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 [한] 勞動組合 [영] trade union [독] Gewerkschaft [관련] 노동권

노동조합은 노동자가 노동조건, 나아가서 생활조건을 유지 개선하기 위해 조직한 자주적이고 계속적인 단체를 말한다. 노동조합은 임금, 노동시간, 작업환경 등 노동조건의 안정과 개선을 일차적 목적으로 하지만, 노동자계급의 사회 · 경제 · 문화 · 정치적 지위향상을 위하여 노동운동뿐만 아니라 정치적 활동까지 담당하게 된다. 최초의 노동조합은 1824년 영국에서 탄생, 공인되었다. 그 전까지만 하더라도 자본가와 정부권력은 노동자의 단체활동을 단체금지법으로 금지하고, 노동운동가들을 공모죄와 반란죄의 명목으로 처단하였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발전과 함께 노동자의 의식이 발전하고, 또한 하나의 작업장에 많은 노동자가 모이게 되어 사용자와의 계약에 있어서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참여하는 계기가 된다. 여기서 나타난 것이 직업별 노동조합(craft union)이다. 19세기말 제2차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 종래 숙련공위주의 폐쇄적인 노동조합은 급격히 증가하는 반숙련공, 잡노동 제공자, 보조노동제공자의 등장에 따라 더 넓은 조직으로 확대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에 따라 새로이 산업별 조합(industrial union)이 탄생한다. 직업별 조합과 산업별 조합의 범위에 속하지 않는 노동자, 미숙련 노동자, 잡역 노동자들이 결집하여 나타난 것이 일반조합(general union)이다.

노동조합의 기본임무는, 조합원의 고용안정과 노동조건의 개선에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는 노동수단(도구)을 소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자신이 가진 유일한 소유물인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하여 생활을 영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노동자는 일반적으로 시장지식에 어두운 데다 생활을 꾸려 나가기 위해 자신의 노동력을 사용자에게 팔아 생활재료를 구입할 화폐를 얻어야 하기 때문에 저렴한 가격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하게 된다. 또한 광범하게 존재하는 실업(失業)은 노동자 사이에 노동력 판매경쟁을 유발시키고 이에 따라 임금은 형편없이 인하된다. 노동력이란 원래 저장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 판매해야 하는 성질의 것이기 때문에 판매되지 않는 노동력이란 무가치한 것이 된다. 이 또한 노동력 판매자인 노동자에게 불리한 조건의 하나다. 이런 여러 가지 조건에 따라 노동력이라는 특수한 상품의 판매자인 노동자는, 노동력의 구매자인 사용자와 대등한 입장에서 거래하는 당사자가 되지 못한다. 이러한 상황 아래서 노동자들의 자각이 일반화하면서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개별적으로 고립, 분산된 형태로 사용자와 거래를 할 것이 아니라, 단결하여 집단적으로 거래함으로써 자신들의 지위를 개선시켜 나갈 수 있음을 인식하게 된다. 여기서 비로소 노동조합이라는 것이 탄생하게 된다. 노동조합이 노동자사이에 노동력 판매경쟁을 피하게 하고, 사용자에게 제시한 노동조건을 사용자가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조합원들에게 노동력 제공을 거부케 함으로써 조합의 요구를 관철시켜 나간다. 여기에 대해 사용자측은 끊임없이 노동조합을 파괴하려 하거나 연성화(軟性化)하려 한다. 이에 따른 노동자와 사용자간의 투쟁은 세계 각국의 노동운동사를 노동자의 피와 땀과 눈물로 얼룩진 역사로 만들어 놓았다. 우리나라의 노동운동사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의 노동조합은 일제시대에 태동하게 된다. 당시 노동조합은 노동조합 고유의 기능뿐만 아니라 민족해방의 과제까지 떠맡아 투쟁하였기 때문에 더욱 가혹한 일제의 탄압을 받았다. 1945년 광복이 되자 노동조합은 활성화되는 듯했지만 제1 공화국 초기의 극단적인 좌우대립, 6.25동란 등을 경과하는 사이에 노동운동은 탄압을 받게 되고 노동조합도 침체상태에 빠지게 된다. 그 뒤 5.16 이후에도 근대화의 미명 아래 노동조합의 활동은 극히 제한되었지만 한국 사회의 모순을 반영하여 1970년대부터 노동운동은 치열한 국면을 맞게 되고 마침내 극한의 탄압과 저항의 상황으로 접어들게 된다. 노동조합의 진정한 활동을 추구하는 노동운동가는 사회주의자로 낙인찍히거나 이단으로 취급되었다. 이에 따라 노동자는 무권리 상태에 내던져지고,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없게 되고, 궁핍은 가속화한다.

노동은 “하느님께서 자신이 시작한 창조사업을 완성할 수단과 방법으로서 인간에게 부여한 것”이다. 그러므로 “생산과정을 통해 사회는 완전한 공동체를 이뤄야 한다.”고 교황 바오로 6세는 <민족들의 발전촉진에 관한 회칙>에서 밝히고 있다. 한편 교황 요한 23세는 회칙 <어머니와 교사>를 통해 “노동자들이 합법적인 경제적 직업적 이익을 달성하기에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기구를 조직할 권리와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그 조직 내부에서 자치적으로 활동할 권리”가 자연적임을 선언하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도 <현대세계의 사목헌장>(1968)을 통하여 “노동조합을 진실로 대표하며 경제 질서를 올바로 수립할 수 있는 노동조합을 자유로이 조직할 권리와 아무런 보복 없이 조합 활동에 참여할 권리는 기본인권”이라고 선언하였다. (⇒) 노동권

