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엘 [라] Raphael [영] Raphael [관련] 천사

대천사(大天使), 대축일 9월 29일. 토비트의 이야기에서 주요 임무를 수행하는 천사. ‘하느님이 낫게 하였다’는 뜻을 지닌 히브리어에서 유래한 이름인 라파엘은 성서 중 토비트서에만 나온다. 여기서 라파엘은 토비트와 사라의 기도를 들어주라는 하느님의 명을 받들어 사라의 결혼을 주선해 주고 토비트의 눈을 뜨게 한다(토비 3:16-17, 11:13). 하늘로 돌아가기 전에 라파엘은 자신이 영광스러운 주님을 시중드는 일곱 천사 중의 하나(토비 13:15)라고 밝힌다. 토비트서의 저자가 사라에게 붙은 귀신과 라파엘을(토비 8:3) 기술하는 접근방법은 천사론이 발전되기 시작했던 당시의 문화와 배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라파엘의 공경은 비교적 늦게 시작되었다. 베네치아 교회의 주보가 된 것은 7세기의 일이며 그의 축일 미사는 17세기에 와서 많이 지내게 되었다. 1921년 교황 베네딕토 15세는 라파엘의 축일을 전세계적으로 지내도록 하였다. 라파엘은 소재로 한 예술은 16세기 이래 다양해졌으며 여행자의 주보로 널리 묘사 되고 있다. (⇒) 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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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제국 [한] ~帝國 [라] Imperium Latinum [영] Latin empire

1204년 제4차 십자군이 동로마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하고 발드윈(Baldwin von Flandern)을 황제로 하여 가톨릭이 세운 제국인데 1261년 멸망하였다. 초대 황제 발드윈은 그리스를 4분하여 데살로니카는 그의 지배하에 두고 나머지는 베네치아인과 십자군 참가자들에게 봉토로 분할해 주었다. 2년 뒤 발드윈은 불가리아 저항군의 손에 잡혀 죽고, 그의 동생 하인리히가 황제로 즉위하였다. 그의 재위기간 10년 동안이 라틴제국의 황금기로, 그 시대를 정점으로 하여 점차 쇠퇴, 1261년 발드윈 2세가 니체아의 군주 미카엘 8세에 의해 몰락함으로써 멸망하게 된다. 라틴제국의 건설은 효과면에서 완전히 부정적이었을 뿐 아니라 파괴적이기도 하였다. 제4차 십자군 원장과 라틴제국의 건설을 통해 수행된 교황청의 정책, 즉 동로마제국에서 라틴주교의 승인과 지지, 비잔틴 교회의 라틴의식 강요는 그리스 정교회의 성직자와 신도의 반발과 항쟁을 유발하였다. 이로써 그리스인에게 정교회란 개념은 그리스 민족주의와 반(反)라틴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져 가톨릭과 정교회의 분리는 더욱 가속화된다. 또 베네치아 상인들의 활동, 즉 그리스에서 그들의 상업적 이익을 위한 활동은 그리스인들의 독립의지를 부채질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라틴제국은 멸망했지만 동로마제국의 힘도 약화되어, 이슬람교엣 대한 전초기지로서의 동로마제국이 1453년 오스만 터기에 의해 붕괴되고 가톨릭 제국은 이슬람 세력과의 직접 충돌에 직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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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전례 [한] ~典禮 [영] Latin rite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사용되고 있는 전례들을 총칭하는 말. 라틴 전례는 미사 중 사제의 기도가 다양하게 변형된다는 점에서 동방 전례와 구별된다. 라틴 전례에서는 사제의 자유로운 즉흥적인 기도가 동방 교회보다 더 오래 유지되었다. 라틴 전례는 흔히 로마식 전례와 갈리아식 전례로 나누어 설명된다. 전자는 중부 및 남부 이탈리아의 북아프리카에서 사용되며, 후자는 서유럽(북부 이탈리아까지 포함)에서 사용되는 전례이다. 갈리아식 전례는 통일된 전례로 이해되어질 수는 없다. 갈리아식 전례의 성립과 발전에 관해서 고대로부터 많은 논쟁이 있어 왔다. 그러나 갈리아식 전례로 간주되는 여러 전례는 모두 동방 교회에서 영향받았다는 공통점을 보여 준다. 이에 비해 로마식 전례는 알렉산드리아 교회와 공통점을 보여 준다. 즉 갈리아식 전례는 모든 성찬 기도를 여러 가지 독립되어 변형되는 기도로 나누는 데 비해 로마식 전례는 다양하게 변형되는 감사송 뒤에 본질적으로는 변하지 않고 일반적인 성찬기도를 제시한다. 갈리아식 전례의 기도는 장황하고 기꺼이 예수 그리스도께 바친다. 이에 비해 로마식 전례의 기도 형태는 간략하며 ‘하느님 아버지께’라는 명칭이 엄격하게 관철된다. 갈리아식 전례는 극적이며 화려하고 양식화되었고, 교계제도적이라기보다는 유연하며 이로 인해 대중적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로마식 전례는 간소함과 단순함을 그 특징으로 한다.

