982년 추계)이다. 입헌군주국으로, 독립국이면서도 프랑스의 보호 하에 있으며 언어·통화는 프랑스와 동일하다. 주민은 프랑스계가 58%, 이탈리아계가 17%, 본래의 모나코인인 모네가스크가 15%이고, 1982년 현재 2만 2,000명이 가톨릭 신자이다. 모나코의 국가 재정은 거의 전적으로 관광수입과 카지노의 수익에 의존해 왔으나 차츰 공업의 비중이 높아 가고 있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모나르키아주의 [한] ∼主義 [라] Monarchianismus [영] monarchianism [독] Monarchianismus

2-3세기에 발생한 이단적 신학운동. 신(神)의 단일성(monarchius)을 강조한 나머지 삼위일체(三位一體)에서의 삼위의 구별을 부정하였다. 모나르키아주의에는 다음 두 가지가 있다. ① 그리스도 양자설(養子說, adoptionism), ② 모달리스트(modalist) 또는 사벨리우스설(sabellianism). 이것은 성부(聖父)로서 수난(受難)했다고 주창하기 때문에 성부수난설(Patripassianism)이라고도 불린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