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구의 사목활동을 더욱 원활히 하기 위하여 교황으로부터 임명된 명의주교. 교구장 후계권을 갖고 있지 않는 보좌주교(auxiliarius)와 교구장 후계권을 갖고 있는 보좌주교(coadjutor)로 구별된다. 명의주교로서의 보좌주교는 관할구역 내에 있어서 서품식을 제외하고 주교품급에 의거한 사항을 집행할 수 있고, 기타 사항에 대해서는 성청 또는 주교로부터 위임받은 권한만을 갖는다.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교회에서는 보좌주교가 임명되어 있는 교구의 경우 보좌주교가 총대리직에 임명되기를 권고하고 있다. 보좌주교가 현재 한국 내에는 서울 대교구와 대구 대교구에 각각 1명씩 임명되어 있다.
보좌신부 [한] 補佐神父 [라] vicarius parochialis [영] curate
보통 C.C.로 줄여서 쓰고, 인간의 영혼을 돌보아 주는 자, 특히 본당사제를 일컫는 말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보통 본당의 주임신부를 보좌하는 사제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즉 본당신부의 임무수행을 돕도록 임명된 자, 한 본당의 주임사제가 공석 중에 있을 때 임시로 책임을 맡은 자, 본당신부가 부득이한 사유로 임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 임시로 그 직을 맡은 자를 가리킨다. 이러한 보좌신부들은 본당신부나 주교에게서 임명을 받고, 본당신부의 임명을 받은 경우 주교의 인가를 받아 그 직을 수행한다. 교회법에 정한 절차에 따라 고지(告知) 후 주교에 의해 임명이 철회될 수도 있다. 어원은 라틴어의 ‘cura’(돌보다, 배려하다)와 ‘curator’(감독)이다.
보족성의 원리 [한] 補足性∼原理 [독] Prinzip des Erganzung [관련] 보조성의 원리
모자라는 것을 보태어서 넉넉하게 하는 것을 ‘보족성’이라고 하는데, 이 보족성은 자연계를 지배하며 갖가지의 자연현상을 일관하고 있는 법칙성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이를 가리켜 보족성의 원리라고 말한다. 당위(Sollen)를 표현하는 규범 법칙에 대응하여 쓰여지는 자연법칙(自然法則, natural law)은 사실 사이의 일반적인 필연적 관계를 표현하는 것으로서, 인과율 같은 것이 이에 해당된다. 자연법칙을 대표하는 것은, 자연과학적 법칙이며, 모든 현상은 자연 필연적으로 이런 법칙에 의하여 결정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므로, 자유로운 한정 따위는 여기에 개입할 여지가 언다. 이 경우의 ‘자연’이란 자연과학의 대상으로서의 그것이며, 목적론적 즉 생물학적으로 이해된 자연이 아니라, 기계론적 즉 물리학적으로 보는 자연이다. 이리하여 처음부터 물질적 자연으로서 보는 자연계의 법칙관계를 문제삼게 마련이다. 이러한 자연법칙은 어디까지나 절대성(절대적인 참)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고, 유사성의 것이다.
자연법칙은 경험적인 사실을 나타내는 것이지만, 이것은 실험을 통한 낱낱의 경험적인 사실로부터의 귀납 또는 일반화에 의하여 얻어진 관계를 지칭한다. 이 때, 우리의 실험이나 환경 조건에 있어서의 유사성(이는 원리적으로 피할 수 없는 것)에서 자연법칙의 유사성이 나온다. 즉 법칙이란 원리적으로 유사성을 뛰어넘을 수는 없다. 그렇지만 법칙은 어떤 유사성의 한계 안에서는 진리성과 타당성을 갖는다. 다만 절대적인 참이 아니기 때문에, 그 한도를 넘어서 적용할 경우 오류를 범한다.