[참고문헌] 조용범 외, 한국노동문제의 구조, 1979 / 한국노동 문제연구원, 한국노동조합운동사, 1979 / 사목헌장, 제2부 제3장 / 바오로 6세, 민족들의 발전촉진에 관한 회칙, 제1부 제3장 / 오경환, 천주교와 노동운동, 사목 48호,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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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사목 [한] 勞動者司牧 [영] Pastoral for the labour

“자본주의의 발달에 따라 막대한 재산이 소수의 손에 집중되고, 대다수 노동자계급은 점차 더욱 심한 빈곤 속에 허덕이게 된다. 임금은 최저생계비도 못 미칠 경우가 허다하며, 노동조건은 강압적이다. 어린이와 여성에 대한 비인도적 노동이 자행되며, 실업의 유령이 노동자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국민 대다수의 궁핍한 생활에 비해 극소수 특권층의 사치와 향락은 도를 넘어서고 있다. 이윤을 증대시키기 위해 비인도적인 착취와 수탈이 강압적으로 시행된다”<어머니와 교사>

요한 23세의 이러한 언급처럼, 인간의 창조적 행위인 노동이 극소수의 억압과 비인도적 대우 속에서 노예의 도구로 타락하여 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비인간적인 노예로 전락한 노동자의 인간적 존엄성을 회복하고, 정의가 관철되는 하느님의 나라를 건설하려는 교회의 활동이 노동자 사목이다. 노동자 사목의 역할은, 인간성이 말살당하고, 인간의 개성과 참다운 본능의 충족이 무시당한 채 희망의 가지가 잘린 노동자들에게 하느님 나라에 대한 복음을 전하여, 노동자들로 하여금 노동의 가치와 인간적인 삶이 무엇인가를 깨우쳐 준다는 데 있다.

노동자들에 대한 관심은 1891년 교황 레오 13세에 의해 발표된 <레룸 노바룸>(Rerum novarum)에서 처음 언급되고 있다. 회칙은 “사회와 경제의 변화에 따라 노동문제가 절실한 사회문제임에 주목, 교회는 이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였다. 이것은 1925년 가톨릭 노동청년회(Jeunesse Ouvriere Chretienne = J.O.C)의 발족으로 구체화 되었다. J.O.C.는 카르딘(Joseph Cardijin)추기경이 남녀 청년 노동자들을 규합하여 세포조직체를 만들면서 시작되었다. 벨기에의 브뤼셀에 총본부를 둔 이 운동은 4개 대륙으로 퍼져 나갔다. 우리나라에서 J.O.C.는 1958년 11월 카르딘 주교의 참석 하에 가톨릭대학 박성종(朴成鍾, 프란치스코) 신부를 지도신부로 하여 발족됐다. 이들 J.O.C.는 공장 노동자를 중심으로 조직되고, 조직된 회원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의식화시키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한편 교황 비오 11세는 회칙 <콰드라제시모 안노>(Quadragesimo Anno)를 발표, <레룸 노바룸>의 정신을 재확인, 부연하였다. 노동자 사목의 주된 관심은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적인 삶의 개선에 있다. 왜냐하면 생존하기 위해 인간이 물질적 가치로 전락하고, 인간에 의한 인간의 지배가 통용되는 한, 하느님 나라의 건설은 요원하다는 논리의 귀결이다. 그러므로 노동자 사목은 노동자들에게 상존하는 빈곤을 해결하고, 그들이 하느님의 구원사업에 동참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노동자들이 받는 불의와 억압의 상태에 동참한다. 그들의 삶 속에서 더불어 같이 살며, 부대낀다. 취업, 임금, 노동조건, 노동환경, 산업재해, 노동자단결 등에 대한 관심을 게을리 하지 않으며 파업 등의 행동에 실제로 나서기도 한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물려받은 정의와 사랑을 전달하고 실천하는 노동자 사목이 정부당국이나 지배계급들로부터 좌경, 또는 용공으로 오인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올바른 노동자 사목이 이뤄지면 지배계급이 지금까지 은폐하기에 급급하던 온갖 부정과 부패가 폭로되기 때문이다.

한국에 있어서 노동자 사목의 성과는 매우 컸다. 1967년 강화도 J.O.C.사건에서 한국 교회는 노동자의 권익옹호에 앞장섰고, 1978년 인천 동일방직 사건에서도 한국 천주교는 가난한 자의 편에 서서 행동하였다. 이밖에도 J.O.C.의 활동은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노동자 사목의 중요성이 이렇게 막중함에도 불구하고 노동자 사목을 전담하는 성직자와 수도자가 적다는 것은 200년을 맞는 한국 교회의 가장 큰 문제점이다.

[참고문헌] 레오 13세, Rerum Novarum, 1891 / 비오 11세, Quadragesimo Anno, 1931 / 사목헌장, 제 2부 제 3장 / 기타 교회의 노동사목에 대한 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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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윤리 [한] 勞動倫理 [영] labor ethics

1. 의미와 특징 : 인간이 목적의식적으로 자연에 작용하여 인간생활에 필요한 사용대상을 얻는 과정을 일반적으로 노동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노동은 어떠한 인간사회에 있어서도 인간생존에 불가결한 조건이며, 자본의 형성을 가능하게 하고, 그 자본에 구체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 즉 생산형태를 갖추게 하는 것이다. 인간의 노동은 그 목적의식성(目的意識性)과 도구를 만들어 사용한다는 점에서 자연적 본능에 의해서만 행동하고 타고난 신체적 기능에만 의존하는 동물과 구별된다. 인간은 자신의 개인적 직접적 욕망을 초월하는 목적을 세울수 있고, 자신의 신체적 제한을 도구 등 생산수단의 사용으로 극복할 수 있기 때문에, 여건이 허락하는 한 목적의식성과 도구의 사용으로 모든 사용대상을 생산할 수 있다는 인간노동의 특성이 생기게 된다.

