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서성성 [한] 禁書聖省 [라] Sacra Congregatio Indicis [영] Congregation of the Index [관련] 신

신자들의 신앙생활에 해로운 책들의 목록을 작성, 추방하는 업무를 담당하던 교황청 성성 산하기구. 교황 비오 5세(재위 : 1566~1572) 때 설치되었다가 1917년 폐쇄되었다. 현재 이 역할은 신앙교리성성에서 맡고 있다. (⇒) 신앙교리성성, 금서, 금서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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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서목록 [한] 禁書目錄 [라] index librorum prohibitorum [영] index of forbidden books

교회가 신자의 신앙을 순순하게 지키고 신자의 구원에 도움을 주기 위해 신앙 도덕에 해를 끼친다고 생각되는 서적과 책자를 읽지 못하게 금한 책의 목록. 금서 목록에 게재된 책을 교회권위자의 허가 없이 발행, 독서, 소장, 판매, 번역, 타인에게 알리는 행위를 했을 경우 대죄(大罪)에 해당했고, 교황이 서한을 통하여 특별히 금지한 책의 경우에 위와 같은 행위를 하면 파문(破門)을 받았다. 금서목록의 발행은 1571년부터 1917년까지 로마 교황청의 금서성성(禁書聖省, S. Congregatio Indicis)에서 발행하였다. 최초의 금서목록은 1559년 교황 바오로(Paulus) 4세에 의해 발행되었고, 교황 비오(Pius) 4세에 의해 발행된 트리엔트 금서목록(1564년)은 1900년 레오(Leo) 13세의 개정 때까지 거의 그대로 효력을 발휘하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1966년) 금서목록의 발행은 중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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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서 [한] 禁書 [라] Libri prohibiti

그리스도교 신앙과 교리에 반(反)하는 것으로 특별한 이유 없이는 읽어서 안 된다고 하는 책. 이 금서는 옛날부터 목록으로 작성되어 배포되었다. 최초의 금서는 아마도 교황 성 인노첸시오 1세에 의해 위경(僞經)으로 배격된 성서일 것이다(417년). 최초의 금서목록은 1559년 교황 바오로 4세 때에 이단심문성(異端審問省)에서 발표되었다. 1571년 교황 성 비오 5세는 금서목록성성(禁書目錄聖省)을 설립하여 금서목록작성에 주력하였으며 이 성성은 1917년까지 존속했고, 그 뒤 이 일은 검사성성(檢邪聖省)으로 넘어갔다. 1918년에 공포된 구(舊) 교회법전에는 금서에 관한 조항이 11개조(1395~1405조)나 설정되어 있고, 이에 따르지 않을 경우 엄한 벌이 내려짐을 규정하고 있다. 1966년 신앙교리성성은 금서관계의 법규정은 이제 더 이상 효력을 갖지 않는다고 발표하였다. 그러면서도 계시된 진리에 반하는 출판물에 대한 교회의 기본적인 태도에는 변함이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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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본당 [한] 錦山本堂

충남 금산읍 중도리에 위치한 대전교구 소속 본당. 대구교구 되재본당 소속의 공소였다가, 1929년 금산군 진산면 지방리에 정식으로 본당이 신설되었다. 그러나 1931년 전주교구가 대구교구에서 분리될 때 이 본당은 폐지, 다시 공소로 격하되었다가, 1935년 현 위치에 본당이 다시 개설되면서 초대 주임신부로 이 이냐시오(석만) 신부가 부임하였다. 1955년 7대 허다두(일록) 신부 때 성당 신축부지를 매입, 1963년 이 도미니코(기순) 신부가 부속 유치원을 설립하였다. 1972년 13대 김 스테파노(환철) 신부가 신용조합을 창설, 1973년 회장 이 토마스(금수) 소유의 임야 약 1정보를 성당묘지로 기증받았으며, 1977년 복수면 백암리에 공소 건물을 신축하였다. 1980년 금산본당은 전주교구에서 대전교구로 편입되었으며, 현재18대 신 토마스(상욱) 신부가 주임을 맡아 사목하고 있다. 이 본당의 주보는 매괴이고, 신자수는 1,193명(1983년 현재), 공소는 4개소이다.

이 고장은 신해박해(辛亥迫害, 1791년)때 윤 바오로(尹持忠)가 순교한 곳(당시 珍山郡 장구동, 현재 금산군 진산면)이며, 병인박해(1866년) 때까지 여러 명의 순교자를 배출한 유서 깊은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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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사리본당 [한] 金寺里本堂

충남 부여군 구룡면(九龍面) 금사리에 위치한 대전교구 소속의 이 본당은 1901년 7월에 설립, 현재 구룡면, 내산면(內山面), 외산면(外山面)을 관할하고 있으며, 주보는 성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신자수는 1,273명(1983년 현재), 공소는 10개소이다. 원래 금사리에는 공소가 있었으며 손우기, 김방수(도마), 배 빅토리오, 이정병(요한) 등의 집안 교우들이 살고 있어TEk. 1900년 손우기, 윤영식 두 교우가 상경하여 뮈텔(Mutel, 閔德孝) 주교에게 본당설치를 품달했고, 1901년 5월 초대 주임 공베르(Julien Gombert, 孔安世) 신부에게 본당 설치의 명령이 내려졌다. 현 성당부지는 흉가로 불리던 가옥 3동이 있던 자리이며, 그 밖에는 논 8마지기, 큰 갈망굴산, 율암리산 등을 동시에 매입, 벽돌 양관 건축을 착공(1901. 4), 1906년 4월에 축성식을 갖게 되었다. 당시에는 충남 남서부 지역(부여군, 논산군 일부, 청양군 일부, 예산군 일부, 홍성군, 서산군 안면도, 보령군, 서천군)을 담당하여 사목했었으며, 당시의 교우수는 1,000명을 넘었다. 현 성당건물은 1968년에 축성. 23대(1982~현재)인 박연호(요한 보스코) 신부에 이르는 동안 초대 공베르 신부 외에 7대(1948~1950년) 프로망투(Emile Fromentoux, 包) 신부 13대 제제구(Jezegou, 崔) 신부 등 3명의 외국인 신부가 부임, 사목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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