이러한 원리를 보족성(Erganzung)에서 찾아볼 때 이미 인간에게는 남녀 양성(兩性)의 구별과 함께 상호 보족성이 부여되어 있음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모든 사회화(社會化)는 근본에 있어 인간의 근원적인 사회적 소질에 바탕을 두는 것이다. 즉 인간은 인격의 독립적인 존재, 독자성, 독자적인 가치 등과는 관계가 없이 동료 사람들과의 공동사회 속에서 생활해 나가야 하며, 그 생명적인 과제를 다해야 할 처지에 놓여져 있다. 아퀴나스와 그 학파는, 이것을 아리스토텔레스와 결부시켜서, 아동 또는 청소년에게 신체적 정신적인 부조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발견하였다. 즉 인간성은 동물과는 다르다. 인간의 여러 가지 신체적 또는 심리적인 힘은 개인의 입장에서 발전하는 법이 없고, 종(種)의 입장에서 비로소 발전한다. 즉 수많은 사람 및 인간 세대의 협동에 힘입어서 마침내 문화와 아울러 그 진보 발달이 가능하게 된다. 이러한 경험 가운데서 상호 보족적인 개인적 능력, 힘, 욕구 등의 노동 또는 생활 공동사회를 지시하는 차이 속에, 이를테면 인간에게만 고유한 언어적인 능력 속에 찾아냈던 것이다. 이상의 증명은 그 뒤에 전개되어 온 짐멜(G. Simmel), 스판(O. Spann), 리트(Litt) 등의 통찰을 통한 지지와 보족이 있었다.
모든 사회화, 모든 사회적인 구성체, 특히 혼인, 가족, 국가의 이와 같은 자연적인 사회라 할지라도, 즉 그 근원과 본질이 자연적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수립하고 그것을 꾸며 이룩함에 있어서는 자유로운 의지적 산물이며, 상호 보족성의 원리 아래서 차차 정신화와 도덕화의 길에 견디어 낼 수 있었다는 점을 깊이 주의하지 않고 넘어가서는 안 된다. 더구나 아퀴나스가 말하는 ‘군거’(群居) 동물에 대응하여 사회는 이성적인 인간의 사이에서만 가능하다는 것, 인간 사회의 직접적이며 가장 가까운 기원이 인간성 가운데, 즉 보족성과 함께 부여되었다는 입장은, 어느 의미에선(감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것 이외에는 전혀 현실성을 인정하지 않는) 모든 세계관 및 사회관에 있어서는 최후의 것이다.
교황 바오로 6세의 <민족들의 발전 촉진에 관한 회칙>(1967. 3. 26)에 의하면, “남이 가져오는 것이 형제적 사랑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면, 받는 민족들이 그것을 배격하리라는 것도 의심 없는 사실이다”고 언급하며, 세계문제에 있어 ‘인간 형제애’를 강조하였다. 국제공동체의 의무로서의 원조뿐만 아니라, 경제 발전을 조정 촉진할 목적에 소요되는 자원(資源)을 가장 유효하고 평등하게 분배하는 데 있어서도, “상호 보완의 원리를 지키며, 전세계의 경제관계를 정의(正義)의 규범을 따라 조정하는 일도 국제공동체의 의무이다”라고 밝힌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현대 세계의 사목헌장>의 말은, 모두 ‘보조성’의 원리를 강조함으로써 ‘보족성의 원리’의 중요성도 뒷받침해 주고 있다. (⇒) 보조성의 원리
[참고문헌] K. Breysig, Kulturgeschichte der Neuzeit I, 1900 / M. Scheler, Der Formalismus in der Ethik. 1916 / 바오로 6세, 민족들의 발전촉진에 관한 회칙 / T. Steinbuchel, Der Sozialismus als sittliche Idee. 1921 / カトリツク大辭典 II, 東京 富山房, 5刷, 1954 / キリスト敎大事典, 東京 敎育館, 改訂新版 5版, 1979.