노동과정은 노동 그 자체가 자연이나 원료 등 노동대상에 직접 작용하거나 또는 도구, 기계 등의 노동수단을 사용하여 생산물을 만들어내는 일련의 합목적적(合目的的) 행위를 말한다. 노동과정은 그 결과인 생산물을 기준으로 볼 때 생산과정이 되고, 노동대상과 노동수단은 생산수단이 되며, 노동 그 자체는 생산적 노동이 된다. 자본제 생산의 발전과 더불어 노동의 숙련은 개인적 기능에서 과학적 기술로 전환되어 오랜 기간의 경험과 재능이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교육훈련과정을 통하여 얻을 수 있는 것으로 바뀌어 간다. 인간은 노동을 통하여 자연을 쓸모있는 것으로 바꾸며, 동시에 이 과정을 거치면서 노동의 주체인 인간의 여러 가지 능력을 변화 발전시킨다. 그러나 자본제 경영 하에서 생산수단의 소유와 노동의 분리가 이루어지고 있을 뿐 아니라, 기업들은 기계제에 의한 생산으로 바뀌었고, 거기에 경영조직의 대규모화가 진행됨에 따라 노동자는 인간 고유의 가치 및 존엄성을 상실하게 되어 무력감과 좌절감을 느끼게 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노동의 인간소외 현상은 다음과 같이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생산수단의 소유와 노동의 분리에 따라 노동자가 사용하는 생산수단과 노동의 성과인 생산물은 이미 노동자 자신의 것이 아니고 노동자 자신의 ‘인격적 표현’도 아니라는 데서 오는 노동의 소유소외(所有疎外). 둘째,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결정한 작업의 목표와 작업방법에 노동자는 임금만을 받고 타율적으로 따라야 하므로 노동의 자율성이 상실된 데서 오는 소외. 셋째, 컨베이어 시스템 등 대량생산 체제의 발달로 노동자의 작업은 세분화되고 단순화하며 작업의 진도(進度) 역시 기계에 의해 타율적으로 정해지므로 노동자는 기계에 예속되어 여기서 생기는 소외. 넷째, 경영조직의 대규모화는 사용자와 노동자 사이에 인격적 관계를 불가능하게 할 뿐 아니라 자기가 담당한 부분의 일과 전체와의 유기적 관계를 모르게 되어 조직으로부터 소외감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소외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종업원의 경영 참가, 직무 확대, 자주관리(自主管理) 작업집단 등의 방법이 시도되고 있다.

윤리란 사회적 역할 간의 관계에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원칙의 체계적 틀을 뜻한다. 따라서 인간의 노동을 둘러싼 사회적 관계 속에서 그 올바른 양식과 당위성을 다루는 사회윤리의 한 부분이 노동윤리임을 알 수 있겠다. 또한 생산은 자연과 노동이라는 두 요소에 의해 이루어지므로 생산과정을 통해 인간은 경제와 직결된다. 생산과정에서 무엇을 어떻게 누구를 위해 생산할 것인가의 문제는 경제의 다른 구성부분인 분배 및 소비기능에 의해 결정되므로 결국 노동은 경제의 핵심요소가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경제윤리의 주요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노동윤리이다. 신학적 노동윤리의 특징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 올바르게 노동의 의미를 받아들이고 노동에 참여하는데 있으므로 노동윤리의 과제는 어떻게 노동에 대한 하느님의 뜻을 인간이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가, 그리고 노동을 함에 있어 어떤 조건이 하느님의 뜻을 충실하게 따르는 것인가로 요약된다.

2. 가톨릭 입장 : 성서에 나타나 있는 노동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목자나 농부와 같이 독립적으로 자영(自營)에 종사하는 노동으로서 직업의 의미, 둘째, 기능공, 장인 등의 노동으로서 기술의 의미, 셋째, 품삯을 받고 일하는 고용된 노동으로서 임금노동의 의미, 넷째, 원주민 노예 또는 외국인 노예들의 노동으로서 노예노동의 의미로 분류될 수 있다. 창조과정에서 하느님께서는 일하셨고, 계속 일하고 계신다. 요셉 성인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목수의 일을 하셨고, 모든 사도들도 예수의 제자가 되기 전에는 노동자였으며, 특히 사도 바울로는 그리스도인들은 당연히 일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노동은 육체적 정신적 수고를 의미하며 땀 흘려 노력하는 수고는 존중되어 부인이나 기술자의 힘든 일은 칭찬받았다. 1주일 중 엿새 동안 일을 하는 것은 하루 동안 휴식하라는 계명만큼 중요한 의미를 가지며 게으름이야말로 저주를 받을 것이고, 노동은 언제나 축복받아 하느님은 정직한 노동자에게 상을 베푸신다. 노동자들은 법에 의해 보호를 받고 주인은 노동자가 노예이건 자유인이건 자비로서 대해야 하며, 일하는 자는 정당한 품삯을 받는 것이 당연하였다. 성별에 따라 노동의 면제는 일을 수 없고 남녀가 똑같이 일하였다. 이와 같은 내용이 구약성서에 기록된 내용들이다.

