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8년 풀다(Fulda)에서 개최된 서독(西獨, Bundes Republick Deutschland) 주교회의가 구성한 기구. 이 주교회의에서 추기경 프링스(Frings)는 세계 도처에서 발견되는 비참한 상황을 퇴치하기 위해 미제레오르의 구성을 제의하였는데, 그는 제안설명을 통해 ① 서독의 그리스도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고통에 동참하기 위해 세속적인 권력의 추구를 포기하고 ② 지구상에 있는 기아와 질병 등 인간을 비인간화시키는 비참한 상황을 퇴치하기 위해 필요한 기금(基金, funds)을 적립하며, ③ 선진국의 국민들이 이러한 운동에 동참할 수 있도록 ‘사순절 운동’(Lenten Campain)을 전개하자고 하였다. 이는 곧 미제레오르의 기본원칙으로 결정되었고, 나아가 주교회의는 미제레오르의 목적을 ① 서독국민의 생활양식의 변화, ② 개발도상국 국민들의 존엄성 회복에다 두기로 하였다. 이러한 원칙과 목적에 따라 미제레오르는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의 개발도상국의 빈곤, 기아, 문맹(文盲), 실업의 퇴치를 위해 많은 양의 돈을 원조하였다. 미제레오르는 우리나라에도 많은 양의 원조를 보내 주었다.
미우라 슈몽 [한] 三浦朱門
三浦朱門(1924∼ ). 일본의 소설가. 도쿄(東京) 태생. 1945년 도쿄대학 언어학과에 입학, 그 해 여름에 징병(徵兵), 이어서 종전을 맞이했다. 1948년 도쿄대학 졸업, 그 뒤 대학원을 마치고 니홍(日本) 대학 강사가 되었다. 제15차 <신시쪼오>(新思潮)의 동인. ≪명부 산수도≫(冥府山水圖, 1951)는 중국을 무대로 화가를 주인공으로 하여 예술의 비정함을 묘사함으로써 주목을 받았다. 시마오 도시오(島尾敏雄), 요시유끼 준노스께(吉行淳之介) 등과 친교를 맺으며 ‘제 3의 신인’으로 활약하였다. 1973년 영세, 입교하였다. 1968-1969년의 대학 분쟁 때도 적극적으로 발언, 소설도 발표하였다. 대표작인 장편소설 ≪소형 정원≫( 庭, 1967)은 한 가정 내에서의 어버이와 자식 세 쌍의 부부관계를 통해 가정의 의미를 추구한 역작으로, 신쪼오사(新潮社) 문학상을 탔다. 그 밖에 ≪포나페섬≫(1956), ≪셀률로이드 탑≫(1959), ≪해로동혈≫(偕老同穴, 1963), ≪빛은 저 멀리≫(1978-1979) 등이 있다. 그의 작품테마가 초기의 예술지상주의적 경향에서 최근에는 소시민적 지식인 문제로 바뀌었다. 부인은 소설가 소노 아야꼬(曾野綾子).
미야사끼 까리따스수녀회 [한] 宮崎∼修女會 [영] Caritas Sisters
1937년 8월 15일 일본에서 사목하던 살레지오회(會) 소속 안토니오 카볼리(Antonio Cavoli) 신부에 의해 일본 미야사끼에서 창설된 수녀회. 1956년 10월 18일 한국에 진출하였다. 전 인류에게 복음을 전하고 특히 가난한 자, 병든 자, 죄인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고자 하는 이 회는 창설일자로 교황청 정식인가를 받았고, 1949년 회헌(會憲) 인가를 받았다. 1956년 당시 광주(光州) 교구장 헨리(Henry, 玄) 주교의 초청으로 같은 해 10월 3명의 수녀가 광주 남동으로 내한하여 본당 활동을 시작하였다.