라틴 전례는 프랑크 왕국 때 다른 나라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7세기 이슬람 교도들에게 쫓기어 많은 동방의 성직자의 수도자가 로마에 피신해 옴으로써 전례에 그리스적인 관습이 도입되었다. 특히 성모영보 대축일, 성모승천 대축일 등 성모축일들이 동방으로부터 도입되었다. 중세 말기에도 라틴 전례에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성체에 대한 신심에서 성체 공경의 새로운 양식이 발전되어 성체 축일이 제정된 것이 그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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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어성가 [한] ~語聖歌 [영] Latin chant [관련] 그레고리오 성가

‘그레고리오 성가’(Gregorian Chant)라고도 하며 천주교회의 공인된 전통적 전례음악(典禮音樂). 구약시대, 유대민족의 성가로부터, 또 초대 교회의 성가나 암브로시오(Ambrosius) 성가의 영향을 받았으며, 멜로디도 그런 고전적인 형태를 갖는다. 교황 성 그레고리오(St. Gregorius) 1세 때에 교회 전례의 확립과 동시에 성가를 집대성하여 교회 전례음악으로 정립하였으며, 그레고리오 성가라는 명칭도 여기서 유래한다. 10세기경에 이르러 화성적(和聲的)인 성향이 농후해져 훈련된 성가대만이 부를 수 있게 되자 점차 쇠퇴해졌다가 교황 성 비오(St. Pius) 10세 때 개정 작업을 시작하여 교황 비오(St. Pius) 11세, 12세를 거쳐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때에 성스러운 전례로 재확인되었다. 한편 유대, 로마, 프랑크 지방의 모든 요소들의 프랑크 지방을 중심으로 융합 발전되어 현재와 같은 고전적인 형태로 남아 있게 되었다. 오늘에 전해 내려온 그레고리오 성가집으로는 8~9세기경의 가사만이 있는 성가집, 9~10세기경의 네우마(Neuma) 기보법(記譜法)에 의한 성가집, 그리고 현대악보와 같이 음정이 표시된 디아스테마타(Diastemata) 기보법에 의한 성가집이 있다. (⇒) 그레고리오 성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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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어 [한] ~語 [영] Latin language

원래는 로마를 포함한 이탈리아의 라시움(Latium) 주(州)에서 사는 주민들의 용어였다. 3세기 경 서방교회에서의 공용어로 그리스어 대신으로 아프리카에서 제일 먼저 사용되었다. 교회 라틴어는 고전보다는 오히려 민간에서 통용되는 말에서 발달하여 불카타(Vulgata) 성서에서 거의 확립되었다. 이후 가톨릭 교회의 공용어(公用語)로 사용되어 전례용어(典禮用語)로, 또는 신학교에서의 수업과 모든 교과서에 사용되어 왔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전례, 특히 미사를 드릴 때의 기도문까지도 자국어(自國語)로 행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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