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부의 반지 [한] 漁夫∼ [영] Fisherman’s Ring [관련] 교황인감

공식문서에 서명, 날인하는데 사용되는 교황의 반지. 교황의 반지를 ‘어부의 반지’라고 부르는 이유는 사도들의 지도자, 즉 초대 교황인 베드로와 관련되어 있다. 즉 베드로는 예수의 제자가 되기 전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였으며, 예수께서 그를 제자로 삼으실 때 베드로와 그의 동료들을 향하여 “내가 너희를 사람낚는 어부로 만들겠다”(마태 4:19, 마르 1:17, 루가 5:11)고 하셨던 것이다. 결국 교황의 ‘어부의 반지’는 금으로 만들며, 고기를 들고 있는 베드로상(像)과 교황명이 새겨져 있다. 교황으로 선출될 때 인도되고, 교황이 선종하게 되면 교황청 회계원장에 의해 교황의 유해와 함께 매장된다. (⇒) 교황인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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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우야담 [한] 於于野談 [관련] 유몽인

어우당(於于堂) 유몽인(柳夢寅)의 저서로, 민간의 야담과 설화(說話)를 모은 책. 2권으로 된 ≪어우야담≫은 한문본과 한글본의 두 가지 사본이 전해지고 있는데, 한글역의 역자와 연대는 확실치 않다.

조선 인조(仁祖) 때의 학자인 유몽인(1559~1623)은 그의 저서 ≪어우야담≫에서 마태오 리치(Matteo Ricci, 李瑪竇)의 ≪천주실의≫(天主實義)를 비평하는 가운데, ≪천주실의≫의 천주라 함은 상제를 말하는 것이요 실(實)이라 함은 불공(不空)을 말하는 것이니, 노불(老佛)의 공(空)과 무(無)를 배격하는 것이라 하여, 천주교의 천주라는 것이 곧 유교의 상제를 뜻한 것으로 보아, 전적으로 천주교를 배척하는 입장을 취하지는 않았으나, 그로부터 시작된 천주교에 대한 비판은 이익(李瀷), 신후담(愼後聃), 안정복(安鼎福)으로 이어져 내려감에 따라 점차 신랄해져 장차 척사(斥邪)의 이론적 근거를 마련해 주었다. (⇒) 유몽인

[참고문헌] 崔奭佑, 韓國天主敎會의 歷史, 한국교회사연구소, 1982 / 韓國人物大辭典, 新丘文化社, 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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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겸파 [한] 抑謙派 [라] Humiliati

12세기 이탈리아의 밀라노지방에서 결성된 신심회(信心會)로 그 후 베네딕토수도회칙을 받아들여 1134년 밀라노지방에 수도원을 세우기도 하였다. 원시 그리스도교의 공동체(사도 2:44)를 본받아 사유재산(私有財産)을 거부하고 생산조합(生産組合)을 형성하였다.

억겸파란 ‘굴욕을 받은 자들’이란 의미를 가진 말로, 서임권논쟁(敍任權論爭)을 둘러싼 교황 그레고리오 7세와 황제 하인리히 2세 사이의 투쟁이 일어났을 때 하인리히 2세에 의해 독일로 잡혀갔다가 귀환한 롬바르디아인 포로들을 가리켰다. 이들은 포로생활을 회개를 하면서 보냈는데 롬바르디아로 돌아와서도 그 생활을 계속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생활 속에서 점차 급진적인 계향이 나타나기 시작하였고, 이에 따라 교황 인노첸시오 3세는 이 운동을 교회의 통제 아래 두었다. 그러자 그중 일부는 수도회에 가입하였고, 일부는 계속 세속에 남아 있으면서도 수도원의 종교의식에 참여하고 기도생활을 계속하여 수도원에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였다. 이들의 이러한 관계가 후에 ‘제3회’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한편 억겸파의 부인들도 블라소니(Blassoni)의 지도 아래 신심회를 결성하여 병자들을 돌보았다. 이 회는 그 뒤 ‘회칙준수 간호수도회’로 발전하여 1571년 억겸파가 해산된 이후에도 계속 존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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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양본당 [한] 彦陽本堂

