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안에 한 분의 성령을 모시고 하나의 교회를 이루는 그리스도의 제자들 가운데, 죽어 천상에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직접 뵙고 있는 형제들, 즉 천국의 교회를 말한다. (⇒) 신전지교회, 단련지교회, 모든 성인의 통공
개발도상국 [한] 開發途上國 [영] underdeveloped countries, developing countries, backward cou
흔히 후진국(後進國)과 동의어로 사용된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제국주의의 세계지배체제가 붕괴된 두에 제국주의의 정치적 억압, 경제적 수탈, 사회 · 문화적 속박에서 해방된 신생독립국가들을 말한다. 이들 신생독립국가들은 비록 정치적 독립은 이룩했지만 정치적 자립을 지탱할 경제적인 자립은 이룩하지 못한 상태에 있었다. 그러므로 이들 국가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식민제적 유산을 청산하고 자립경제를 이룩하는 것이었다. 자립경제의 길은 신생독립국이 후진성에서 탈피하는 길이며 여기서 후진성의연구에 초점이 주어지게 된다. 한 국가의 후진성에 대하여는 2개의 서로 다른 견해가 있다.
① 근대적 도시와 전근대적 농촌이라는 2개의 사회적인 계층간의 이중성을 후진성의 기초로 보는 뵈케(Boeke)의 견해나 후진국의 내부사정과 함께 제국주의의 식민지 지배를 또 하나의 원인으로 들고 있는 뮌트(Myint), 뮈르달(Myrdal) 등 서구 경제학자들의 견해가 있다. ② 그러나 그들은 신생제국에 있어서 과거와 현재에 존재하고 있는 제국주의 자본의 파괴적인 역할을 의식적으로 간과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제국주의의 식민지 지배가 후진국에 미친 악영향을 불가피한 것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선진 자본주의제국의 옹호자로 자처하고 있다고 비판할 바란(Paul Baran), 돕(Morrice Dobb) 등 서구 마르크스 주의자들이 있는데, 이들은 후진국의 후진성을 자본주의 전개에 있어서 출발을 늦게 했다는 사실과 선진 자본주의 제국에 의한 경제잉여의 수탈에 의한 자립 재생산구조의 상실, 생산에 기여하지 않는 기생적 계급을 존속시키기 위해 소비된 경제잉여로 말미암아 자립적 재생산 경제를 확립하는 데 실패한 점에서 찾는다.
이러한 후진성에 대한 입장의 차이에 따라 자립적 경제 구조를 확립하기 위해 자본주의 경제개발 및 발전모델을 채택한 국가도 있고, 사회주의 경제개발 및 발전모델을 채택한 국가도 있다. 이들 후진 신생제국들은 선진국과의 종속관계에서 탈피하고, 무역불균형 등을 포함한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 등 전반에 걸쳐 자주적인 발전을 꾀하기 위해 비동맹그룹을 창설, 운영하고 있다. 최근 들어 개발도상국 혹은 후진국은 흔히 ‘제 3세계’라고 불려진다. 그러나 제 3세계라는 말은 경제적인 면을 포함하고 있지만 정치적인 면이 더 부각되고, 후진국이란 말은 경제적인 면이 강조되는 듯한 어감을 갖는다.
가톨릭 교회는 개발도상국이나 후진국의 문제에대해서 깊이 연구하고 있다. 특히 강대국이나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을 원하는데 있어서 정의와 평등의 원칙을 준수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참고문헌] 요한 23세, 어머니와 교사, 1961 / 요한 23세, 지상의평화, 1963 / 바오로 6세, 민족들의 발전촉진에 관한 회칙 1967 / 사목헌장, 1975.
개두포 [한] 蓋頭布 [라] amictus [영] amice
사제가 미사 때 가장 먼저 착용하는, 아마포로 된 장방형의 흰 천으로 양쪽에 긴 끈이 달려 있어 어깨 위로 걸치게 된다. 고대 로마인들의 목도리에서 유래된 것으로 후에 로마에서는 성직자들이 장백의를 입을 때 반드시 개두포를 착용하였다. 현재는 사제가 수단을 입지 않았을 경우 장백의가 평복의 목까지 다 덮지 못할 때 개두포를 착용한다. 개두포는 ‘구원의 투구’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며, 사제는 개두포를 착용하면서 다음과 같이 기도한다. “주여 내 머리에 투구를 씌우사 마귀의 공격을 막게 하소서.”
개념론 [한] 槪念論 [라] conceptualismus [영] conceptualism [관련] 보편논쟁
중세말 스콜라 철학자들 사이에서는 ‘보편’이란 문제를 둘러싸고 소위 보편논쟁이 일어났다. 이 논쟁에서 개념론자들은 유명론(唯名論, nominalism)에 반대하여 보편의 본성을 주장하였고, 실재론(實在論, realism)에 반대하여 보편이란 개념에 불과하다고 주장하였다. 즉 11세기 유명론자인 로셀리누스(Roscelinus)는 “개개의 사물만이 존재하고 보편이란 그 후(post res) 인간이 만들어낸 명칭에 불과하다”고 주장하였고, 에리우제나(Eriugena), 안셀모(Anselmus) 등은 “개개의 사물에 선행하여 (ante res) 보편은 존재한다”는 플라톤적 실재론을 주장하였다. 이에 보편론자들은 보편이란 실재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의 마음 속에 개념으로 존재한다고 주장하였다. (⇒) 보편논쟁
강화 [한] 江華
교회사적지. 강화도는 수도방어의 요충지로서 외세와 충돌의 현장이었기 때문에 박해 또한 극심하였다. 1866년 프랑스 성직자 9명이 처형된 사실을 추궁한다는 명목으로 프랑스는 함대 6척에 병사 600여명을 파견하였다. 10월 3일 강화도 근해에 정박한 함대는 포함(砲艦)과 연락선을 강화 갑곶(甲串)에 파견, 마침내 상황은 전투적으로 발전하여 전등사 전투에서 패한 프랑스군은 강화읍을 불지르고 10월 10일 후퇴하였다. 이로 인해 강화지방에서는 새로운 박해가 일어났다. 1866년 성연순(成連順)과 원윤철(元允哲)이 통진에서 치명했고, 1868년에는 박상손(朴常孫), 우윤집(禹允集), 최순복(崔順福), 최인서(요한), 조서방, 박서방, 최영준, 장치선 등이 강화에서 치명하였으며, 1870년에는 권바오로가 통진에서 순교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