초대 교부들과 중세 신학자들이 선언한 바 있고, 급속한 기술 발전에 의해 새로이 확대된 원리에 다르면, 우선적으로 인정되어야 할 사실은 절대적 주체인 인간과 상대적 객체인 자연의 정적인 병존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의 동적인 관계이다. 넓게는 인간도 자연 안에 속해 있는 하나의 피조물이므로 비록 인간이 자연을 지배한다 하더라도 인간의 본성과 완전성이자연과 분리되어 독립 설정될 수는 없다. 그러나 인간이 자연과 만날 때 노동은 정당한 행위이며, 노동은 인간의 본질적 조건이며, 동시에 인간존재의 체현이다. 인간은 자신의 의지를 노동을 통해 자연에 투영시키며 그렇게 함으로써 자연을 지배하게 되므로 노동에 의해서만 인간의 존재는 규정된다.

노동은 ‘인격의 표현’이다. 인간은 사고능력뿐만 아니라 행위에 있어서도 자연과 구별된다. 비록 인간이 자연법칙의 지배를 받지만 그 자연법칙을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은 자율적이며 자유롭다. 인간의 완전성은 자유와 자율성에 바탕을 둔 행동을 통하여 자연에 의해 규정된 테두리를 초월한 존재가 되는데서 이루어진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인간은 자연 속에 매몰되어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각인이 새겨진 새로운 세계를 자연 안에서 만들어 낸다. 즉 자유의지(自由意志)에 바탕을 둔 창조과정에서 인간은 자신을 완성시키며 노동의 문명은 바로 이러한 인간 본성에서 비롯된다. 이처럼 노동은 단순한 기술 도구의 차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 본성의 표현이며 인간 가치의 구현이다. 노동은 노동하는 사람을 완전하게 하며 동시에 사물들을 변화시킨다. 따라서 노동의 결과로 이루어지는 객관적 세계는 노동의 완전성을 투영한다. 현대 기술 사회에서는 노동의 결과인 객체가 점점 더 강하고 명백하게 부각되고 있다. 노동수단으로서 완벽한 기계가 수공구(手工具)를 대체함으로써 노동자의 개인적 의도나 행위, 계획으로부터 벗어나 점점 더 독자적 생산형태를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기술과 자연의 관계를 분명히 인식함으로써 자연을 이성의 지배 아래 복종하게 만드는 기술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확립해야 한다. 노동은 수고로써 그치는 것이 아니라 관습이기도 하다. 이 사실은 노동이 단순히 생존을 위해 인간에게 주어진 것만이 아니라 인간존재의 성숙된 발전을 위해서도 부과된 것임을 뜻한다. 인간은 하느님의 뜻에 따른 세상 건설의 임무를 노동을 통하여 이룩함으로써 하느님의 창조사업에 참여한다. 하느님은 인간이 몸담고 있는 이 세상을 완성된 형태로 창조하시지 않았다. 하느님은 이 세상의 발전과정에 있어 함께 일할 협조자로서 인간을 부르셨으므로 인간은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형상이요 재능 있는 노동인이며 하느님의 대리자이다. 인간이 창조주와 협동함으로써 자연의 지배자와 건설자가 된다는 사실 때문에 인간이 하느님의 모습인 것이다. 인간이 자연에 대한 자신의 지배권을 정확하게 인식하면 할수록 인간은 자신이 원인이며 동기라는 사실을 더 명확하게 깨닫게 된다.

노동의 문명은 세속적인 문명이다. 그러나 이 문명을 하느님의 뜻에 맞도록 만드는 것도 바로 노동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자유의지는 인간을 하느님의 모습대로 만들기 때문이다. 인간은 행동의 자율성과 자유를 통하여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를 확인하게 되고, 두렵고 불확실한 자연에 대해 가지게 되는 무력감과 신비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 신앙적으로 미숙한 단계를 포용할 수 있고 세속성에 대한 의심을 버릴 수 있을 때 참된 의미에서 하느님의 협조자가 될 수 있다. 산업사회는 교회의 선교형태를 바꾸도록 요구하고 있으며, 세계의 봉헌이라는 의미도 이에 따라 적절하게 바뀌어져야 한다.

자연의 운행에 대한 기술적 지배과정에서 인간 본성의 또 다른 측면이 나타난다. 세상의 변형을 가져오는 노동은 기술적 구체적 형태인 기계와 결합하여 새로운 체제를 이룩하였다. 이 새로운 체제는 재화의 생산과 분배과정에서 처음에는 조잡하고 물질적 수준에서 시작하였지만, 갈수록 심화하는 복잡한 관계 속에서 점차 인간화되어 왔다. 인간은 본성에서부터 사회성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인간은 교환과 계약을 통해서도 사회화(社會化)되어 왔지만 사회조직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더욱 사회화를 촉진시켜 왔다. 그 결과 사회조직의 차원에서 사회정의 및 공동체 윤리를 둘러싸고 많은 문제들이 발생한다. 이와 더불어 인간사회의 규모는 갈수록 확대되어 이웃의 개념도 넓어지고 있다. 처음에는 사회관습에 따라 노동자의 이웃은 동료기능인 정도로 국한되던 것이 오늘날에 와서는 과학기술과 통신수단의 급속한 발달로 말미암아 과학언어와 기술문명의 표준화를 초래하였고, 이에 따라 노동자의 이웃도 전 세계를 포괄할 만큼 확장되고 있다. 따라서 교회의 가르침도 세계 공동체를 대상으로 마련되어야 한다. 개인간의 주고받는 사랑, 가까운 이웃에게만 향해진 사랑의 한계를 넘어서 전체 인류를 감지하고 포용하는 사랑의 차원으로 승화되어야 한다. 이때에 비로소 사회조직의 익명성, 인간사회의 비인간화, 기술사회의 경직성은 극복될 수 있다.