주보로 ‘그리스도왕’을 모시는 이 본당은 1927년 5월 25일 경남 울주군 언양면 송대리(蔚州郡 彦陽面 松臺里)에 프랑스인 에밀보드벤(한국명 정도평) 신부가 부임하여 창설되었다. 경주, 울산, 양산 등지 사이에 끼인 언양은 일찍이 박해시대에 신자들의 피난처로 유서깊은 곳이다. 이 고장 출신 교인 중에는 병인박해(1866년) 때 울산 장대에서 순교한 허인백(許仁伯)을 비롯하여, 김종륜(金宗倫), 이양등(李陽登) 등이 이웃 울산 대재[竹嶺]에 숨었다가 경주 포교들에게 잡혀가 순교하였다. 박해가 끝나가 간월산(肝月山) 일대에 숨어살던 신자들이 마을로 돌아와 살게 되면서 현재 교회가 들어선 송대리를 중심으로 공소를 차리고, 부산 진본당의 관할을 받았다.

이런 발자취를 통하여 1,300명의 신자를 모아 본당으로 발족한 이 성당의 보드벤 신부는 신자들이 오랜 피난살이로 가난하기 때문에 성당 건립기금을 모을 수 없음을 알고 자신의 생활비를 줄여 모은 돈과 프랑스 본국 은인들의 도움을 받아 1930년에 건축을 시작, 6년이란 세월을 걸려 석조의 성당과 사제관을 짓고 1936년 10월 25일 대구교구 다블뤼 주교의 집전으로 축성식을 봉헌하였다. 1954년 1월 소화 유치원을 설립하고 1957년엔 강당을 세웠으며 교세의 확장으로 1958년 5월에는 구포본당을 분할하였다. 1966년 12월 예수성심전교수녀회 분원을 개설하고, 1979년 11월에는 안나 데레사회관을 준공하였다. 현재 이 본당은 하용달(河龍達, 안드레아) 신부가 맡고 있으며 신자수 1,600명에 6개 공소를 관할하고 있다.

그 동안 이 본당의 주임을 맡았던 신부는 2대 공(孔) 신부, 3대 조 신부, 4대 정수길(鄭水吉, 요셉), 5대 유흥모(柳興模, 안드레아), 6대 이성만(李性萬, 이냐시오), 7대 최병선(崔炳璇, 요한), 8대 김재석(金在石, 요셉), 9대 김영제(金永濟, 요한), 10대 이돈우(李敦雨, 레오), 11대 신윤우(申允雨, 갈리스도), 12대 배상섭(裵尙燮, 요한), 13대 이동훈(李東勳, 안토니오), 14대 김성도(金成道, 모이세), 15대 최영철(崔永喆, 알로이시오), 16대 권지호(權支浩, 프란치스코), 17대 김승주(金承柱, 크리소스토모) 신부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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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격개연주의 [한] 嚴格蓋然主義 [라] probabiliorismus [영] probabiliorism [프] probabiliorisme

일정한 행위가 도덕적으로 정당성을 갖는가, 갖지 않는가 하는 의문에 부딪혔을 때, 법에 규정된 대로 따를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이때 법에 반하는 이유가 있을 때에만 그 행위를 할 수 있다는 입장을 엄격주의라 한다. 엄격주의는 1577년 바르톨로메오(Bartholomaeus de Medina)에 의해 원칙이 선언되었다. 자유롭게 행위할 개연성이 없다면 법에 따르는 것이 더 개연적이고, 똑같은 개연성을 갖는다면 법에 준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1656년 알렉산데르 7세에 의해 도미니코회 회칙으로 선언되었다. 18세기 이후 이 주장은 거의 주장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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