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물사관 [한] 唯物史觀 [영] materialistic interpretation of history [독] Materialistische G

유물사관, 혹은 사적유물론(史的唯物論)은 사회의 구성과 발전의 일반법칙에 관한 마르크스주의의 역사철학이며, 변증법적 철학의 기초 위에 서 있다. 이에 따르면 인간은 노동에 의해 동물과 구별되며, 사회생활의 기초는 물질적 생산에 있다고 파악하여, 사회발전의 궁극적 기준을 한 사회의 물질적 생산력(生産力)의 발전수준에 두는 유물론적 입장을 강조한다. 나아가 사회구성의 토대는 인간의 의식과는 독립된 것으로서 생산력의 수준에 따르는 생산관계이고 정치 · 사회적 제도 · 조직 · 사상 · 철학 · 예술 · 종교 등은 생산관계에 의해 기본적으로 내부에서 끊임없이 발전하는 생산력에 의해 변화한다. 즉 발전하는 생산력은 오래되고 낡은 생산관계를 청산하고 새롭게 발전하는 생산력에 적당한 생산관계를 형성시킴으로써 사회의 역사발전에 원동력이 된다는 것이다.

사회의 생산력이 낮아 잉여생산물이 충분하지 못한 시기에는 생산수단의 공유, 공동노동, 공동분배를 특징으로 하는 원시공산제적 생산관계가 일반적이다. 생산력이 발전하고 잉여생산이 가능하게 되면 생산수단의 사유권(私有權)이 형성되고, 이에 따라 다른 사람의 잉여생산을 착취하는 계급적 생산관계인 노예제적 생산관계로, 이 생산관계는 발전하는 생산력에 의해 봉건제적 생산관계로 이행한다. 자본제적 생산관계 아래서 사회적 생산력의 거대한 발전과 필요노동시간의 획기적 단축으로 계급사회는 청산되고 다시 생산수단의 공유, 공동노동, 공동분배 공산제적 생산관계로 이행한다. 여기서 사회는 청산되고 인간자신이 생산한 생산물에 인간이 예속됨을 타파하고 자유가 숨쉬는 사회로 이행한다. 소위 공산주의는 그 내부에서 발전하는 생산력에 의해 ‘노동’에 따라 분배하는 사회주의 단계에서 ‘필요’에 따라 분배하는 공산주의 단계로 넘어간다. 이때 노동은 더 이상 생존을 위해 강제되는 괴로운 행위가 아니라 창조적이고 쾌적한 ‘노동의 피안(彼岸)’을 위한 행위가 된다. 인간은 생산력을 끝없이 발전시킴으로써 필요노동시간을 한없이 단축시킬 수 있게 되고, 이에 따라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는 시간은 확대되고, 이 시간을 이용하는 다수의 인간들에 의해 인간의 문화는 활짝 개화되고 각 개인의 개성은 더욱 풍부해졌다. 이상이 사적유물론이 제시한 사회발전과정이다. 유물사관은 역사를 숙명적이라고 인정하는 사고방식을 배척하면서 동시에 인간이 생산관계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생산력의 발전수준에 의해 규정되는 생산관계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사실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모든 활동은 생산관계로 된 토대위에서 이뤄지며 또 인간의 활동은 생산관계로 된 토대위에서 이뤄지며 또 인간의 활동이 생산관계에 영향을 끼치는 상호관계에 있으며, 이것이 사회의 역사적 발전과정이고, 객관적인 법칙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사적 유물론, 혹은 유물사관은 잉여가치설에 의해 형성되고 변증법에 의해 뒷받침된다. 사적 유물론은 사회주의를 공상적인 차원에서 과학적 차원으로 발전시켰고, 자본주의하에서 자생적으로 발생한 노동자계급의 혁명운동에 전망(展望)을 부여했다고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주장한다.

유물사관에 대하여 가톨릭의 입장은, 그것이 보편적 진리가 되기 위해서 역사적 사건의 근본원인도 해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톨릭은 “세계사란 그리스도 신비체의 형성사(形成史)이며, 모든 피조물이 그리스도로 인하여 천주께 돌아가는 경로를 기록한 것이다”(Ancel). 유물사관에 의하면,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전한 영국, 미국, 독일에서 사회주의가 먼저 성립한다는 이론이 나온다. 그러나 사실은 자본주의의 발전이 미숙했던 러시아에서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났다. 이것은 마르크스가 인류역사의 발전 법칙을 제대로 해명하지 못했다는 증거가 된다. 마르크스는 사회적 인간의 존재가 인간의 사회적 의식을 규정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인류역사는 인간의 의식이 인간의 역사를 변동시킨 경우가 얼마든지 있다.