보조성의 원리 [한] 補助性∼原理 [독] Subsidiaritats Prinzip [관련] 보족성의 원리
보통 국가나 어떤 목적으로 조직된 여러 기관을 ‘보다 큰 사회구성체’라고 할 때, 이 ‘보다 큰 사회구성체’가 개인이나 ‘보다 작은 생활 서클’을 위해서 취하는 보충적 또는 응급책으로 쓰는 조치를 보조성(Subsidiaritat)이라고 하며, 이러한 보조성은 ‘보다 작은 하위의 공동체’가 능히 치를 수 있고, 또 좋은 결과로 끝낼 수 있는 것을 보다 큰 상위의 공동체에 속하는 것처럼 요구할 경우는 정의에 위배되며 모든 사회질서를 극도로 저해하고 혼란시키는 일이 된다. 따라서 모든 사회기능이 그 본질상 또 개념상 보조적이므로, “사회측으로부터의 기능과 수행은 항상 지원하는 상태에만 있으며, 또 개인, 가족, 직종의 활동을 오로지 뒷받침하고 보조하기만 하면 된다.” 이같이 상위의 권위자가 하위의 권위자의 권리를 존중하는 일, 또는 한 사회에 있어서 권위자가 사회의 구성원(構成員)의 여러 가지 권리를 인정해 주는 일을 보조성의 원리라고 지칭한다. 사회단체의 구성원을 지원해 준다고 해서, 이를 결코 파괴하거나 흡수해 버려서는 안 된다. ‘위로부터 아래로의 원조’ 즉 사회가 개개인을 돕는 보조행위적인 조치에 있어 그 담당의 분할과 한정은 보다 작은 생활공동체의 자립의 한계규정 및 인간의 자유와 존엄에 근거하여야 한다.
‘보조성’이라는 말은 라틴어 ‘subsidium’ 즉 ‘보조’에서 유래하는데, ‘예비부분에서의 도움’을 의미하고 있다. 로마시대의 군사용어로는 전방(primaacies)에서 싸우는 부대에 대해서, 후방에서 대기하고 있는 예비부대(subsidiarii cohortes)가 대조된다. ‘보조성의 원리’라는 말은 비교적 새로운 용어로서 독일의 최신판 사전의 ≪국가사전≫(1932)에서조차 찾아볼 수 없다고 회프너 추기경(Joseph Kardinal Hoffner)은 지적하였다.
그러나 이 보조성의 문제는 내용상으로 이미 오랜 그리스도교적인 전통에 속하는 원리의 하나였다. 출애급기(出埃及記)에서 모세가 받은 충고가 그것이다. 즉, “이렇게 힘겨운 일을 어떻게 혼자서 해내겠는가 … 천 명을 거느릴 사람, 백 명을 거느릴 사람, 오십 명을 거느릴 사람, 십 명을 거느릴 사람을 세우게 … 그들과 짐을 나누어 자네 짐을 덜도록 하게”(출애 18:18-22). 아퀴나스도 “만일 모두가 같은 음성으로 노래하면 음의 심포니와 하모니가 소멸되고 말듯이” 지나친 통일화와 통제는, 여러 가지 구성체로써 이루어진 공동체의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고 밝혀 이 보조성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케텔러(W.E. von Ketteler) 주교는 19세기에 거의 최초로 ‘보조적 권리’에 대해서 언급하였고, 보조성의 원칙을 정확하게 표현하여, 이성과 진리는 국민에게 “그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을 자기 집에서, 자기 지방에서, 자기 고향에서 또한 스스로 처리하고 이를 완성시켜 나아갈 권리를 부여한다”고 말한 뒤, 국가의 다면행정(多面行政)과 각종 법률제정은 가정에 대해서 “일종의 후견의 권리를 부모가 친권(親權)과 의무의 이행을 크게 게을리 한 경우에만” 보조적 권리를 행사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보조성의 원칙에 관한 고전적인 정의를 담고 있는 회칙(回勅) <노동헌장 40주년>에선 “보조성 원리의 엄격한 관찰을 통해서 여러 가지 사회화의 계층질서를 보다 훌륭하게 준수하면 할수록 그만큼 사회적인 권위와 작용력이 강화되고, 그만큼 국가는 보다 좋고 행복한 상태에 머무르게 된다”고 지적하였다.