1927년의 <가톨릭대학 연맹에 보내는 교서>에서 교황 비오 11세는 사랑은 정치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고 분명히 말한 바 있다. 즉 사랑은 공동선의 증진을 통해 구체적으로 이웃에게 도달되어야 하며, 특히 노동의 결과로 이룩된 현대 사회의 한 부문인 정치 분야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이처럼 인간노동의 사회화를 통하여 인류 공동체는 스스로의 역사를 엮어 간다. 이 역사 안에서 기술의 진보는 공동체 의식을 강력하게 요구하지만, 진정한 발전의 필수적 요소는 어디까지나 그러한 상황을 인정하고 그를 바탕으로 하는 인간의 자유의지이다. 그리스도의 모범은 인간이 하느님의 뜻을 따라 이 세상을 건설하고, 사회화를 통해 자신의 완전한 계발을 이룩함에 있어 훌륭하고도 가장 확실한 길잡이이다. 즉 노동윤리의 진정한 의미와 열쇠를 제공하는 것은 바로 예수그리스도 친히 사람이 되시어 우리에게 보여주신 찬미, 봉헌, 자유의 의미이다. 찬미, 봉헌, 자유는 천주의 어린 양으로서 그리스도께서 이룩하신 십자가 의미의 세 가지 중요한 교훈이다. 이 그리스도론적 계속성은 노동으로 하여금 자연법칙에 따른 세속사업에의 참여를 인정한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기술적 경제적 사회적 문제들의 자율성을 인정해야 한다. 구세주에 대한 믿음은 종말론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속생활과의 단절을 주장하지는 않고 있음이 성서의 내용을 통해 분명하게 밝혀져 있다. 인간 공동체가 정의와 사랑에 의해 지배되는 정도에 따라 복음의 목적과 효력은 측정된다.

이처럼 가톨릭 교회의 인간관과 사회관에 바탕을 둔 노동윤리의 핵심은 노동이 결코 인간이 저지른 죄에 대한 형벌로서 보속적인 의미의 고통만은 아니며 오히려 하느님의 안배하심 속에서 인간이 하느님의 조력자로서 창조사업에 참여하는 길이기도 하다. 창세기 1장에 기록된 것처럼 하느님은 자신의 일을 만들어 냄으로써 스스로 노동하시며, 신약성서에 기록된 것처럼 성자 예수 그리스도는 요셉 성인과 함께 목수로서 노동하신다. 인간노동의 영성은 매우 확고하며 분명한 바탕 위에 확립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모든 인간사회의 제도나 조직의 원인과 목적은 인간이다. 따라서 인간사회가 부여된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때는 가톨릭 사회윤리에 입각하여 바로 잡아져야 한다. 교황 레오 13세는 회칙 <노동헌장>(1891)에서 구체적으로 시정방안을 제시하였다. 노동의 존엄성, 노동자의 권리, 적절한 작업시간, 적정임금, 부녀 및 연소노동의 보호를 역설하고 이에 대한 실천적 방안으로 노동조합의 결성과 활동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구미(歐美) 각국은 가톨릭 교회의 이러한 훌륭한 가르침과 강력한 권고를 길잡이로 하여 노동법의 제정과 함께 각종 노동보호정책을 채택 시행하고 있다. 노동윤리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이러한 전통은 현 교황 요한 바오로2세의 회칙 <노동하는 인간>(1981)에서 더욱 밀도 짙게 압축되고 있다. (金漁相)

[참고문헌] Pope Leo XIII, Rerum Novarum, 1891 / Pope Pius XI, Quadragesimo Anno, 1927 / I. Haessle, Das Arbeitsethosder Kirche nach Thomas von Aquin und Leo XIII, 1923 / M. Scheler, Arbeit und Ethik, 1924 / Pope Johannes Paulus, Laborem Exercens,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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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 [한] 勞動運動 [영] labor movement

1. 뜻과 목적 : 노동운동이란 근대적 임금노동자 계층이 자신의 생활조건을 유지 개선하기 위해 전개하는 조직적인 운동을 의미한다. 자본주의사회에는 크게 두 계층의 사람으로 나누어지는데, 그 한 계층은 생산수단을 소유하는 사람들로서 자본가 계층이라 불리며, 다른 한 계층은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않은 사람들로서 노동자 계층이라 불린다. 물론 이 두 계층중간에 위치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지만 이 두 계층만이 여러 가지 측면에서 뚜렷하게 대립하고 있다. 자본가는 소유자본을 바탕으로 기계와 원료를 구입하고 노동자를 고용하여 상품을 생산한다. 자본주의의 발달로 생산조직은 확대되고 전문경영자가 필요하게 되어 자본가와는 별도의 기능을 담당하는 경영자가 출현하게 된다. 노동자를 직접 통솔하는 역할은 경영자가 담당하지만, 생산에 실권을 갖는 것은 역시 자본가이다. 따라서 자본가와 경영자를 통칭하여 사용자라고 부른다. 법률상 노동자와 사용자는 대등한 지위에서 임금, 작업시간, 그 밖의 고용조건을 계약하도록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언제나 계약체결에 있어 노동자가 약자의 입장에 서게 된다. 이같이 불리한 입장을 극복하기 위하여 노동자는 단결하여 사용자에게 대처한다. 결국 노동운동은 노동자의 일상적 요구, 즉 임금 등의 근로조건 유지 개선을 기본목표로 하는 동시에 자본의 강력한 지배에서 벗어나 사회의 떳떳한 구성원이 되려는 노동자의 조직적인 운동이다. 노동운동은 추구하는 목적에 따라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될 수 있다. 첫째는 생산자로서 임금노동자들이 자신의 노동조건을 유지 개선하기 위해 전개하는 노동조합운동, 둘째는 시민으로서 노동자들이 자신의 정당(政黨)을 만들어 전개하는 정치운동, 셋째는 소비자로서 노동자가 보다 유리한 조건을 확보하기 위해 전개하는 각종 협동조합운동이다.