특히 상층구조와 하부구조의 관계에 있어서도 상층구조 즉 정치적 힘이 하부 구조 즉 경제적 변화를 가져온 예는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유물사관은 하나의 역사철학으로서 공헌한 측면도 있으나 역사발전에 있어서 인간의 역할을 과소평가하고 인간을 물질에 예속시킨 점에서 큰 모순을 안고 있다. (⇒) 공산주의, 계급투쟁

[참고문헌] K. Marx, 경제학비판 서문 / 차하순, 사관이란 무엇인가, 1980 / Gustav A. Wetter, Il materialismo dialettico Sovietico, Torino 1948(강재륜 역, 변증법적 유물론 비판, 1981) / 한용희, 가톨릭시즘의 공산주의 비판, 숙명여대 한국정치경제연구소,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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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론 [한] 唯物論 [영] Materialism [독] Materialismus

정신(精神)에 대해 물질(物質)의 근원성을 주장하는 세계관으로 물질에 대해 정신의 근원성을 주장하는 세계관인 관념론과 대립된다. 유물론은 의식과는 독립된 객관적 실재(물질)의 존재를 인정하여, 우리의 인식은 정신의 창조과정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실재가 우리의 두뇌에 반영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관념론과 유물론의 대립은 철학의 역사와 더불어 시작되는데 유물론의 원류는 대체로 다음과 같다. ① 세계는 아톰(atom)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 아톰이 허공에서 운동한다고 한 데모크리토스(Demokritos)로 대표되는 그리스시대의 유물론 ② 데카르트에 의해 싹트고 가생디(Pierre Gassen야), 홉즈에 의해 발전되고 디드로(Diderot) 등에 의해 확립된 고전적 유물론, ‘동물은 기계’라고 주장한 데카르트나 인간기계론을 주장한 라 메트리(La Mettrie)는 고전적 유물론의 사상을 잘 표현하고 있다. 이 밖에 홀바하(Holbach) 같은 이는 물질과 물질의 운동이외에 존재하는 것은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으며, 운동은 기계론적인 법칙에 지배되고 있다고 하여, 인간도 물질의 지배 아래에 있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③ 물리학 · 화학 · 생물학 · 생리학 등의 자연과학이 비약적으로 발전을 보기 시작한 19세기에 나타난 자연과학적 유물론. 폭트(Karl Vogt)는 “사상의 두뇌에 대한 관계는 담즙의 간장에, 오줌의 신장에 대한 관계와 같다”고 주장하여 인간의 의식을 생물학적 차원으로 환원하여 해석이 가능하다고 보았으며, 생물학적 차원의 문제는 다시 화학적 차원으로 환원, 해석 가능하다고 보는 기계론적인 유물론의 전통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 그러나 19세기 후반에 이르면 기계론적인 경향은 퇴조하고, 대신에 에너지 법칙과 진화론을 받아들인 유물론이 생겨난다. ④ 헤겔의 변증법이 지닌 관념론과 포이에르바하의 유물론이 지닌 형이상학적인 성격을 비판하고 양자를 통일시킨 변증법적 유물론,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의해 확립된 변증법적 유물론에서는 세계의 본질이란 스스로 운동하고 발전하는 물질이며, 의식은 물질이 발전하는 단계에서 생성된 특정한 유기물(두뇌)의 운동에 의해 나타난 산물이고, 인식은 인간의 실천을 매개로 한 물질의 반영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된다. 또한 세계는 물질의 운동과정과 인간의 인식활동을 포함한 모든 과정의 통일을 통하여 낮은 단계에서 높은 단계의 차원으로 무한히 발전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이 변증법적 유물론이 사회의 역사발전과정을 해석하는 데 적용된 것이 사적 유물론(史的唯物論)이다. 사적 유물론은 모든 인간관계를 지배하는 원리를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재화(財貨)의 생산과 교환을 둘러싼 생산관계로 설명하고 있다. 마르크스는 이것을 하부구조(下部構造, base)라고 부르고, 하부구조에 의해 정치 · 법률 · 종교 · 윤리 · 사상 등의 상부구조(上部構造, superstructure)가 규정되며, 다시 상부구조와 하부구조는 상호 교호작용을 통하여 서로를 규정한다고 하였다. 이것을 그는 유명한 명제 “사회적 존재가 사회적 의식을 결정한다”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사적 유물론은 단순히 세계를 해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세계를 변혁시키는 사상으로 이용되어 변증법적 유물론과 함께 공산주의 철학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참고문헌] F.A. Lange, History of Materialism, 3d ed., London 1950 / N. Berdjaev, Christianity and Class War(정용섭 역, 그리스도교와 계급투쟁,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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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몽인 [한] 柳夢寅