1959년 광주 학동에 수녀원 건물을 신축하였고, 1957년부터 한국인 지원자를 받았다. 1968년에는 한국관구로 독립하였으며 54명의 수녀가 허원을 하는 한편 9개의 분원이 설립되었다. 1972년 서울 강남구에 진출하여 지역사회를 위한 사회사업을 목적으로 교육관을 건립하였다. 현재 광주 · 제주 · 춘천 · 서울 · 수원 · 부산 6개 교구에 27개의 분원을 설치하여 본당활동을 하는 한편, 각 교구 내에서 그룹별 성서모임·피정(避靜) 지도 등을 통한 신자 재교육 활동, 노인대학 운영 등 다각적인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전라남도 광주시 동구 학동 소재 한국관구 및 본원에는 1983년 12월말 현재 관구장 장도엽(張桃葉) 수녀를 비롯한 134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미아동본당 [한] 彌阿洞本堂
서울교구 소속본당. 주보는 성모칠고. 1942년 혜화동(惠化洞) 본당 산하 미아리 공소가 설치되고 1944년 11월 미아리 본당으로 분리되었으나 초대 본당주임 신인식(申仁植, 바오로) 신부는 1945년 5월에 정식으로 부임하였다. 4대 오연희(吳然喜, 마티아) 신부 때인 1950년 5월 신자수의 증가로 본당건물을 팔고 같은 미아동의 좀 더 넓은 집으로 본당을 옮겼다. 6.25의 피난시절을 거쳐 1953년부터 다시 사목이 시작된 후 신자수의 급증으로 인해 5대 본당주임 박일규(朴一圭, 안드레아) 신부는 1958년 성탄절에 현 길음동 대지(약 1,000평)의 성당 신축공사 완공을 앞두고 노기남(盧基南, 바오로) 주교 집전으로 축성 미사를 봉헌하였다. 경기도 양주군 장흥면의 본당묘지(약 4만평)도 박 신부 때에 마련되었다. 박 신부는 미아동 본당에서 16년간 헌신적 사목활동을 하다가 1965년 69세로 은퇴, 1979년에 선종하였다.
1967년 7대 본당주임으로 박귀훈(朴貴勳, 요한) 신부가 부임, 당시 방대하게 증가한 교우들(8,333명)에 대한 효율적인 사목을 위해 1968년 정릉(貞陵) 본당, 삼양동(三陽洞) 본당(현 미아 3동 본당), 월곡동(月谷洞) 본당을 동시에 분리 창설시켰다. 1976년에 부임한 11대 이삼복(李三馥, 요한) 주임신부는 본당신자들의 숙원사업인 주일학교 교사 및 수녀원 건물을 1979년에 완공하였다. 미아동 본당은 미아5동 본당의 신설에 따라 1982년 9월 9일자로 그 명칭을 길음동(吉音洞) 본당으로 바꾸었다. 현재 관할구역은 돈암 1동, 정릉 1동, 길음 1, 2, 3동을 일원으로 하는 주거지역 및 상업지역이며. 신자수는 5,649명(1983년 현재), 현 본당주임은 14대 김충수(金忠洙, 보니파시오) 신부이다.
미신 [한] 迷信 [라] superstitio [영] superstition [독] Aberglaube
일반적으로 미신이란, 잘못된 또는 아무런 과학적인 근거도 없는 것을 종교적 신앙처럼 맹목적으로 믿는 일을 가리킨다. 그리스어 ‘deisidaimon’라는 단어는 ① 중립적인 의미로 쓰일 수도 있고, ② 좋은 의미로 쓰여 신에 대한 합당한 존경과 숭배와 두려움을 가리킬 수도 있고, ③ 나쁜 의미로 쓰여 신들에 대한 지나친 또는 근거없는 두려움을 가리키거나, 망령된 믿음에 집착하는 사고와 행동을 가리킬 수도 있다. 즉 상대적인 의미를 갖는 단어라서 사실상 널리 다의적(多義的)으로 사용된다. 그러나 학술적으로, 즉 종교학이나 종교철학에 있어서는 종교의 진리성을 인정하는 입장에서, 진리성에 반하거나 혹은 진리요소가 빠져 있는 잘못된 신앙을 지칭하여 미신이라고 한다.
트리엔트 공의회는 미신을 ‘진정한 경신(敬神)의 잘못된 모방자’(verae pietatis falsa imitatrix, Sess. XXII, de sacrificio Missae)라고 규정하였다. 미신은 경신의 덕에 대립하며, 또는 현대의 강신술(降神術)같은 것도 그리스도교의 신앙 그 자체에 대하여 반대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런 경우는 주로 미신가가 명시적 또는 묵시적으로 하느님의 전능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작용을 피조물(被造物)에 귀속시키려고 하는 때에 발생하며, 물건이 신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한 도덕적인 퇴폐의 일종임은 물론이다, 이와 같은 미신의 윤리적인 과오는 신앙의 순수성을 훼손하는 것 말고도, 하느님에 대한 신뢰의 결여와 특히 많건 적건 간에 의식적인 사고나 행동을 통하여 하느님으로부터의 이탈 또는 배반을 초래하게 된다. 이리하여 신뢰의 결여 때문에, 마술에 빠지게 되거나, 우상숭배, 점복(占卜) 등에 의하여 미래의 일이나 비밀 따위를 미리 알려고 조바심하게 되고, 미신적인 풍습에 좇아서 소심한 이기적 방법으로 자기의 구령(救靈)과 운명까지도 자기 수중에 장악해 보려는 경향으로 치달리게 된다.