서구의 경우 노동운동은 일반적으로 노동자가 관련을 갖고 있는 모든 조직단체들의 총체적인 운동으로 인식하고 있으므로, 노동운동은 노동조합, 노동자의 정당, 노동자 주축의 각종 협동조합, 그리고 각종 노동문화단체 및 노동연구기관의 활동을 모두 포함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노동운동이라고 인식되는 범주는 ‘정치활동 금지조항’, ‘제3자 개입금지조항’ 등의 법률적 제한을 고려할 때 조직노동자의 운동 즉 노동조합의 운동만으로 국한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 전개과정 : 근대적 의미의 노동운동이 처음 나타난 곳은 산업혁명을 맨 먼저 이룩한 영국이었다. 영국 노동운동의 선구자는 17세기 후반 상호부조와 친목의 도모를 목적으로 한 ‘우애조합’(friendly society)이었는데 중세부터의 직인층(職人層)이 바탕을 이루었고, 이후의 영국 노동조합운동에 공제기능(共濟機能)이라는 전통을 물려주게 된다. 18세기후반 산업혁명이 진행되어 감에 따라 수공업 직인(職人)이 임금노동자로 바뀌게 되고, 신식 기계와 공장제 공업이 자리를 잡게 되자 이에 반감을 품은 노동자계층이 공장기계 파괴운동을 벌이기도 하였다. 흔히 이 같은 과격한 기계파괴운동을 ‘러다이트운동’(Luddite movement)라고 부른다. 영국정부는 1799년 ‘단결금지법’을 제정하여 노동운동을 탄압하기도 하였으나 1822년 이 법은 폐지되었다. 이에 따라 노동운동도 급격하게 발전하여 1834년에는 50만명 이상의 조합원을 포함한 ‘전국 노동조합 연맹’이 결성되기도 하였다. 한편 1832년 제정된 신 선거법에 불만을 품은 노동자들이 선거권 확대를 요구하는 대규모의 정치운동을 전개하였는데 이를 ‘차티즘(chartism)운동’이라고 부른다. 1844년 로치데일의 노동자 28명이 시작한 ‘로치데일 개척자 조합’(Rochedale Society of Equitable Pioneers)은 근대적 소비협동조합 운동의 기원을 이루는 동시에 소비협동조합 운동을 노동조합의 중요한 한 기능이 되도록 하였다.

자본주의의 기초가 점차 안정되어 감에 따라 새로운 노동조합 운동이 자리 잡게 되었는데, 1851년 ‘합동기계 노동조합’을 시발로 광산, 섬유, 건축 산업의 노동자를 중심으로 ‘직종별 노동조합’(craft union)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 형태의 노동조합은 정치적으로는 자본주의체제를 인정하면서 숙련직공이 단결하여 자신의 권익을 보호 유지하려는 운동으로서 오늘날의 노동조합 운동의 출발점이 되었다. 이와 함께 18세기 후반부터 자본주의의 모순을 비판하면서 사회주의 노동운동도 모습을 나타내어 서구 여러 나라의 사회주의자들과 노동자들이 국제적 모임을 가지게 되었다. 1847년에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공상적 사회주의와 사회주의 노동운동을 결합하여 공산주의 동맹을 결성하고, 그 다음 해에는 공산당선언을 발표했으나, 1851년 이 조직은 해산되었다. 그 뒤 1864년 런던에서의 제1차 인터내셔널, 1889년 파리에서의 제2차 인터내셔널을 조직, 계속 사회주의자와 노동자의 국제적 단결 강화에 노력하였으나 내부 분열과 1차 세계대전으로 붕괴하였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1945년 파리에서 ‘세계 노동조합 연맹’(World Federation of Trade Unions)이 결정되었으나 동서간의 이념적 대립으로 서방 자유세계 노동조합이 탈퇴하여 1949년 런던에서 ‘국제 자유노동조합 연맹’(International Confederation of Free Trade Unions)을 조직, 현재는 좌익의 W.F.T.U.와 자유진영의 I.C.F.T.U.가 국제 노동조직으로 활동하고 있다. 특히 1920년 유럽 가톨릭계 노동조합은 ‘국제 기독교 노동조합 연맹’(International Federation of Christian Trade Unions)을 결성하고, 1968년에는 지역적 종교적 확장을 위하여 ‘세계 노동자 연맹’(World Confederation of Labour)으로 명칭을 바꾸면서 세계적 범종교적 국제 노동조직으로 발전하였다.

유럽 여러 나라에서는 노동자를 주축으로 한 사회 노동당이 단독 집권하거나 연립정부에 참가하면서 노동운동이 정치적으로도 무시할 수 없는 사회세력으로 성장하였다. 결국 노동운동은 자연발생적 운동에서 조직적 계획적 사회운동으로 발전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노동운동은 19세기 말 임금노동자가 출현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외래자본 특히 일본의 자본이 우리나라에 진출하면서 임금노동자의 수가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함으로써 초창기 노동운동은 민족해방운동의 일환으로 전개되었다. 3.1운동이 실패한 뒤 대중적 조직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인사들에 의해 1920년 ‘조선 노동공제회’가 결성되고 이후 1923년 ‘조선 노농동맹(勞農同盟)’과 1926년 ‘조선 노동총동맹’ 등으로 우리나라 노동운동의 명맥은 이어져 왔다. 1945년 광복을 맞아 그해 12월 ‘조선 노동조합 전국평의회(전평)’가 발족하였으나 ‘전평’이 남로당(南勞黨)의 전위대로서 사회혼란만을 야기시키므로 이에 대항하기 위해 1946년 3월 ‘대한 노동조합 총연맹’이 탄생하였고, 1954년 4월 그 명칭을 ‘대한 노동조합 총연합회’로 고쳤다. 제1 공화국 때는 ‘대한노총’이 자유당(自由黨) 정권의 전위대 역할을 하다가 5.16군사 쿠데타로 해산되어 일시 그 활동이 중단되었다. 1961년 8월 ‘한국 노동조합 총연맹’(韓國勞總)은 활동을 재개하면서 산별노조(産別勞組)체제를 갖추고 정치적 중립을 표방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일반적으로 한 사회의 주어진 여건 속에서 정부 · 사용자 · 노동자의 세 주역에 의해 구체적으로 다듬어지는 것이 노동운동의 성격이다. 따라서 우리 사회의 경우 이 삼자가 걸어온 역사적 체험과 기능상의 특수성은 우리나라 노동운동으로 하여금 자본주의 발전에 따라 자연발생적으로 전개된 다른 나라 노동운동의 궤적과는 다른 특수한 형태의 성격을 지니게 하였다.