유몽인(1559~1623). 조선의 문신. 자는 응문(應文), 호는 어우당(於宇堂) · 간재(艮齋) · 묵호자(默好子). 본관은 흥양(興陽). 사간(司諫)을 지낸 충관(忠寬)의 손자이며 당(-)의 아들. 1582년(宣祖 15년) 진사가 되었고, 1589년 증광문과(增廣文科)에 급제하여 문학(文學)이 되었다. 성혼(成渾)의 문인(門人)으로 문장과 서예가 뛰어나 설화문학(說話文學)의 대가로 명성을 떨쳤으나 성품이 경박하여 스승에게 절연당한 후 이이첨(李爾瞻)을 비롯한 대북(大北)파의 인사들과 교유, 중북(中北)파의 영수가 되었다. 선조 말년에 황해도관찰사, 좌승지, 도승지를 역임하고 1612(光海君 4년)년에 예조참판을 거쳐 이조참판이 되었고 폐모론(廢母論)에 반대하고 이이첨과 대립하여 1623년 인조반정(仁祖反正) 때 화를 면했으나 이괄(李适)의 난에 연루되어 아들 약(-)과 함께 처형되었다. 정조 때 신원되어 의정(義貞)의 시호와 함께 이조판서로 추증되고 홍양의 운곡사(雲谷寺) 고산의 삼현영당(三賢影堂)에 제향되었다.

그의 저서로는 ≪어우야담≫(於于野談), ≪어우집≫(於于集) 등이 있는데 ≪어우야담≫에서 그는 천주를 유교의 상제(上帝)와 같은 개념으로 파악하고 천주교에는 많은 이치가 있긴 하나 천당지옥설은 세상을 미혹하게 하는 것이라고 ≪천주실의≫의 내용을 비판하는 한편 ≪교우론≫(交友論)에 대해서는 좋은 평가를 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논평은 성호 이익(李瀷)과 일맥상통한 것으로, 당파적인 입장에서의 비평이 아니라 순수한 학구적인 비평이었고, 이것은 결국 지식층에게 서학에 대한 관심을 높여 주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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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론 [한] 唯名論 [영] nominalism [독] Nominalismus

보편의 실재성을 부정하고 진실로 존재하는 것은 개개의 사물이라는 입장의 학설로 명목론이라고도 한다. 중세 스콜라학의 보편논쟁에서 실재론에 반대하여 보편은 ‘개개의 사물 뒤에 있는 이름’(nomina post res)에 불과하다고 주장. 유명론이 제창된 시기는 11-12세기의 전기와 14세기의 후기로 나뉘는데, 전기에는 베렝가르, 로스케리누스, 아벨라르두스가 대표적이며, 후기에 오캄(Occam)은 유명론을 완성시켰다. 오캄에 의하면 보편은 수많은 개개의 사물을 대표하는 명사에 불과하다라고 주장, 명사설(terminism)이라고도 불린다. 또 개체란 나 눌 수 있는 성질이 아니며 보편에서 연역할 수도 없다고 하였다. 여기서 보편이란 개념을 신과 동일시한 유명론은 감각적 자연을 신으로부터 독립시켜 파악하려 한다. 감각적 자연의 파악은 감각적 경험에 의해서 가능하고, 이 경험에 의한 지각을 오캄은 직각적 인식이라 불렀다. 그리고 직각적 인식은 모든 지식의 기초인데, 직각적 인식이 곧바로 지식이 되는 것은 아니고 이성에 의해 추상적 인식의 단계로 높아질 때 비로소 참된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오캄은 바로 이 추상적 인식을 보편이라 불렀다. 이러한 유명론은 신학을 근본적으로 뒤엎는 것이 되어 이단으로 몰린다. 즉 신을 이성적 보편으로 파악하려 하지 않고, 개별적 의지로 파악한 유명론은 당시 성직자들에 의하여 금지당하고 오캄주의의 신봉자들은 옥스퍼드와 파리로 들어가 근세초기의 영국 유물론자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구체적인 지각만을 인정하여 추상적 관념을 부정하는 버클리(George Berkeley)의 극단적 유명론과 같이 주관적 관념론에 빠지게 되는 경우도 있다. 현대에서의 유명론은 의미론 철학에서 그 영향을 찾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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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주의 [한] 唯理主義 [영] rationalism

보편타당한 진리의 인식은 경험에서 독립된 이성적인 인식이라고 하는 주장. 따라서 선험적이고 자명한 기본원리에서 논리적으로 도출된 것만을 확실한 인식이라 생각한다. 많은 유리주의자들은 수학을 확실한 인식의 모델로 삼았으며 생득관념(生得觀念)을 인정한다. 데카르트, 스피노자, 라이프니츠 등의 철학이 유리주의적 요소를 많이 지니고 있다. 이러한 유리주의는 인간이 이성은 자기충족적이어서 특별한 신의 계시 없이도 모든 것을 인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인간이 행복해지기 위해 알 필요가 있는 지식을 이성으로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신의 계시는 필요하지 않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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