독일의 언어학자 그림형제(Jakob Grimm과 Wilhelm Grimm)는, 신앙의 한계선을 ‘지난’ 또는 그 ‘이상’의 것이라 하여 ‘Oberglaube=Uberglaube’라는 낱말로 표시하고 있으며, 어떤 학자는 Hinterglaube(신앙배후) 또는 Unterglaube(신앙이하)로 표현하기도 한다. 대체로 참된 신앙의 빛에 대하여 눈을 가리거나 또는 그것을 모르는 사람은, 이성이 도달할 수 있는 가능 한계를 뛰어넘어서 존재의 수수께끼를 풀고자 했을 경우, 비이성적인 미신에 떨어지기 쉽다. 섭리에 대한 신앙이 결핍되거나 쇠퇴하였을 때, 미신이 으레 만연한다. 그러나 미신에는 인간적인 요소가 짙다. 긍정적인 종교의 거의 모든 체계에 부착되어 있는 부착물들 주변에는 미신으로 볼 수도 있는 것들이 많으며, 이런 것들은 한편으로는 그 종교를 본래의 형태에서 대단히 돋보이는 형태로 바꾸어 버리며, 다른 한편으로는 추상적 관념들을 다루는데 익숙하지 못한 사람들의 마음속에 그런 마음이 놓여 지도록 하게 할 수도 있다.
중세기는 일반적으로 두드러지게 미신의 시대였다고 볼 수 있으며,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은, 적어도 그것들의 영향력이 뻗어나간 한, 미신에 대하여 치명타를 주었던 것으로 보통 생각되어진다. 하지만 사회의 몇몇 부분에서 르네상스와 동행하고 있던 고대의 무분별한 제의가 미신적 공상들과 새로운 종류의 의식들을 담고 있었거나, 또는 장려하였다는 점도 부인할 수는 없다. 인간은, 지적인 이유 없이도, 항상 영적인 세계에 대하여 그가 알 수 있는 것 이상을 알기를 갈망하며, 비록 실제로는 신적인 것이 아닐지라도, 전통적인 제재력을 가지고 있는 권위에 보다 더 기꺼이 복종하게 마련이다.
따라서 현상적인 면에서 본다면. 종교신앙에는 진리요소가 적고 반면에 미신적인 요소가 많은 것, 또는 광신적인 요소가 많은 것이 적지 않다. 이런 것에 대하여, 그리스도교는 순수한 경신을 늘 강조하고, 종교적인 진리의 입장에서 비판, 시정할 필요가 있으며, 미신을 물리치고 하느님에 대하여 신뢰를 갖도록 가르치고 있다. 그렇다고 하여 좁은 테두리의 합리주의나 과학주의 관점에 서서, 모든 종교신앙을 부정, 그것을 미신이라고 하여 배척하는 경우가 역사상에도 있어 왔고, 또 오늘날도 아직 남아 있으나 이는 종교의 진리성을 인정하는 입장에서 볼 때, 도리어 좁은 의미의 이성과 과학을 과신하는데서 얻어낸 결론이라고 보아 일종의 미신으로 여기는 견해도 있다. 용어적으로 미신과 이단 사설(邪說)이 엄밀히 구분됨은 물론이다.
[참고문헌] Matthew Amold, Literature and Dogma, do. 1873, chs. on <‘Aberglaube invading’ and ‘Aberglaube re-invading’> / W.E.H. Lecky, History of Rationalism, new ed., vol. 2. London 1887 / H.Th. Simar, Der Aberglaube, ed. 3, 1894 / Plutarch, Moralia including de Superstitione, tr. Eng. Philemon Holland, do. 1903 / F. Walter, Aberglaube und Seelsorge mit besonderer Beriicksichtigung des Hypnotismus und Spiritismus, ed 2, 1911 / A. Wuttke, Der deutsche Volksaberglaube der Gegenwart, ed. 4, 1925 / K. Zucker, Psychologie des Aberglaubens, Heidelberg 1948 / Bauer, Der moderne Aberglaube und seine berwindung. Stuttgart 1950 / J. Kruse, Hexen unter uns? Magie und Zauberglaube in unserer Zeit, Hamburg 1951.