3. 노동조합 : 노동운동을 넓은 뜻으로 해석하고 있는 서구의 경우에도 노동운동의 기반은 역시 노동조합이다. 따라서 노동운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노동조합의 기능, 역사, 그리고 형태를 살펴보아야 한다. 우선 노동조합을 포함한 일반 노동단체를 살펴본 뒤 논의의 범위를 노동조합만으로 국한시켜 다루어 본다.

노동단체란 노동자들이 경제적 정치적 기능을 수행하기 위하여 자발적으로 조직하는 각종 단체를 말한다. 노동단체에는 상호부조 기능을 담당하는 노동자 공제조합, 노동자의 소비생활, 주택문제 및 금융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하려는 각종 노동조합, 노동자가 주축이 된 각종 문화교육 단체가 있다. 진보적 의식을 가진 노동자들에 의해 주도되는 정당 역시 노동단체로 볼 수 있는데, 그 주된 역할은 정치활동을 통하여 노동운동의 통합적 기능을 수행하는 데 있다. 이러한 노동단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노동조합이다. 노동자가 자주적으로 단결하여 자신의 경제적 사회적 지위 향상을 도모하기 위한 항구적 조직을 노동조합이라고 한다. 근대적 임금노동자가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활동하는 이유는 자본주의 경제의 생산양식이 가져오는 노동자의 불리한 입장을 극복하기 위해서이다. 노동조합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활용하는 수단은 단체교섭(團體交涉)이다. 단체교섭은 노동자의 근로조건을 유지 개선하기 위해 단결력을 배경으로 단체협약을 체결하는 과정을 말하며, 이 기능이야말로 노동조합의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기능이다.

1851년 영국에서 결성된 ‘합동기계 노동조합’은 역사적으로 ‘직종별 노동조합’의 기원이 되었다. 직종별 형태의 노동조합은 동일직종의 숙련공들로 구성되어 일반적으로 조직 규모는 작지만 강력한 연대의식이 바탕이 되어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독점단계에 들어서면서 산업의 고도화 복잡성으로 한 기업 안에도 여러 개의 직종별 노동조합이 조직되어 통일된 힘의 약화를 가져왔고, 최신 생산설비와 생산과정의 합리화로 미숙련 반숙련 노동자의 고용이 확대되어 직종별 형태의 조합은 그 중요성이 점차 감소되었다. 그 결과 새로운 형태의 조직이 출현하였는데, 이를 ‘산업별(産業別) 노동조합’ (industrial union)이라고 한다. 산업별 형태의 노동조합은 동종 산업에 종사하는 모든 노동자를 직종이나 숙련도에 관계없이 단일조합으로 조직함으로써 보다 강력한 교섭력을 갖게 된다.

우리나라의 노동조합은 5.16전까지는 기업별 또는 직장별 조직의 형태를 가지고 있었으나 그 뒤 재조직되면서 산업별 형태로 바뀌어져 17개의 산업별 전국조직이 ‘한국노총’을 구성하였고, 1980년 12월 31일 ‘항만노조’와 운수노조가 통합, ‘전국 항운 노동조합’으로 개편됨으로써 현재 ‘한국노총’은 16개의 전국 산별조직으로 구성되어 있다.

4. 노동법 : 노동자가 오랜 기간의 노동운동을 통하여 확보한 것의 하나가 노동보호법이다. 따라서 노동법의 내용과 종류를 검토하는 것은 노동운동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자본주의 경제 질서에 있어 노동자의 근로관계를 규율함으로써 노동자의 생존과 권익을 보장하는 법규를 노동법이라고 한다. 노동법은 근대 시민법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사유재산권의 원칙과 계약자유의 원칙에 대한 반성으로서, 그리고 노동자의 실질적 평등과 자유를 보장함으로써 자본주의의 모순을 수정하기 위하여 생겨난 것이라 볼 수 있다. 노동법은 부인이나 연소노동자 등 특수한 노동계층을 보호하기 위해서 출발하였으나 현재는 모든 노동자를 보호하는 입법으로 발전하였다. 구미 각국의 노동법 제정과 그 내용에 결정적 영향을 준 것은 레오 13세 교황의 회칙 <노동헌장>과 그 이후 역대 교황의 사회회칙(社會回勅)이었다.