보조성의 원리를 교회의 사회론(社會論)에 의해서 늘 변호된 원칙 가운데의 하나라고 본 비오 12세는 이 원리가 교회의 교계제도적인 구조를 저해하지 않고 교회의 생명에도 타당하다고 표명하였다(1946. 2. 20). 이 원리는 연대성 원리와 공익의 원리를 전제하고는 있으나, 이것들과 동일한 것은 아니다. 회프너는, 이 원리의 근거는 인간의 자유와 존엄, 그리고 보다 포괄적인(대형의) 사회구성체에 의하여는 보람있게 실현될 수 없는 과제와 권리를 소유하는 보다 소형의 생활공동체(예컨대 가정)의 구조와 그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그는 대형의 사회구성체가 소형의 생활공동체에 대하여 가하는 부당한 간섭으로부터의 보호와 더불어, 전자의 보조행위적인 조치의 요구를 이 원리의 출발점으로서 고려함은, 후자가 전자 가운데에 종속되어 있다는 이유 때문이며, 후자는 자기에게 주어진 과제영역에서 자기 과제뿐만이 아니라 공동(사회)과제마저 부과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상호보완(相互補完)의 원리’ 또는 ‘보완성(補完性)의 원리’ 등으로도 번역되고 있는, 이 원리를 지키면서 노력할 것을 자주 비치고 있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가운데서도 특히 <그리스도교적 교육에 관한 선언(宣言)>(Gravissimum educationis, 3)의 2세 교육 및 학교제도를 위한 항목과 <현대세계의 사목헌장(司牧憲章)>(Gaudium et spes, 86)의 국제적인 경제협력을 위한 몇 가지 유익한 기준에 관한 항목에서 예를 들 수 있겠다. 즉 자녀의 첫 교육자인 양친과 여타 사회의 창의성이 결여될 때 “교육사업을 보완성의 원리에 의해 양친의 원망(願望)을 고려하여 수행하는 것” 또는 학교교육과 관련하여 “국가는 보완성의 원리를 염두에 두어 국가에 의한 모든 유(類)의 학교의 독점을 배제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경제발전을 조정하고 촉진하는 국제공동체의 의무적인 일에 있어서도, 이 목적에 소요되는 자원배분은, “상호 보완의 원리를 지키며 전 세계의 경제관계를 정의(正義)의 규범에 따라 조정”해야 함도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 보족성의 원리
[참고문헌] Kettelers Schriften, I, 403; II, 21, 162 /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사목헌장,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69 / Joseph K. Hoffner, Christliche Gesellschaftslehre, 1975 / 朴永道역, 그리스도교 사회론, 분도출판사 1979.
보육원 [한] 保育院 [영] orphanage
고아구제(孤兒救濟)를 위한 아동복지기관. 교회에서는 육아원, 어린이 집이라고도 한다. 한국 천주교회의 고아구제 사업은 초창기부터 전개되었다. 처음에는 명도회(明道會) 등의 평신도단체에 의해 시작되었고, 프랑스 선교사들이 입국하면서 보다 체계적인 교회의 사업으로 정착되었다. 이에 따라 성영회(聖孀會, Sancta Infantia)가 1850년도에 설립되어 고아들을 양육하였다. 이 당시에는 극심한 박해로 인하여 보육원 설립이 어려웠기 때문에 주로 신자들의 가정에 위탁·양육시켰다. 그 뒤 병인박해로 일시 중단되었던 교회의 고아구제사업은 1880년 블랑(M.G. Blanc, 白)신부에 의해 재개되었고 1884년 조선교구의 제7대 교구장으로 임명된 블랑 신부는 고아구제사업을 우선적으로 시작하였다. 1885년 서울의 곤당골[渼洞]에 있는 기와집을 구입하여 보육원을 개설하였는데, 이것이 한국 최초의 고아원이었다. 보육원 설립으로 그간 위탁입양 형식으로 운영되던 고아구제사업이 차차 보육원의 설립, 운영이라는 형태로 전환되기 시작하였다. 1888년 블랑 주교의 요청으로 샤르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가 입국하여 고아구제사업을 전담하면서부터 본궤도에 올랐다. 그 전에 설립되어 있던 서울과 대구 외에도 인천, 평양, 진남포 등지에 보육원이 설립되어 일제 시대와 6.25전쟁을 거치는 동안 한국 고아구제사업에 커다란 역할을 하였다. 현재 전국에는 26개의 보육원이 설립, 운영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