우리나라의 노동법은 그 적용대상에 따라 개별보호법과 집단보호법으로 나누어진다. 노동자들의 근로조건과 기타 생활조건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시키기 위하여 최저 기준을 정하고 공권력으로 그 시행을 강제하는 ‘근로기준법’, ‘산업안전보건법’, ‘직업훈련법’과 노동자의 업무상 재해에 대한 공정하고 신속한 보상을 위해 제정된 ‘산업재해보상보험법’등이 개별보호법에 속한다. 한편 노동자의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보장하는 ‘노동조합법’, 노동쟁의를 중심으로 하는 노사분규를 공정하게 조정하기 위한 ‘노동쟁의조정법’, 노동행정의 민주화와 노사관계의 원만한 조절을 목적으로 구성된 노동위원회의 준 사법적 기능과 조정적 기능 그리고 그 설치에 대한 근거로서 ‘노동위원회법’, 노사간의 이해와 협조를 통하여 노사 공동의 이익을 증진하고 생산성을 높이며 산업사회의 평화를 목적으로 하는 ‘노사협의회법’ 등이 집단보호법에 속한다. (金漁相)

[참고문헌] Pope Leo XIII, Rerum Novarum, Vatican 1891 / Pope Pius XI, Quadragesimo Anno, Vatican 1937 / W.Z. Foster, American Trade Unionism, 1947 / G.D.H. Cole, A Short History of the British Working Class Movement 1789~1947, 1952 / G. Lefranc, Le Syndicalisme en France, 1953 / R. Boyer & H.M. Morais, Labor’s Untold History, 1955 / J. Bruhat et M. Piolot, Esquisse d’une histoire de la C. G. T.,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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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법 [한] 勞動法 [영] labor law [독] Arbeitsrecht [프] code du travail

노동자의 상대적 빈곤의 심화, 저임금, 장시간 노동, 작업장에서 끊임없이 노동자의 생명을 노리는 산업재해, 노동자에 대한 부당한 인권침해 행위 등 근대자본주의 발달과 함께 드러난 병리현상으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고, 노동자의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적인 지위를 보장함과 동시에 노사간의 갈등과 충돌을 해소하기 위하여 제정된 노동관계법들을 총칭하여 노동법이라고 부른다. 우리나라 노동법은 1953년 3월 8일에 제정된 노동조합법(5차 개정), 노동위원회법(5차 개정)에서 출발하여 같은 해 5월 10일 근로기준법(4차 개정), 1963년 4월 17일 노동쟁의조정법(6차 개정), 같은 해 11월 31일 산업재해보험법(7차 개정), 1967년 3월 30일 직업안정법(3차 개정), 1970년 1월 1일 외국인 투자기업의 노동조합 및 노동쟁의 조정에 관한 임시특례법(1차 개정), 1980년 12월 31일 노사협의회법(1차 개정) 등으로 제정되었다.

① 근로기준법은 근로자의 기본적인 생활을 보장 · 향상시키기 위해 전근대적 노동을 배제 – 균등처우 보장(제5조), 강제노동의 금지(제6조), 폭행금지(제7조), 중간착취의 배제(제8조), 전차금 상쇄의 금지(제25조), 강제저금의 금지(제27조), 도급에 의한 피해 배제 – 하고, 노동조건의 최저기준 – 최저임금(제34, 35조)을 규정하고 임금(제3장), 노동 8시간 원칙과 휴식(제4장), 여자와 소년의 보호(제5장), 안전과 보건(제6장), 기능자양성(제7장), 재해보상(제8장), 취업규칙(제9장), 기숙사(제10장) 등에 대해 명시하고 있다. ② 노동조합법은 근로자의 자주적인 단결권,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을 보장하여 근로자의 근로조건을 개선하고 복지를 증진함으로써 경제 · 사회적인 지위향상을 위하여 사용자가 차별대우(제39조 1항), 황견계약(2항), 단체교섭의 거부(3항), 노동조합에 대한 지배, 개입, 원조(4항), 쟁의 · 소송에 대한 보복행위 (5항) 등의 부당 노동행위를 금지하고, 단체협약(제3장)의 교섭권한(제33조), 유효기간(제35조), 효력(제36조), 일반적 구속력(제37조)과 지역적 구속력(제38조) 등을 규정하고 있다. ③ 노동관계에 관한 법으로 노동쟁의조정법, 노동위원회법, 노사협의회법, 외국인 투자기업의 노동조합 및 노동쟁의 조정에 관한 임시특례법 등을 제정하였다. ④ 산업재해를 방지하고 정당한 댓가를 보장하기 위해 산업재해보험법, 산업안전보건법, 재해구조법 등이 있다. ⑤ 실업과 실직으로부터 노동자 생활의 안정을 보장하기 위한 법으로는 직업안정법, 직업훈련기본법, 직업훈련촉진기본법, 생활보호법 등을 제정하였다. ⑥ 사회보장과 복지를 위해 사회보장에 관한 법률, 사회복지사업법, 노인복지법, 심신장애자보호법, 아동복지법, 국민복지연금법, 의료보험법, 의료보호법, 윤락행위방지법 등을 제정하고 있다.

가톨릭 교회는 1891년 레오 13세가 <노동헌장>(Rerum novarum)을 발표한 이후 오늘까지 계속해서 노동자의 인권수호를 위하여 발언하고 있다. 따라서 노동자의 권익을 옹호하기 위한 법률의 제정은 참으로 바람직한 일이라고 본다. 그러나 오늘날 각국에서 시행하고 있는 노동법의 내용은 최소한도의 규정에 머무르고 있다. 따라서 노동자의 인격적 권리나 노동자의 기업경영에 대한 참여 등은 소홀하게 되고 있다. 한국에 있어서도 노동법의 불비로 노동자들의 참다운 권익이 무시되고 있어서 가톨릭 교회는 노동자의 권익옹호를 위해서 많은 발언을 계속하고 있다.

[참고문헌] 레오 13세, 노동헌장, 1891 / 사목헌장, 제2부 제3장 / 바오로 6세, 민족들의 발전촉진에 관한 회칙, 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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